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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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고려 현종
高麗 顯宗
지위
고려국 제8대 국왕
재위 1009년 음력 3월 2일~1031년 6월 17일
대관식 현종(顯宗)
전임 목종(穆宗)
후임 덕종(德宗)
섭정 강조(康兆) 1009년 ~ 1010년
유윤부(柳允孚) 1010년 ~ 1012년
위수여(韋壽餘) 1012년
유진(劉瑨) 1014년 ~ 1019년
유방(庾方) 1027년 ~ 1030년
부왕 안종(安宗)
대량원군(大良院君)
이름
왕순(王詢)
이칭 자: 안세(安世)
별호 선재(禪齋)
연호 ?
묘호 현종(顯宗)
시호 대효덕위달사원문대왕
(大孝德威達思元文大王)
신상정보
출생일 992년 8월 1일 (음력 7월 1일)
출생지 ?
사망일 1031년 6월 17일 (음력 5월 25일) (향년 40세)
사망지 ?
매장지 선릉(宣陵)
왕조 고려(高麗)
가문 개성(開城)
부친 안종(安宗)
모친 헌정왕후(獻貞王后)
배우자 원정왕후(元貞王后) 원화왕후(元和王后)
원성왕후(元成王后) 원혜왕후(元惠王后)
원용왕후(元容王后) 원목왕후(元穆王后)
원평왕후(元平王后)
자녀 효정공주(孝靖公主) 천수전주(天壽殿主)
덕종(德宗) 왕수(王秀) 정종(靖宗)
인평왕후(仁平王后)경숙공주(景肅公主)
문종(文宗) 정간왕(靖簡王)
효사왕후(孝思王后) 아지(阿志)
종교 불교(佛敎)

현종(顯宗, 992년 8월 1일(음력 7월 1일)[1] ~ 1031년 6월 17일(음력 5월 25일[1])은 고려 제8대 국왕(재위: 1009년 ~ 1031년)이다.

주요 이력[편집]

는 순(詢), 는 안세(安世), 보위 즉위 이전의 작위는 대량원군이었고, 묘호현종(顯宗), 시호대효덕위달사원문대왕(大孝德威達思元文大王), 묘호는 선릉(宣陵), 불교 승려 시절 법명선재(禪齋)이다. 태조의 아들 안종(安宗)헌정왕후 황보씨(皇甫氏)의 아들이다.

안종 왕욱경종의 계비 헌정왕후의 사통으로 출생하여 암살 위기를 모면하고 1009년 강조의 정변으로 5촌 조카이자 이종사촌 형인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후 거란의 두 차례 침입으로 피난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비극적인 초년 시절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침착하게 대처하여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었다. 또한 전후 고려의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으며 정변 이후 쇠약해진 왕의 힘을 키우기 위해 지방세력을 규제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화를 이끌었고, 성종 이후 폐지된 연등회팔관회를 부활시켰다.

오랜 여요전쟁의 여파로 여럿 소실된 고려실록을 재편찬하고, 초조 대장경을 간행하였으며 교종 대사찰인 현화사 건립을 지시하였으나, 역시 유교의 진흥에도 힘써 설총과 최치원에게 작위를 추증하고 문묘(文廟)에 처음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조성도감을 설치하여 1029년 8월, 재위 20년에 23km에 달하는 거대한 나성을 쌓아올렸다. 1011년 8월 재위 2년 째에는, 개경의 황성을 증축하고 고려 태조의 뜻을 받들어 장락궁에 새로 황성을 쌓았다.

생애[편집]

즉위 전[편집]

출생과 고아 시절[편집]

992년 태조 왕건의 아들 안종(왕욱)과 대종의 딸이며 태조의 손녀인 헌정왕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981년 경종이 붕어하면서 그의 제4비인 헌정왕후는 궁에서 나와 살았다. 이때 그 이웃에 왕욱(안종)이 살았는데, 두 사람은 자주 왕래하다보니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 정을 통해 헌정왕후는 왕욱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헌정왕후와 현종은 모자간이면서도 사촌 남매간이 된다. 992년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고는 곧바로 죽었다. 이 아이가 왕순(현종)이다.

