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군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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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군(廣州郡)은 경기도 광주시2001년 3월까지의 행정구역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서울 동남부의 관문이자 대읍(大邑)이었으며, 2001년 3월 21일 도농복합시광주시로 승격하였다.[1]

광주군은 현재의 광주시 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동구, 송파구(잠실동·신천동 제외), 서초구 염곡동·내곡동·신원동(이상 1963년 1월 1일 편입), 성남시(1973년 7월 1일 시 승격), 하남시(1989년 1월 1일 시 승격)까지 관할하였다.

역사[편집]

1914년의 행정구역[2] 과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1914년 현재
구·읍·면 동·리
경안면
(慶安面)
직리, 태전리, 장지리, 역리, 주막리, 탄벌리, 목현리, 회덕리, 송정리, 중대리, 삼리, 쌍령리 광주시 직동, 태전동, 장지동, 역동, 경안동, 탄벌동, 목현동, 회덕동, 송정동, 중대동, 삼동, 쌍령동
오포면
(五浦面)
목리 목동
신현리, 능평리, 문형리, 추자리, 고산리, 매산리, 양벌리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능평리, 문형리, 추자리, 고산리, 매산리, 양벌리
도척면
(都尺面)
궁평리, 도웅리, 진우리, 상림리, 노곡리, 추곡리, 유정리, 방도리 광주시
도척면
궁평리, 도웅리, 진우리, 상림리, 노곡리, 추곡리, 유정리, 방도리
삼리 광주시
곤지암읍
삼리
실촌면
(實村面)
곤지암리, 수양리, 신촌리, 봉현리, 부항리, 오향리, 열미리, 연곡리, 만선리, 이선리, 장심리, 건업리, 유사리, 삼합리 곤지암리, 수양리, 신촌리, 봉현리, 부항리, 오향리, 열미리, 연곡리, 만선리, 이선리, 장심리, 건업리, 유사리, 삼합리
초월면
(草月面)
신대리 신대리
서하리, 무갑리, 지월리, 도평리, 신월리, 선동리, 학동리, 늑현리, 산이리, 쌍동리, 대쌍령리, 용수리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무갑리, 지월리, 도평리, 신월리, 선동리, 학동리, 늑현리, 산이리, 쌍동리, 대쌍령리, 용수리
상번천리, 하번천리 광주시
남한산성면
상번천리, 하번천리
중부면
(中部面)
[3]
검복리, 불당리, 오전리, 광지원리, 엄미리, 산성리 검복리, 불당리, 오전리, 광지원리, 엄미리, 산성리
상산곡리 하남시 상산곡동
창곡리, 복정리, 수진리, 단대리 일부, 단대리 일부, 단대리 일부, 탄리 일부, 탄리 일부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복정동, 수진동, 단대동, 산성동, 양지동, 태평동, 신흥동
상대원리, 단대리 일부, 단대리 일부, 탄리 일부, 탄리 일부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금광동, 은행동, 성남동, 중앙동
돌마면
(突馬面)
갈현리, 도촌리, 여수리, 하대원리 갈현동, 도촌동, 여수동, 하대원동
야탑리, 율리, 이매리, 서현리, 분당리, 수내리, 정자리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율동, 이매동, 서현동, 분당동, 수내동, 정자동
낙생면
(樂生面)
판교리, 백현리, 하산운리, 석운리, 대장리, 금곡리, 삼평리, 운중리, 궁내리, 동원리, 구미리 판교동, 백현동, 하산운동, 석운동, 대장동, 금곡동, 삼평동, 운중동, 궁내동, 동원동, 구미동
대왕면
(大旺面)
신촌리, 오야리, 심곡리, 시흥리, 둔전리, 사송리, 금토리, 상적리, 고등리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 오야동, 심곡동, 시흥동, 둔전동, 사송동, 금토동, 상적동, 고등동
수서리, 세곡리, 율현리, 일원리, 자곡리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세곡동, 율현동, 일원동, 자곡동
언주면
(彦州面)
대치리, 반포리, 삼성리, 청담리, 압구정리, 신사리, 역삼리, 양재리, 포이리, 논현리, 학리 대치동, 개포동 일부, 삼성동,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 역삼동, 도곡동, 포이동 일부, 논현동 일부, 논현동 일부
염곡리, 신원리, 내곡리 서울
서초구
염곡동, 신원동, 내곡동
중대면
(中垈面)
장지리, 거여리, 마천리, 오금리, 가락리, 송파리, 석촌리, 삼전리, 문정리, 이리, 방이리 서울
송파구
장지동, 거여동, 마천동, 오금동, 가락동, 송파동, 석촌동, 삼전동, 문정동, 방이동 일부, 방이동 일부
구천면
(九川面)
풍납리 풍납동
암사리, 고덕리, 상일리, 하일리, 명일리, 길리, 둔촌리, 성내리, 곡교리 서울
강동구
암사동, 고덕동, 상일동, 하일동, 명일동, 길동, 둔촌동, 성내동, 천호동
서부면
(西部面)
초일리, 초이리, 춘궁리, 광암리, 감북리, 감일리, 감이리, 학암리, 항리, 상사창리, 하사창리 하남시 초일동, 초이동, 춘궁동, 광암동, 감북동, 감일동, 감이동, 학암동, 항동, 상사창동, 하사창동
동부면
(東部面)
교산리, 하산곡리, 천현리, 덕풍리, 풍산리, 망월리, 선리, 미사리, 신장리, 당정리, 창우리, 배알미리 교산동, 하산곡동, 천현동, 덕풍동, 풍산동, 망월동, 선동, 미사동, 신장동, 당정동, 창우동, 배알미동
남종면
(南終面)
수청리, 검천리, 귀여리, 우천리, 분원리 광주시
남종면
수청리, 검천리, 귀여리, 우천리, 분원리
퇴촌면
(退村面)
금사리, 삼성리, 이석리 금사리, 삼성리, 이석리
우산리, 관음리, 광동리, 도수리, 정지리, 오리, 도마리, 영동리, 무수리, 원당리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관음리, 광동리, 도수리, 정지리, 오리, 도마리, 영동리, 무수리, 원당리

