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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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는 조선 초기 1392년부터 1451년까지 59년 동안 조선 태조, 태종, 세종, 문종에 이르기까지 만들고 수정한 고려 시대에 대한 역사서로서, 기전체(紀傳體)로 된 고려 왕조의 정사이다. 32명의 왕이 다스린 475년 동안의 각종 사건과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았으며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는 후세에 지침이 될 만한 정치적 근거로서 조선을 건국한 주도 세력인 사대부들의 역사관을 담고 있다. 고려 왕의 기록에 관해 본기(本紀)를 두지 않고 세가(世家)를 두고 있다.

편찬 과정[편집]

조선시대 태조의 명에 따라 1392년 10월 13일 정도전, 정총, 박의중, 윤소종에게 명하여 수찬하게 한 것이 처음이다. 1395년(태조 4년)에 고려 태조로부터 마지막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총 37권의 《고려사》를 편찬하였는데, 통칭 《고려국사》로 현전(現傳)하지는 않는다.

이후 1414년(태종 14년)에 《고려국사》에 공민왕 이후 말기의 일이 잘못 기록된 것을 고치기 위하여 하윤, 남재, 변계량으로 하여금 개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16년(태종 16년) 하윤이 죽어 일이 중단되었다.

1419년(세종 1년)에 유관, 변계량에게 다시 개수 작업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다시 1423년(세종 5년)에 유관, 윤회에게 다시 개수하게 하였는데, 주로 호칭과 정도전이 지닌 편향된 시각의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정몽주를 깎아내린 것을 다시 충신으로 평하여 기록한 것이다.

1424년(세종 6년)에 윤회가 교정하여 편찬한 《고려사》를 다시 올렸다. 이후에도 신개, 권제 등이 찬술하였고, 이계전, 어효첨에게 교정하도록 하였으며 1449년(세종 31년)에는 춘추관에 전지하여 다시 편찬하도록 하였다. 이때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에게 이 일에 대한 감독을 맡기었다. 실제 작업은 신숙주, 최항, 박팽년, 이석형, 김예몽, 하위지, 양성, 유성원, 이효장, 이문형 등 당대의 최고 문관들이 참여하였다.

1451년(문종 1년) 드디어 새로 《고려사》를 세가 46권, 지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만들어 냈다. 이후 1452년(문종 2년)에는 김종서가 《고려사》를 요약하여 만든 《고려사절요》 35권을 만들었고, 1454년(단종 2년) 《고려사》 간행에 착수하였다.

체제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본떠 세가(世家)·지(志)·표(表)·열전(列傳)의 4항목으로 나누어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목적[편집]

이 방대한 역사 편찬 작업은 다만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고려시대의 군신들의 행사한 자취를 참고로 하여 새로운 조선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것이다. 원래는 편년체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기전체를 따라 만들어졌다. 《고려사》는 공식적인 조선의 역사서로서 이후 조선의 역사 편찬의 모범이 되었다.

《고려사》는 그 역사 서술의 이론이나 방법보다 고려 시대 역사의 근본 사료로서의 가치 면에서 의의가 크다.

고려사 판본[편집]

을해자번각본[편집]

고려사
(高麗史)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종목 유형문화재 제104호
(2010년 9월 20일 지정)
수량 75책 139권
시대 조선시대
소유 동아대학교
주소 부산광역시 서구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고려사》는 총 139권 75책으로 된 완질본으로 보존 상태는 완벽에 가까운 매우 좋은 상태이다. 이 판본은 1482년(성종 13)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을해자본(乙亥字本)을 1613년(광해군 5)에 번각한 목판본이다. 인출 시기는 동일한 판본의 초쇄본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의 태백산사고본과 대조해 본 결과, 자면(字面)이나 계선(界線)에서 나뭇결이나 터짐 현상 혹은 탈락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규장각 소장본보다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1]

이 책은 총 75책 139권의 거질(巨帙)임에도 불구하고 낙질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상태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전래본 중 가장 일찍 인출된 것은 1482년(성종 13)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을해자본이나, 을해자본은 완질본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 을해자본 다음으로 간인된 이 판본의 완질본이 현재 4질 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그 내용이 전해지는 사료가 부족하여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학술적,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목판본[편집]

백련사 고려사
(白蓮寺 高麗史)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문화재자료
종목 문화재자료 제76호
(2014년 3월 19일 지정)
수량 111권 65책(결본)
소유 백련사
주소 부산광역시 남구 이기대공원로 85-74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고려사』는 조선 초기 김종서(金宗瑞), 정인지(鄭麟趾) 등이 세종의 교지를 받아 기전체(紀傳體)로 엮은 고려의 정사이다. 현존하는 최고본은 을해자(乙亥字)로 인출한 것으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482년(성종 13) 2월에 양성지의 상소로 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판본의 완질은 전해지는 것이 없고 규장각, 고려대학교도서관, 성암고서박물관 등에 낙질본 혹은 영본이 일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2]

현재 『고려사』는 여러 도서관에 여러 종이 전하고 있으나 완질본은 매우 귀한 편인데,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고려사』가 139권 75책의 완질본으로 2010년에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었다.[2]

백련사 『고려사』는 목판본으로 모두 65책이다. 표지는 모두 개장되었으나, 인쇄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며 파손된 부분은 거의 없다. 백련사 『고려사』는 65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권질의 『고려사』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으며, 고려사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2]

필사본 고려사[편집]

고려사의 필사본은 전질의 경우 규장각에 소장된 61책과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71책이 알려져 있다.

2015년 2월 28일 한국의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열상고전연구회 제69차 정례학술발표회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전적 가운데 중국인 학자 필사한 고려사 전질(139권 19책)이 소장되어 있음을 발표하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산하 '구한말 해외반출 조선시대 전적 현황 조사 연구' 조사단은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도서관을 필두로 동방학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전적 2,000여 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적을 확인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된 필사본 고려사는 괘선지에 해서체로 필사한 것으로, 중국 청의 금석학자 유희해(1793년~1852년)가 소장하였고 《해동금석원》을 펴는 데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석학자 옹방강(1733년~1818년)의 아들인 옹수곤(1786년~1815년)과 장서가 고천리(1766년~1835년) 등의 손을 거쳐 주청영국공사이자 중국고서수집가였던 토마스 웨이드가 기증한 것으로 확인된다.

기타[편집]

현대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무료로 열람이 가능하다.

참고 서적[편집]

  • 북역 고려사, 고전연구실 엮음, 신서원, 1997년, ISBN 897-940-0071 (구글 도서 검색)
  • 북역 고려사절요, 민족문화추진회, 신서원, 2004년, ISBN 897-940-0462 (국립중앙도서관)
  • 국역 고려사 색인 세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년, ISBN 9788949908267 (국립중앙도서관)
  • 국역 고려사 지편 세트,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년, ISBN 9788949908250 (국립중앙도서관)

각주[편집]

  1. 부산광역시 고시 제2010-353호,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문화자료 지정,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및 해제》, 부산광역시장, 2010-9-29
  2. 부산광역시 고시 제2014-128호,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부산광역시장, 2014-03-19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