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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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7° 34′ 52.3″ 동경 126° 53′ 26.9″ / 북위 37.581194° 동경 126.890806°  / 37.581194; 126.890806

문화방송
Munhwa Broadcasting Company.svg
MBC 상암 신사옥
MBC 상암 신사옥
한국명 문화방송
한자표기 文化放送
영문표기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약칭 MBC
형태 공영방송, 주식회사
창립일 1961년 2월 21일
개국일 1961년 12월 2일(AM)
1969년 8월 8일(TV)
1971년 9월 19일(FM)
자본금 1,000,000,000원 (2015.12)
매출액 1,500,941,912,398원 (2015)
영업 이익 59,272,035,738원 (2015)
순이익 82,403,520,805원 (2015)
자산 총액 2,557,227,645,206원 (2015.12)
주요 주주 방송문화진흥회 70%
정수장학회 30%
직원수 1,712명 (2015.12)
본사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암로 267
사장 최승호
슬로건 다시, 좋은 친구 MBC
웹사이트 문화방송 - 공식 웹사이트
Picto infobox enterprise.png
주식회사 문화방송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창립 1961년 2월 21일
시장 정보 한국: 028860(상장폐지), 052220
상장일 1968년 12월 27일 상장 2005년 1월 21일 상장

문화방송(文化放送, 영어: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은 대한민국 수도권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공영방송사이다. 다른 지역의 16개의 문화방송네트워크 방송사와 함께 전국방송망을 구축하고 있다. 1961년 2월 21일 창립하였으며, 12월 2일라디오 방송국으로 개국했다. 문화방송이 운영하고 있는 라디오방송은 FM4U와 표준FM이 있으며, 24시간 방송한다. 문화방송의 호출부호는 HLKV이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암로 267 (상암동)에 있고, 경기도 양주의 스튜디오와 MBC드림센터(일산제작센터)등이 있다. 문화방송은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내에 신사옥 건립을 추진해 2014년 6월 28일에 완공하였으며, 2014년 8월 4일 신사옥에서 첫 전파를 발사하였으며, 2014년 9월 1일 신사옥 준공식을 가졌다.

역사[편집]