고대 시대[편집]

본래 백제의 남한산성이다. 기원전 6년(백제 온조왕 13년) 위례성(현 서울 강북)에서 지금의 서울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도읍을 옮기고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이후, 370년(근초고왕(近肖古王) 25년)까지 376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371년(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에는 다시 도읍을 남평양성으로 옮겼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에 남하하여 한산성을 함락하고 북한산군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 성왕이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 한산성을 탈환하였고,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산성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고, 557년 (진흥왕 18)에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568년(진흥왕 29)에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를 설치하였다. 604년(진평왕 26)에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660년 백제가 신라에 패망할 시기에 남한산성을 고쳐 한산주라 하고, 또 남한산주라고도 불렀다. 662년(문무왕 2) 남천주가 설치되고, 664년 한산주로 개칭되고, 766년(경덕왕 15)에 시행된 한화정책에 따라 한주(漢州)로 개명되었다.

중세 시대[편집]

940년(고려 태조 23년) 지금의 명칭인 광주(廣州)로 개칭되었고,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광주에 광주목(廣州牧)을 두었다. 995년(고려 성종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봉국군(奉國軍)이라 이름하고 관내도(關內道)에 속하게 했다. 1012년 (고려 현종) 3년에 폐하여 안무사가 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8목(牧)을 정할 때에 다시 목이 되었다.[4] 이때, 양광도에 예속되고 안무사를 설치하였다.

근세 시대[편집]

조선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명종 14년(1559년)에 목사가 파견되었고 1577년 (조선 선조 10년) 광주부(廣州府)로 승격하고 경안, 오포, 도척, 실촌, 초월, 퇴촌, 초부, 동부, 서부, 구천, 중대, 세촌, 돌마, 낙생, 대왕, 언주, 왕륜, 일용, 월곡, 북방, 송동, 성곶, 의곡면(儀谷面) (도합 23개면)을 관할하였다. 1626년(인조 4년) 남한산성이 축성되었다.

1789년 일용면과 송동면이 수원군으로 편입되었다.

