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숙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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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숙왕
高麗 忠肅王
고려의 제27대 국왕
본명 왕만(王卍)
초명 왕도(王燾)
재위 1313년 ~ 1330년
1332년 ~ 1339년
종교 불교
왕비 공원왕후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부왕 충선왕
모친 의비 야속진
이전 왕 충선왕
충혜왕
다음 왕 충혜왕

충숙왕(忠肅王, 1294년 7월 30일 (음력 7월 7일) ~ 1339년 5월 3일 (음력 3월 24일)은 고려 제27대 국왕(재위: 1313년~1330년, 복위 1332년~1339년)이다. 초명은 도(燾), 휘는 만(卍), 는 의효(宜孝), 몽골 이름은 아라트나슈리(몽골어: ᠠᠷᠠᠲᠨᠠᠱᠢᠷᠢ Aratnašri, 한국 한자阿刺訥忒失里 옥자늘툭실리). 원에서 내린 시호충숙왕(忠肅王)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의효대왕(懿孝大王)이다. 충선왕 출신의 의비 야속진의 둘째아들이다.

사촌인 심양왕의 무고로 원나라에서 유수생활을 하고 옥새를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압수당하기도 했다.

생애[편집]

강릉대군(江陵大君)으로 봉해졌으나 세자였던 형 왕감이 죽은 후 충선왕의 후계자가 되었다. 1313년, 충선왕이 양위하자 즉위한다. 이후 충선왕은 심양왕 자리를 조카 연안군 왕고에게 물려준다. 왕고는 이후 원나라 양왕(梁王)의 딸과 혼인해 원나라 부마의 대우를 받게 되었고, 왕위 찬탈의 뜻을 품고 사촌인 충숙왕이 주색과 사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구실로 참소한다. 이 때문에 충숙왕은 원나라에 5년간 체류하였으며, 그때 왕인(王印)까지 빼앗기기도 했다.

심양왕의 쿠데타 기도와 국내 친원세력의 암살 위협에 여러번 시달림을 당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으로 1325년에 귀국한 충숙왕은 심양왕 고에게 양위하려 했으나, 한종유 등 신하들의 반대로 취소하고, 왕자 정(禎 : 후의 충혜왕)을 세자로 삼은 뒤 1330년 양위하였다. 그리고 원나라에 가서 부마 상주국 일수왕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나이 어린 충혜왕은 수렵·유희를 일삼고 소행이 옳지 못해, 원의 명으로 1332년 다시 복위되었다가 1339년 죽었다.

가계[편집]

  • 충숙왕 (忠肅王, 1294년~1339년, 재위: 1313년~1330년, 복위: 1332년~1339년) - 제27대

기타[편집]

충숙왕의 치세 중이던 1333년교황 요한 22세가 충숙왕에게 서한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 서한은 현존하지 않고, 고려에 전달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필사본이 남아서 현존하고 있다[1]. 서한의 내용에는 충숙왕이 고려기독교 신자들에게 잘 대해주어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이 들어있었고, 이 때문에 고려에 소수지만 기독교인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고려 영토 내에 있었다는 기독교 신자들의 정체는 원나라를 방문한 로마 가톨릭의 선교사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가톨릭교도이거나,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네스토리우스교 신자들의 후손이라고 여겨진다.

관련 항목[편집]

전임
충선왕
충혜왕
제27대 고려왕
1313년 - 1330년
1332년 - 1339년
후임
충혜왕
전임
충선왕
충혜왕
한반도의 국가 원수
1313년 ~ 1330년
1332년 ~ 1339년
후임
충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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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황, 1333년에 고려 충숙왕에게 서한 보냈다”. 연합뉴스. 2016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