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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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정왕
高麗 忠定王
지위
고려의 제30대 국왕
재위 1348년~1351년
전임자 충목왕
후임자 공민왕
섭정 덕녕공주
부왕 충혜왕
이름
왕저(王㫝[1])
신상정보
출생일 1338년 1월 9일(1338-01-09)
사망일 1352년 3월 23일(1352-03-23) (14세)
부친 충혜왕
모친 희비 윤씨
자녀 슬하 1남 1녀(그 중 서자 왕제)
기타 친인척 공민왕(숙부)
충목왕(이복 적형)
왕숭(서손자)
종교 불교

충정왕(忠定王, 1338년[2] 1월 9일(음력 1337년 12월 9일) ~ 1352년 3월 23일(음력 3월 7일))은 고려 제30대 국왕(재위: 1348년 ~ 1351년)이다. 휘는 저(胝), 첫 봉작은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이고, 원에서 내린 시호충정왕(忠定王)이며, 몽골 이름은 미슈간도르지(몽골어: Mishgan Dorji, 한국 한자迷思監朶兒只 미사감타아지)이다. 충정왕은 폐위됐기 때문에 고려 자체적으로 추숭한 시호는 없고 원나라의 시호 충정(忠定)에서 대왕(大王) 자를 붙여 충정대왕(忠定大王)이다. 외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의 발호로 정사가 문란해졌고, 왜구의 계속된 침입을 막지 못하여 숙부 공민왕의 정변으로 폐위, 유배되었으며 배소에서 독살된다. 충혜왕의 서자로, 충혜왕과 고려 출신 희비 윤씨의 아들이다.

1348년에서 135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적모(嫡母)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을 하였다. 만 14세에 요절하였지만 그에게는 서자 1명과 서녀 1명이 있었다.

생애[편집]

왕자 시절[편집]

어머니 희비 윤씨파평 윤씨 찬성(贊成) 윤계종의 딸로 고려 여인이었다. 2세 때인 1339년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봉군되었고, 7세에 부왕의 죽음을 본다. 1348년(충목왕 4)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봉작되었다.[3]

그러나 이복 형 충목왕이 후사없이 죽게 되자 이복 형 충목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의 뒤는 아들 왕제[4] 대신 그의 숙부 공민왕이 차지하였다.

즉위와 폐위[편집]

즉위 초반 원나라의 공주인 덕녕공주가 배후에서 섭정을 하려 할 시기에 그의 생모인 희비 윤씨윤계종의 친족들이 반발 시도를 하였다.

외가 친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이 세도를 형성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1350년에는 고려 국내에서 처음으로 왜구의 습격이 있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1351년, 어린 군주가 계속 되는 고려의 상황에서 불만을 품어, 이때 충정왕과 함께 충목왕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江陵大君: 恭愍王)에게로 민심이 쏠리자, 1351년 윤택(尹澤)·이승로(李承老) 등은 원나라에 투서를 보내 "충정왕은 나이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 달라"고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이후 공민왕 옹립을 도모하는 원나라의 의해서 강화도에 옮겨졌다.

공민왕이 고려에 귀국한 후 그는 강화도로 추방되었다. 1352년에 유배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후[편집]

후궁에게서 얻은 서자 1명인 왕제는 혈통을 이어 개성왕씨 시중공파의 파조가 된다. 능은 개성(開城)의 총릉(聰陵)이다.

평가[편집]

충정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 희비와 외척들이 전횡을 일삼았고 왜구가 출몰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고려사》와 《동국통감》은 충정왕의 광패한 행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전왕(충정왕)이 일찍이 밤에 근시(近侍)들과 더불어 서로 희학(戲謔)하여 밤을 새우고 혹은 먹물을 시학관(侍學官)의 옷에 뿌리기도 하며,
혹은 여인을 가까이하고 다니는 자가 있으면 문득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서 비록 재상이라도 몽둥이로 치는 일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따금 철퇴로 사람을 쳐서 거의 죽게 하고, 혹은 겨울철에도 얼음이나 눈이 녹은 물을 가져다 얼은 밥을 말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광패함이 이와 같았다.

— 《동국통감》 권46 고려기 공민왕1 

동국통감》에서는 충목왕과 충정왕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충목왕(忠穆王)·충정왕(忠定王)은 모두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는데, 덕녕공주(德寧公主)와 희비(禧妃)가 어머니라는 존귀한 위치로 안에서 권세를 부리고,
간신과 외척은 밖에서 권세를 부리니, 두 임금이 비록 영리한 자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또 충정왕의 때를 당하여 강릉대군(江陵大君)은 직접 숙부가 되므로 국인(國人)들의 마음을 얻었으며,
원나라의 후원이 있었는데, 여러 윤씨(尹氏)들이 이런 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당파를 만들어 사욕을 부렸으므로,
화근을 빚어서 마침내 왕으로 하여금 불행히 짐독(鴆毒)의 살해를 당하게 하였으니, 슬프다.” 하였다.

— 《동국통감》 권45 고려기   

가계[편집]

 고려 제30대 국왕   충정대왕 
 忠定大王
출생 사망
1338년 1월 9일 (음력 1337년 12월 9일) 1352년 3월 23일 (음력 3월 7일) (14세)
고려 고려 강화도

부모[편집]

생몰년 부모 비고
충혜왕 忠惠王 1315년 - 1344년 충숙왕 忠肅王
공원왕후 홍씨 恭元王后 洪氏
 제28대 국왕 
희비 윤씨 禧妃 尹氏   ?   - 1380년 윤계종 尹繼宗
여흥 민씨 驪興 閔氏


자녀[5][편집]

  • 서녀 : 양천 허씨 허백(許伯, 양주군(陽州君), 시호는 문정(文正))에게 출가

각주[편집]

  1. 高麗史 卷三十七 世家 卷第三十七 - 忠定王 卽位年 12월
  2. <<고려사절요>> 충숙왕(忠肅王) 7년 무인년(1338년)에 출생하였다. 재위 3년, 수는 15세였다.
  3. 충정왕[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왕' - 네이트 백과사전
  5.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오직 개성 왕씨 족보에만 보인다.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충목왕
제30대 고려왕
1348년 - 1351년
후임
공민왕
전임
충목왕
제4대 심왕
1348년 - 1351년
후임
왕독타불화
전임
충목왕
한반도의 국가 원수
1348년 ~ 1351년
후임
공민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