후일 왕순은 성종의 명에 의해 보모(혹은 유모)에게 맡겨졌다. 어느날 성종의 명으로 왕순이 궁에 들어와 성종과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왕순이 성종의 무릎 위로 기어올라오며 '아비, 아비'라고 불렀다. 이때 성종은 눈물을 흘리며 왕순을 아버지 왕욱에게 보냈다. 왕순은 아버지 왕욱이 사망하는 996년까지 귀양지 사수현(泗水縣, 현 사천시)에서 함께 살았고, 왕욱이 사망한 이듬해인 997년개경으로 돌아왔다.

출가와 탄압[편집]

현종은 12세 때 대량원군(大良院君)에 봉해졌으나 헌애왕후김치양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그를 숭교사(崇敎寺)에 보내 승려로 만들었다. 이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승려가 되었지만 이후 숭교사에 자객들이 자주 들이닥치자 고려 목종과 숭교사 내 승려들의 도움으로 1006년에 신혈사(神穴寺, 현재 서울 진관사)로 거처를 옮겨갔다.

여러 차례 김치양과 헌애왕후가 자객을 보내 자신의 목숨을 노리자 신혈사의 주지승인 진관대사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땅굴을 파 그를 그 곳에 대피시킨 뒤 그 위에 침대를 배치하는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1009년(고려 목종 12년) 서북면순검사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옹립하여(강조의 정변) 왕위에 올랐다. 재위 초기에는 1009년 2월부터 이듬해 1010년 11월까지 강조가 실권을 잡았다.

즉위[편집]

거란의 재침입[편집]

다음해 거란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하자 강조에게 30만 군대로 방어하게 했으나 강조가 패하고 개경이 점령당하는 바람에 나주지채문의 호종을 받아 피난갔다가 환도했다. 이 때의 피난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몽진으로 기록된다. 현종은 창화현 아전에게 병장기를 빼앗기고 적성현에서는 무뢰배들이 그에게 활을 쏘았으며 나중에 공주를 나오면서 임신한 왕후마저 떼어놓고 피난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때에 공주에서 머물다 김은부의 딸과 관계를 맺어 나중에 그의 딸들이 왕후가 된다. 전주에서는 절도사 조용겸이 현종을 납치하려다 위기를 겨우 모면하기도 하였다. 이 기간에는 고려 중앙정부는 실질적으로 와해된 상태였으며 각처의 장수들에 의해서 거란을 물리치게 된다.

무인세력과의 갈등[편집]

1014년 11월 거란의 침입으로 파괴된 궁궐을 수축하고 거란과의 전쟁으로 크게 불어난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무신과 군인들의 영업전을 빼앗았다. 이에 거란과의 싸움에서 공이 높았던 상장군 최질, 김훈등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 정책을 실행한 문신들을 잡아 대궐로 난입하여 현종 앞에서 이들에게 매질을 하고는 거란과의 전공이 높은데도 상을 받기는커녕 영업전을 빼앗긴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신도 공이 높으면 문신처럼 높은 품계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현종은 일단 수락하였다.

1015년 현종은 이자림과 모의하여, 공이 높은 무신들을 위로한다면서 잔치를 열어 고위 무신들을 불렀다. 잔치가 무르익어 무신들이 술에 취하게 되자 이들을 주살했다. 19명의 장군들이 살해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문치가 확고해졌다. 요사에 따르면 거란은 이 사실을 탐지했고 3차 침공에 대한 주장이 거란 조정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

거란의 제3차 침입[편집]

1018년 거란이 현종의 입조(入朝)를 요구하며 다시 쳐들어왔으나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함으로써(귀주대첩) 위기를 모면했다. 1022년 향리의 장의 명칭을 군현에서는 호장(戶長), 향·부곡 등에서는 장(長)으로 간소화시키고, 1024년에는 개경을 확장하여 5부(部) 35방(坊) 314리(里)로 정했다. 또한 그동안 폐지되었던 연등회팔관회를 부활시켰으며, 최초로 문묘종사(文廟從祀)의 선례를 만들었다.

