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녕궁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숙녕궁주
肅寧宮主
지위
고려의 공주
재위 1390년~1392년
대관식 없음
전임 정성군(定城君)
후임 정신궁주(貞信宮主)
부왕 공양왕(恭讓王)
이름
?
이칭 없음
별호 없음
연호 없음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신상정보
출생일 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 ?
사망일 몰년 미상(沒年 未詳)
사망지 ?
매장지 없음
왕조 고려(高麗)
가문 ?
부친 공양왕(恭讓王)
모친 순비 노씨(順妃 盧氏)
배우자 익천군(益川君)
자녀 없음
종교 불교(佛敎)

숙녕궁주(肅寧宮主, 생몰년 미상)는 고려의 왕족이다. 공양왕순비 노씨의 첫째 딸이다.

생애[편집]

고려의 마지막 인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장녀이며, 생몰년은 명확하지 않다. , 본관개성이다.

숙녕궁주의 아버지 공양왕은 신종의 7대손으로, 1389년(공양왕 원년) 창왕을 폐위시킨 이성계 일파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양왕 즉위 후에도 실권은 이성계 일파에게 있었고, 1392년(공양왕 4년) 마침내 이성계가 새 왕조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는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공양왕은 고려 멸망 2년 후인 1394년(조선 태조 3년) 사사되었다[1]. 한편 숙녕궁주의 어머니 순비 노씨는 창성군 노진의 딸로, 1389년(공양왕 원년)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숙녕궁주를 비롯한 1남 3녀를 낳았다[2].

숙녕궁주는 아버지 공양왕이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390년(공양왕 2년) 음력 윤4월 17일 다른 두 동생과 함께 궁주로 책봉되어 숙녕궁주(肅寧宮主)에 봉해졌다[3]. 그러나 궁주의 다른 생애에 대해서는 《고려사》 등에도 뚜렷하게 기록된 내용이 없으며, 익천군에 봉해진 왕집에게 시집갔다는 내용 뿐이다[4]. 자녀 등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가족 관계[편집]

숙녕궁주는 익천군 왕집에게 시집갔다. 왕집은 현종의 4남 평양공 왕기의 후손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왕서(王敍)라고도 한다. 처음에 익천군에 봉해졌다가 후에 익산군으로 개봉되었으며, 1392년(공양왕 4년)에 변방으로 유배갔다는 기록이 있다[5].

한편 충선왕원나라가 왕녀들의 동성혼을 문제삼자 이후로는 왕녀들이 동성혼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숙녕궁주가 동성혼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공양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즉 궁주가 아닌 일개 종실의 딸이었을 때 한 혼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6].

  • 부왕 : 제34대 공양왕(恭讓王, 1345~1394, 재위:1389~1392)
  • 모후 : 순비 노씨(順妃 盧氏, 생몰년 미상)
  • 시아버지 : 익성부원군 왕서(王諝, 생몰년 미상)
    • 남편 : 익천군 왕집(王緝, ?~1392 이후)

외부 링크[편집]

출처[편집]

  1.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공양왕〉”. 2016년 3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3월 16일에 확인함. 
  2. 《고려사》권89〈열전〉권2 - 순비 노씨
  3. 《고려사》권45〈세가〉권45 - 공양왕 2년 윤4월 - 왕의 딸들을 궁주로 책봉하다
  4. 《고려사》권91〈열전〉권4 - 숙녕궁주
  5. 《고려사》권90〈열전〉권3 - 평양공 왕기
  6. 김기덕 (1993). “高麗時期王室의 構成과 近親婚” (PDF). 《국사관논총》 (국사편찬위원회) (49). 2016년 12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