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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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963년 4월 25일
폐국 1980년 11월 30일
언어 한국어

동아방송(東亞放送)은 동아일보에서 운영하던 옛 대한민국민영 라디오 방송이었다. 영문 약칭은 DBS (Donga Broadcasting System) 이다.

역사[편집]

이승만 정권의 민간방송국으로는 서울에 기독교방송(HLKY, 1954년),[1] 부산에 부산문화방송국(HLKU, 1959년)이 설립되고,[2] 1960년에 서울 문화방송국 설립이 예정되어 있었을 뿐이었다.[3] 이후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고 새로 들어선 장면의 민주당 정부는 민간방송을 장려했고, 언론 방송국의 필요성을 인식했던 동아일보사는 1960년 민간방송 허가 신청을 내 이듬해 5곳의 경쟁을 물리치고 설립 인가를 받았다.[4] 곧 이어 발생한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무너졌으나 박정희 정권은 허가를 취소하지 않았고, 3년 간의 준비 끝에 1963년 동아방송을 설립하게 되었다. 동아방송은 1963년에 개국한 라디오 AM 방송을 넘어서, 1965년 라디오 FM방송, 1967년 TV 방송을 신청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 정책에 따라 불허 된다. 또한 춘천, 강릉, 대전, 전주, 광주, 제주, 대구, 부산에 지역국 설치를 신청했지만 이 또한 불허되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제3공화국이 무너지자 동아방송은 여의도에 방송국 건립을 하면서 그 동안 번번히 불허되었던 FM 방송, TV 방송, 지역국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곧 이어진 12.12 사태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1980년 말 언론 통폐합을 실시하면서 KBS에 몰수되어 KBS 라디오 서울로 변경되었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이 새로운 민영 방송인 SBS를 허가하면서 이듬해 3월 11일 오후 5시에 KBS 라디오 서울을 폐국하였다. 그리고 KBS는 주파수를 SBS에 넘겨주게 되는데 SBS 라디오가 개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동아일보는 2010년 케이블 TV 종합편성 채널 허가를 받고 이듬해 말 채널A를 개국하여 다시 방송에 진출하였으며, 현재까지 채널A가 동아방송의 후신임을 주장하고 있다.

대표 프로그램[편집]

  • 오후의 응접실 - 전영우 사회자가 이서구, 양주동, 김두희 등의 고정출연자를 중심으로 생활 속의 위트와 유머를 발견하는 프로그램으로, 동아방송의 출범과 함께 시작하여 1970년에는 370회를 넘겼다.[5]
  • 오늘은 푸른하늘 - 매일 아침 출근시간대에 10분간 방송되는 일일드라마로, 1967년 970회를 넘겼다.[6]
  • 태평양 전쟁 - 태평양 전쟁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매일 밤 20분간 방영, 1968년 100회를 넘겼다.[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것이 서울이다 (19) 라디오·TV, 《매일경제》, 1967.9.21
  2. 釜山民間 放送局 15日에發足, 《경향신문》, 1959.4.14
  3. 明年六月에發足 HLKC民間放送局, 1959.6.30
  4. "여기는東亞放送(동아방송)…" 「民放의主役」18年, 《동아일보》, 1980.11.29
  5. 人氣 長壽프로 巡禮 (2) 유쾌한 응접실 東亞放送, 《동아일보》, 1970.7.25
  6. 放送 長寿프로 (7) 東亞放送「오늘도 푸른하늘」, 《동아일보》, 1967.6.6
  7. 東亞放送 長壽프로『太平洋戰爭』百回돌파, 《동아일보》, 1968.3.2

관련 기사[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