생애 후반[편집]

경제 정책으로는 농상(農桑)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감목양마법(監牧養馬法)을 제정했으며 조세의 균등을 기하고 양창수렴법(養倉收斂法)을 실시했다. 세력 기반이 취약했던 그는 자신의 외가와 가까운 구 신라계 인사들을 중용하여 요직에 발탁하였다.

거란과 변방 야인들의 침입에 대응하여 송나라와의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취약한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왕족과 호족들을 경계하였다.

1031년에 4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능은 경기도 개풍에 있는 선릉(宣陵)이며, 시호는 원문(元文)이다.

가계[편집]

 고려 제8대 국왕   현종 원문대왕 
 顯宗 元文大王
출생 사망
992년 8월 1일(음력 7월 1일)
고려 고려 개성부 왕륜사 남쪽 헌정왕후 사저
1031년 6월 17일(음력 5월 25일) (38세)
고려 고려 중경 정궁 중광전

현종의 직계조상[편집]

 
 
 
 
 
 
 
 
 
 
 
 
 
 
 
 
 
 
세조 왕륭
 
 
 
 
 
 
 
 
 
 
 
태조 왕건
 
 
 
 
 
 
 
 
 
 
 
 
 
 
위숙왕후 한씨
 
 
 
 
 
 
 
 
 
 
 
아버지 안종 왕욱
 
 
 
 
 
 
 
 
 
 
 
 
 
 
 
 
 
김억렴
 
 
 
 
 
 
 
 
 
 
 
신성왕후 김씨
 
 
 
 
 
 
 
 
 
 
 
 
 
 
  현종  
 
 
 
 
 
 
 
 
 
 
 
 
 
 
 
 
 
 
 
 
태조 왕건
 
 
 
 
 
 
 
 
 
 
 
대종 왕욱
 
 
 
 
 
 
 
 
 
 
 
 
 
 
신정왕후 황보씨
 
 
 
 
 
 
 
 
 
 
 
어머니 헌정왕후 황보씨
 
 
 
 
 
 
 
 
 
 
 
 
 
 
 
 
 
태조 왕건
 
 
 
 
 
 
 
 
 
 
 
선의왕후 유씨
 
 
 
 
 
 
 
 
 
 
 
 
 
 
정덕왕후 유씨
 
 
 
 
 
 
 
 
 
 


부모[편집]

생몰년 부모 비고
  안종 安宗 왕욱 王郁    ?  - 996년 태조 왕건 太祖 王建
신성왕후 김씨 神成王后 金氏
   추존 국왕
헌정왕후 황보씨 獻貞王后 皇甫氏
    효숙왕태후 孝肅王太后   
960년 이전[2] - 992년[3]
      - 993년[4]
대종 戴宗[5]
선의왕후 유씨 宣義王后 柳氏[6]
제5대 경종의 왕비
경종 사후 안종과 사통

왕비[편집]

시호 본관[7] 생몰년 부모 비고
원정왕후 김씨 元貞王后 金氏 선산   ?   - 1018년 성종 成宗
문화왕후 김씨 文和王后 金氏
현종 원년(1009년) 왕비 책봉
원화왕후 최씨 元和王后 崔氏 경주  생몰년 미상 성종 成宗
연창궁부인 최씨 延昌宮夫人 崔氏
원성왕후 김씨 元成王后 金氏 안산   ?   - 1028년 김은부 金殷傅
안산군대부인 이씨 安山郡大夫人 李氏[8]
덕종정종의 생모
원혜왕후 김씨 元惠王后 金氏   ?   - 1022년 문종의 생모
원용왕후 유씨 元容王后 柳氏 정주  생몰년 미상 경장태자 敬章太子[9]
미상
현종 4년(1013년) 왕비 책봉
원정왕후, 원화왕후의 친사촌
원목왕후 서씨 元穆王后 徐氏 이천   ?   - 1057년 서눌 徐訥
이천군대부인 최씨 利川郡大夫人 崔氏
현종 13년(1022년) 왕비 책봉
서희의 손녀
원평왕후 김씨 元平王后 金氏 안산   ?   - 1028년 김은부 金殷傅
안산군대부인 이씨 安山郡大夫人 李氏[8]
원성왕후, 원혜왕후의 동생