광주목의 행정[편집]

1530년 이전에 광주목은 여주목, 이천도호부, 양근군, 지평현, 음죽현, 양지현, 죽산현, 과주현을 관할하였다.[5] 행정 관리는 목사 1인(종 3품), 판관(判官) 1인(종 5품), 교수(敎授) 1인(종 6품)을 두었다.[6]

1883년 4월 23일(음력 3월 17일) 박영효는 광주부(廣州府) 유수로 발령을 받았다.[7]

대한제국[편집]

  • 1906년(대한제국 고종 44년) 군(郡)이 되어 군청을 중부면 산성리에 설치하고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을 안산군에, 초부면을 양주군에 편입하였다.

일제 강점기[편집]

  • 1911년 8월 29일 상적리에 대왕면사무소를 개설하고 돌마면은 1911년 말 돌맘면삼뭇손는크임맫동(현 19빌)에 갯설.4월 1일 광주군 군내면 소속의 7개리 (산성, 검복, 불당, 오전, 광지원, 용미, 상산곡리) 와 세촌면 소속의 7개리 중 6개리 (단대, 상대원, 수진, 복정, 창곡, 탄리)를 관할로 하여 중부면이 신설되었으며, 세촌면 1개리(하대원리)는 돌마면에 편입되었음. 이로써 경안면, 중부면, 동부면, 서부면, 오포면, 초월면, 실촌면, 도척면, 퇴촌면, 남종면, 낙생면, 돌마면, 대왕면, 언주면, 구천면, 중대면의 16면으로 개편하고 중부면 산성리에 군사무소를 배치하였다. 이때, 의곡면, 왕륜면을 합하여 "의왕면"(儀旺面)이라 하고 수원군에 편입되고, 양평군 남종면은 광주군으로 편입되었다.[8]
  • 1914년 9월 4일 경기도고시 제46호로 도내 각 면의 사무소 위치를 고시하였는데 언주면사무소 소재지는 염곡동, 대왕면은 괴하동이었으며 신동면은 우면리였다.
  • 1917년 12월 군청 소재지를 경안면 경안리로 이전
  • 1938년 1월 1일 경안면을 광주면으로 개칭하였다.[9]
  • 1939년 군청 소재지를 광주면 송정리로 이전

현대[편집]

  • 1946년 중부면 성남출장소 설치: 중부면은 면 중앙에 남한산성의 준령이 있어 그 서남기슭에 취락이 형성된 지역적 여건으로, 1946년 3월 3일 종전의 세촌면 관할구역 6개리(단대, 탄, 수진, 상대원, 복 정, 창곡리 27.43km2)를 관할하는 중부면 성남출장소를 설치하여 탄리 275번지에 개소하였다가 1948년 수진리로 옮겨 사무를 보게 되었다.
  • 1963년 1월 1일 구천면 등이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다.[10] (13면)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광주군 구천면 일원(풍납리, 고덕리, 하일리, 상일리, 명일리, 암사리, 곡교리, 성내리, 길리, 둔촌리) 서울특별시 성동구 풍납동, 고덕동, 하일동, 상일동, 명일동, 암사동, 천호동, 길동, 둔촌동
광주군 언주면 일원(포이리, 반포리, 논현리, 학리, 대치리, 양재리, 삼성리, 신사리, 압구정리, 역삼리, 청담리, 내곡리, 염곡리, 신원리) 서울특별시 성동구 포이동, 개포동, 논현동, 학동, 대치동, 도곡동, 삼성동, 신사동, 압구정동, 역삼동, 청담동, 내곡동, 염곡동, 신원동
광주군 중대면 일원(거여리, 마천리, 방이리, 이리, 오금리, 석촌리, 송파리, 삼전리, 가락리, 문정리, 장지리) 서울특별시 성동구 거여동, 마천동, 방이동, 이동, 오금동, 석촌동, 송파동, 삼전동, 가락동, 문정동, 장지동
광주군 대왕면 일부(세곡리, 율현리, 자곡리, 수서리, 일원리) 서울특별시 성동구 세곡동, 율현동, 자곡동, 수서동, 일원동
  • 1964년 2월 24일: 광주군 조례 제68호에 의거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로 승격되어 수진리 145번지에 성남출장소 건물을 신축 개소하여, 인구 및 행정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광주군수 직할 지휘 감독 체제로 전환하였다.

