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덕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고려 덕종
高麗 德宗
고려의 제9대 국왕
본명 왕흠(王欽)
재위 1031년 ~ 1034년
별명 자는 원량(元良), 작위는 연경군(延慶君)
종교 불교
왕후 경성왕후
효사왕후
부왕 현종
모후 원성왕후
이전 왕 현종
다음 왕 정종

덕종(德宗, 1016년 6월 9일 (음력 5월 2일) [1] ~ 1034년 10월 31일 (음력 9월 17일) )은 고려 제9대 국왕(재위: 1031년 ~ 1034년)이다. 는 흠(欽), 는 원량(元良), 묘호덕종, 시호선효강명광장경강대왕(宣孝康明廣章敬康大王)이다. 현종원성왕후의 첫째 아들이다.

생애[편집]

자는 원량이고 이름은 흠이다. 태어나면서 연경군(延慶君)에 봉해졌다가 1022년 5월 태자로 책봉되었다. 1031년 6월 현종 사후 중광전에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덕종은 거란(契丹)에 사신을 보내어 거란이 압록강에 가설한 부교(浮橋) 및 보성(保城)을 파괴할 것과 고려인의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요 흥종이 이를 거부하자 하정사(賀正使)의 파견을 중지하였다. 또한 국경 지대인 삭주(朔州), 영인진(寧仁鎭), 파천(派川)에 성을 쌓았다.

이듬해 8월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에게 명하여 압록강에서 영원(永遠) 등 14성을 거쳐 동해안의 도련포(都連浦)까지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성하게 하자 동여진인(東汝眞人)과 거란인들의 투항이 속출하였다. 처음으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실시하고, 왕가도를 감수국사(監修國史)로, 황주량을 수국사(修國史)로 삼아 현종 때 시작한 국사편찬사업을 완성하였다.

1034년 병석에 누웠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동생 평양군에게 양위하고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능은 개경 북효(北效)에 있는 숙릉(肅陵)이다. 그동안 위치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어 개성 북쪽 교외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16년 6월 2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개성시 해선리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4㎞ 떨어진 곳에서 1릉과 2릉 총 2개의 왕릉을 발견해 그중 1릉이 숙릉으로 2릉이 주릉으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1릉(숙릉)의 크기는 남북 3.7m, 동서 3m, 높이 1.65~1.73m이다.[2]

가계[편집]

제1비 경성왕후와 제3비 효사왕후는 모두 현종의 딸로 이복 누이이며, 그 중 효사왕후는 이종사촌이기도 하다.

  • 조부 : 안종(安宗, ? ~ 996)
  • 조모 : 헌정왕후(獻貞王后,965/966~992)
    • 부왕 : 현종(顯宗, 992~1031 재위:1009~1031)
    • 모후 : 원성왕후(元成王后, ? ~1028)
    • 이모 : 원혜왕후, 제3비 효사왕후의 친모이므로 장모도 된다.
      • 왕비 : 경성왕후(敬成王后, ? ~1086) - 현종과 원순숙비(元順淑妃)의 딸.
      • 후비 : 경목현비(敬穆賢妃) - 왕가도의 딸. 원질귀비의 여동생.
      • 후비 : 효사왕후(孝思王后) - 현종과 원혜왕후의 딸.
      • 후비 : 이씨(李氏) - 부여군(夫餘郡) 사람으로 공부시랑(工部侍郞) 이품언(李禀焉)의 딸이다. 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와 자매지간.
      • 후비 : 유씨(劉氏) - 검교소감(檢校少監) 충주유씨 유총거(劉寵居)의 딸, 작호가 실전되었다.
        • 딸 : 공주(公主) - 이름이 누락, 검교태사(檢校太師) 왕충(王忠)과 혼인.

기타[편집]

덕종의 후궁 경목현비청주 이씨였다가 왕씨 성을 하사받은 왕가도의 딸이다. 그러나 경목현비가 김씨 성을 사용하였는데, 김씨로 성을 바꾼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개성왕씨 성원록에도 왕가도의 딸이라 언급했으나 성을 김씨로 기록되어 있다.

각주[편집]

  1. <<고려사>> <세가> <덕종 총서>> 현종 7년 병진년(1016) 5월 을사일에 태어나
  2. 북한 "개성에서 고려시대 왕릉 2기 새로 발견"
전 임
현종
제9대 고려 국왕
1031년 - 1034년
후 임
정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