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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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후
金官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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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종의 왕자 | |
이름 | |
휘 | 왕비(王㶨) |
시호 | 장헌(莊憲)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1092년 4월 14일(음력) |
부친 | 문종 |
모친 | 인예태후 이씨 |
금관후 왕비(金官侯 王㶨, ? ~ 1092년 음력 4월 14일)는 고려의 왕족이다. 문종과 인예왕후의 7남이다.
생애
[편집]가계
[편집]고려의 제11대 왕 문종과 인예태후의 일곱째 아들이며, 언제 태어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은 왕, 이름은 비(㶨), 본관은 개성이다. 순종, 선종, 숙종 등의 친동생이며, 권신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왕자 시절
[편집]1077년(문종 31년) 음력 3월 5일 특진으로 검교사공 금관후의 관작과 식읍 1,000호를 받았으며[1]. 이후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21일에 수사도와 식읍 2,000호를[2], 1092년(선종 9년) 음력 4월 6일에는 수태위 겸 중서령의 관작과 식읍 3,000호, 식실 500호를 받았다[3]. 그러나 금관후는 수태위에 오른지 불과 8일 후인 음력 4월 14일 사망하고 말았다[4].
한편 1086년(선종 3년) 음력 2월 8일 금관후의 동복남매 적경궁주와 금관후의 이복형제인 부여공 왕수가 혼인을 하였다[5]. 이 당시 금관후와 변한후, 진한공 등은 이 혼인이 근친혼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중지시킬 것을 선종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6].
사후 금관후에게는 장헌(莊憲)의 시호가 올려졌다. 소생은 없다[6].
가족 관계
[편집]- 조부 : 현종(顯宗, 992~1031)
- 조모 : 원혜왕후 김씨(元惠王后 金氏, ?~1022)
- 아버지 : 문종(文宗, 1019~1083)
- 외조부 : 이자연(李子淵, 1003~1061)
- 외조모 : 계림국대부인 김씨(雞林國大夫人 金氏, 생몰년 미상)
- 어머니 : 인예왕후 이씨(仁睿王后 李氏, ?~1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