광주 대단지[편집]

서울특별시는 판자촌과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성남)를 개발하여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서울의 청계천 일대를 비롯한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면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킬 계획을 마련하였다. 서울특별시는 1968년 5월 7일 건설부로부터 개발인가를 받아 1969년 4월 1일 "중부면 성남지구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 조성공사에 착수하였으며, 1969년 5월 2일부터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시 지역)로 서울시의 철거민을 집단 강제 이주시켰다. 그렇게 해서 모인 빈민들의 수는 14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11]

광주군은 1968년 8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 "광주군 성남지구 도시건설 사업소"를, 서울특별시는 1968년 9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 "서울특별시 광주대단지 사업소"를 각각 설치하여 도시계획 업무를 전담 수행함으로써, 기존의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와 더불어 개발초기의 성남의 행정업무를 보는 관청이 셋이나 되는 문제점이 도출되어 주민의 불편이 컸었다. 관할청과 사업 시행청이 다른데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고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의 효율적인 사업수행을 위하여 1970년 9월 19일, 경기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 광주군수간에 행정협약을 체결하고, 경기도와 광주군은 일반 행정을, 서울특별시는 용지 매수 및 건설사업을 분담 실시할 것을 규정하였다.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의 시행으로 광주군 성남출장소 관할 인구가 14만 여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여 행정수요 충족이 불가피하게 되어, 도조례 제470호 (1971. 8. 18 공포) 에 따라 기존 광주군 성남출장소 관내 6개리와 대왕면, 낙생면, 돌마면 전역 128.5km2을 관할 구역으로 1971년 9월 13일 경기도 관할 성남출장소를 설치하여 집무를 개시하였다. 그리고, 이원적인 행정을 일원화하여 성남도시건설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기 위하여 1971년 10월 14일 서울특별시에서 시행하던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을 경기도에서 인수하고 "성남개발 3개년 투자계획"에 의거 도시건설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성남시 승격·독립 이후 ~ 광주시 승격[편집]

  • 1979년 5월 1일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승격되었다.[14] (1읍 9면)
  • 1980년 12월 1일 동부면이 동부읍으로 승격되었다.[15] (2읍 8면)
  • 1989년 1월 1일 동부읍·서부면 일원 및 중부면 상산곡리를 관할로 하남시로 분리, 설치되었다.[16] (1읍 7면)
  • 2001년 3월 21일 광주군을 광주시로 승격하였다.[1] 이와 함께 광주읍을 경안동·송정동·광남동의 3개 행정동으로 분할하고, 오포면을 오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6면 3행정동)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법률 제6280호 경기도화성시등2개도농복합형태의시설치등에관한법률 (2000년 12월 20일)
  2. (신구대조) 조선 전도부군면리동 명칭 일람 (1917년)
  3. 중부면은 군내면(郡內面)과 세촌면(細村面)의 합면이다.
  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卷六 廣州牧: "【建置沿革】本百濟南漢山城始祖溫祚王十三年自慰禮城移都之近肖古王二十六年又移都南平讓城今京都及唐蘇定方攻滅百濟唐師還新羅漸收基地改南漢山城爲漢山州又稱南漢山州景德王十五年改漢州高麗太祖二十三年改令名成宗二年初置十二牧州基一也十四年置節度使號奉國軍隸關內道顯宗三年廢爲安撫使九年定八牧復爲牧本朝因之"
  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卷六 廣州牧:【鎭管】 牧一驪州都護府一利川郡一楊根縣五砥平陰竹陽智竹山果州
  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卷六 廣州牧:【官員】 牧使 一人正三品...判官一人從五品...敎授一人從六品...
  7. 고종실록》20년 3월 17일: 朴泳孝爲廣州府留守
  8.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9. 군청소재 면명을 군명에 따라 개정 동아일보, 1937.12.16.
  10. 법률 제1172호 서울특별시·도·군·구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62년 11월 21일)
  11. 강준만 (2002).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1권》. 인물과사상사. 170쪽. 
  12. 법률 제2597호 시설치와군의폐치분합에관한법률 (1973년 3월 12일)
  13. 대통령령 제6542호 시·군·구·읍·면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73년 3월 12일 제정.
  14. 대통령령 제9409호 미금읍등53개읍설치에관한규정 (1979년 4월 7일)
  15. 대통령령 제10050호 경기도시흥군의왕읍등35개읍설치에관한규정 (1980년 10월 21일)
  16. 법률 제4050호 오산시등12개시및태안군설치와군의명칭변경에관한법률 (1988년 12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