후궁[편집]

이름 본관 생몰년 부모 비고
원순숙비 김씨 元順淑妃 金氏 경주   ?   - 1055년 김인위 金因謂
미상
덕종 제1비 경성왕후의 생모
원질귀비 왕씨 元質貴妃 王氏 개성  생몰년 미상 왕가도 王可道
개성군부인 김씨 開城郡夫人 金氏
덕종 제2비 경목현비의 언니
  귀비 유씨 貴妃 庾氏       미상
  궁인 한씨 宮人 韓氏 훤영 萱英 양주 한인경 韓藺卿
  궁인 이씨 宮人 李氏 이언술 李彦述
  궁인 박씨 宮人 朴氏 박온기 朴溫其

왕자[편집]

이름 생몰년 생모 배우자 비고
1 덕종 德宗
연경군 延慶君
흠 欽 1016년 - 1034년 원성왕후 김씨 경성왕후 김씨 敬成王后 金氏
효사왕후 김씨 孝思王后 金氏
 제9대 국왕 
2    왕자 수 秀 1016년 - 조졸   미상
3 정종 靖宗
평양군 平壤君
형 亨 1018년 - 1046년 원성왕후 김씨 용신왕후 한씨 容信王后 韓氏
용의왕후 한씨 容懿王后 韓氏
용목왕후 이씨 容穆王后 李氏
제10대 국왕
4 문종 文宗
낙랑군 樂浪君
휘 徽 1019년 - 1083년 원혜왕후 김씨 인평왕후 김씨 仁平王后 金氏
인예왕후 이씨 仁睿王后 李氏
제11대 국왕
5  정간왕 靖簡王
 개성국공 開城國公
  평양공 平壤公  
기 基 1021년 - 1069년      미상     
6 검교태사 檢校太師 충 忠  생몰년 미상  궁인 한씨     덕종의 딸


왕녀[10][편집]

생몰년 생모 배우자 비고
1 효정공주 孝靜公主   ?   - 1030년 원화왕후 최씨       미상
2 천수전주 天壽殿主  생몰년 미상
3 인평왕후 仁平王后 원성왕후 김씨      문종 文宗 문종의 제1비
4 경숙공주 景肅公主       미상
5 효사왕후 孝思王后 원혜왕후 김씨      덕종 德宗 덕종의 제3비
6 효경공주 孝敬公主 원평왕후 김씨       미상
7 경성왕후 敬成王后   ?   - 1086년 원순숙비 김씨      덕종 德宗 덕종의 제1비
8   아지 阿志  생몰년 미상  궁인 박씨 검교소감 檢校少監 정민상 井民相


현종이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고려사》〈세가〉권5
  2. 현화사비》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성종(960년생)의 둘째 누나이다
  3. 고려사》에 의하면 992년 음력 7월 1일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4. 《현화사비》에 의하면 993년 음력 3월 19일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5. 태조 왕건과 신정왕후의 아들
  6. 태조 왕건과 정덕왕후의 딸
  7. 아버지가 국왕 혹은 왕족인 경우, 어머니 혹은 조모의 성씨를 사용
  8. 이허겸의 딸. 이자연의 고모.
  9. 대종선의왕후의 3남. 성종의 동생이며 현종의 외숙부이기도 하다.
  10. 고려사》 열전 권제4 공주 기록순
전임
목종
제8대 고려 왕
1009년 - 1031년
후임
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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