문화방송은 195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방송인 문화방송(現 부산문화방송)을 모태로 하고 있다. 현재의 부산문화방송은 개국당시부터 1965년까지 명칭이 문화방송이었다. 현재의 문화방송은 現 부산문화방송보다 2년 늦게 개국했으며, 개국당시의 명칭은 한국문화방송이었다. 당시 부산 지역의 유력 재벌이었던 김지태(조선견직 사주)는 문화방송 외에 부산일보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문화방송(現 부산문화방송)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이를 인수하고 1961년 한국문화방송(現 문화방송)도 개국하게 된다. 하지만 김지태는 5·16군사정변(쿠데타) 이후 부정축재자로 적발, 1962년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등 전 재산을 5·16장학회에 헌납하게 됐다.[1][2] 1969년 TV 개국 이후 후발주자였지만,여러 대형쇼를 기획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새엄마, 신부일기, 수선화, 후회합니다 등의 드라마를 히트시키며, 시청률에서 KBS를 앞서고, 마침내는 시청률 우위를 점하고 있던 TBC를 앞서기도 했다.(1974년) 이후 TBC와 시청률이 막상막하였으며, 서로 번갈아가며 드라마를 히트시켰다(그러나 전체적으론 TBC는 드라마·뉴스에서, 문화방송은 웃으면 복이와요 등으로 예능에서 앞섰다. KBS는 가끔씩만 앞섰으며, KBS는 두 민방보다, 채널이 다채롭지 않았다). 1974년 11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경향신문과 통합되었으나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분리되면서 현재 경향신문-문화방송과의 관계는 정수장학회에 관여되어 있다는 것 뿐이다[3]. 1969년 은행 차입과 외자에 의존해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경영난에 봉착한 문화방송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주식의 70%를 쌍용화재, 현대 등 대기업 11회사에게 강제 인수시켰다. 대기업 지분은 배당도 받지 못하고 의결권도 없고 매각도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문화방송은 1963년 4월 12일 정부로부터 전국의 주요 도시 곧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에 지국 설치 허가를 얻어서 네트워크 확장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1963년 8월 8일 문화방송 대구지국(現 대구문화방송), 1965년 문화방송 전주지국(現 전주문화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함으로써 MBC는 전국 6대 도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어 1968년부터 1969년 사이에도 울산민간방송(現 울산문화방송), 진주민간방송(現 MBC경남 진주방송), 영동방송(現 MBC강원영동 강릉방송국), 강원방송(現 춘천문화방송), 라디오목포(現 목포문화방송), 남양방송(現 제주문화방송), 경남방송(現 MBC경남 창원방송) 등 7개의 민영방송이 등장, 문화방송과 네트워크 가맹을 맺음으로써 전국 네트워크에는 총 13개의 직할국 또는 가맹국이 참여하게 되었다.[4]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실세가 되자 대기업들은 이 주식을 헌납하고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한국방송공사(KBS)가 맡게 됐다. 7개 지역가맹사의 주식 또한 각각 51% 이상 인수되어 문화방송은 전 가맹사와 직할국을 계열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에 우위를 보였으며, 뉴스, 드라마, 예능 등 거의 전 부문에서 KBS를 앞선다.(90년대 중반까지)그리고 이 시기 MBC는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다. 87년 민주화 이후 주식의 70%를 국회에서 제정한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가 보유하고 있으며, 사장 선임을 비롯한 간접적인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방송 제작비용을 시청료가 아닌 광고료로 하고 있어 상업방송으로 볼 수 있지만, 경영은 정부에서 하는 '준공영방송'체제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체제로는 영국의 채널 4가 있다. 방송문화진흥회 주식 이외의 주식지분 30%는 정수장학회가 보유하며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연혁[편집]

라디오 시대(1961년 ~ 1969년)[편집]

흑백 텔레비전 시대(1969년 ~ 1980년)[편집]

컬러방송 시대(1980년 ~ 1990년)[편집]

MBC 뉴스 취재현장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공청회 현장)

멀티미디어 시대(1991년 ~ 2000년)[편집]

MBC HDTV 중계차

디지털 시대(2001년 ~ 2010년)[편집]

다채널 시대(2011년 ~ 현재)[편집]

사가[편집]

청록파 시인 박목월에 의해 작사되었으며, 손석우에 의해 작곡되었다. 1974년경부터 문화방송의 사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사가는 iMBC 홈페이지와 타 지역 제휴국의 라디오의 방송 시작 종료 멘트에서 들을 수 있다.

사가 가사에서 "우리 문화방송" 부분은 원래 "우리 문화경향", "MBC 문화방송" 부분은 원래 "MBC 경향신문"이었지만 1980년 언론 통폐합에 따라 지금과 같은 가사로 바뀌었다.[8]

1절

세계로 향하여 펼친 네트웍
오늘의 산 역사를 바로 잡아서
빠르고도 알찬 방송 정확한 보도
사회에 불을 켜는 우리 문화방송

2절

폭넓게 대중의 뜻을 모아서
찬란한 내일로 뻗어 나가는
슬기롭고 밝은 방송 신속한 보도
영광의 선두주자 우리 문화방송

후렴

날마다 즐거운 꿈을 심으며 새 역사 가꾸는 우리의 보람
MBC 문화방송 빛의 메아리

방송[편집]

TV방송[편집]

라디오방송[편집]

지상파DMB방송[편집]

사옥[편집]

변천 과정[편집]

현황[편집]

  • 상암 신사옥 (본사)
    • 공사 기간 : 2010년 6월 18일 ~ 2013년 7월
    • 지하 3층, 지상 14층 / 건축면적 : 34,209m² / 연면적 : 148,737m² [9]
    • 舊 여의도 사옥과 일산 MBC 드림센터 사옥을 합친 규모보다 더 크며 축구장 21개의 규모에 해당한다. 제작스튜디오 5곳, 뉴스스튜디오 2곳, 음향스튜디오 7곳, 매직스튜디오 1곳이 위치해있다.
    • 경영센터, 방송센터, 미디어센터 (내부)
  • 여의도 구 사옥
    • 공사 기간 : 1979년 9월 11일 ~ 1982년 3월 17일 [10]
    • 지하 2층, 지상 10층 / 건축면적 : 37,795m² / 연면적 : 102,390m²
    • 본사로서 뉴스 및 시사교양, 라디오, 예능등 다용도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용도스튜디오 1곳, 드라마스튜디오 2곳, 공개홀 1곳, 소형스튜디오 2곳이 위치하고 있다.
    • 경영센터 (외부)
    • 2014년 8월 3일부터 방송 송출 중단 및 여의도 시대 마감.
  • MBC일산드림센터
    • 공사 기간 : 2004년 9월 ~ 2007년 7월 [11]
    • 지하 4층, 지상 10층 / 건축면적 : 11,736m² / 연면적 : 78,274m²
    • 한국 최대 규모의 복층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주요 기능이며, 2층에 예능 스튜디오 2곳, 공개홀 1곳이 위치해 있고, 7층에 드라마 스튜디오 3곳이 위치하고 있다.

역대 사장[편집]

역대
(대수)
성명 임기 출신 분야 또는 전직
1대 김지태 1961년 2월 ~ 1963년 3월 국회의원
2대 고원증 1963년 3월 ~ 1964년 8월 법무부 장관
3대 황용주 1964년 8월 ~ 1965년 3월
4대 조증출 1965년 3월 ~ 1971년 6월 30일
5대 이환의 1971년 6월 30일 ~ 1980년 6월 20일 경향신문 정치부장
(사장 직무대행) 임택근 1980년 6월 20일 ~ 1980년 7월 5일 서울중앙방송국 (現 KBS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
6대 이진희 1980년 7월 5일 ~ 1982년 6월 7일 서울신문 주필
7대 이웅희 1982년 6월 7일 ~ 1986년 2월 17일
8대 황선필 1986년 2월 17일 ~ 1988년 8월 29일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9대 김영수 1988년 9월 ~ 1989년 연합광고사장
10대 최창봉 1989년 ~ 1993년 2월 대한방송 PD
11대 강성구 1993년 3월 17일 ~ 1996년 6월 14일 기자
(사장 직무대행) 편일평 1996년 6월 14일 ~ 1996년 7월 22일
12대 이득렬 1996년 7월 22일 ~ 1999년 3월 8일 기자
13대 노성대 1999년 3월 9일 ~ 2001년 3월 9일 기자
14대 김중배 2001년 3월 9일 ~ 2003년 3월 한국일보 기자 & 한겨레 신문 사장 & 동아일보 편집국장
15대 이긍희 2003년 3월 ~ 2005년 2월 25일 프로듀서
16대 최문순 2005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8일 기자
17대 엄기영 2008년 2월 29일 ~ 2010년 2월 8일 기자
18대 김재철 2010년 2월 26일 ~ 2013년 3월 26일 기자
19대 김종국 2013년 5월 3일 ~ 2014년 2월 24일 기자
20대 안광한 2014년 2월 25일 ~ 2017년 2월 24일 프로듀서
21대 김장겸 2017년 2월 25일 ~ 2017년 11월 13일 기자
(사장 직무대행) 백종문 2017년 11월 13일 ~ 2017년 11월 14일 프로듀서
(사장 직무대행) 최기화 2017년 11월 15일 ~ 2017년 12월 6일 문화방송 기획본부장
22대 최승호 2017년 12월 7일 ~ 현재 프로듀서

회사[편집]

조직[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