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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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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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여의도 사옥(현 KBS 별관)
TBC 여의도 사옥(현 KBS 별관)
한국명 동양방송
한자표기 東洋放送
영문표기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
약칭 TBC
형태 민영방송, 주식회사
창립일 1964년 5월 9일
개국일 1964년 12월 7일
폐국일 1980년 11월 30일
이후 회사 KBS2(Happy FM 제외), KBS 제3라디오, JTBC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6 (여의대방로 359)
모기업 삼성그룹
슬로건 보다 빨리, 보다 널리, 보다 풍부하게

동양방송(東洋放送) 또는 TBC(Tongyang Broadcasting Company)는 1964년 5월 9일부터 1980년 11월 30일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지상파 민영방송사이다. 대경권 지역 민방인 TBC 대구방송과는 관련이 없다.

역사[편집]

설립이념[편집]

‘온 국민에게 보다 잘 살 수 있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고 그를 위해서 스스로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일깨우며, 이 나라에 모든 개인과 가정과 촌락 그리고 국가사회 구석구석에 맑게 샘솟는 보이심이 충만하도록 하자’는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준비[편집]

대한민국 최초의 TV 상업방송으로 동양방송을 준비하고 있음이 보도된 것은 1962년 9월이었다.[1] 기사에 다르면 동양텔레비죤방송주식회사가 순수한 대한민국내 기술로 전파의 송출 준비를 마치고 카메라 3대와 중계차 1대를 확보, 대한민국 정부에 채널을 신청하고 대기중이었다. 이듬해 1월에는 당국의 허가와 함께 채널 7번을 배정받아 당해 5월 개국을 예정하고 있음이 보도되었다.[2] 하지만 개국은 미뤄졌으며, 그해 7월에는 방송국 회장 이재형과 이사 이병철이 도쿄 닛폰 테레비 회장을 방문, 기술 지원 등의 원조를 요청하였다.[3] 당시 정부는 TV 수상기와 송신기를 제작이 불가능한 부품 외에는 국내에서 생산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동양방송국의 텔레비전 카메라는 영화 카메라와 중고 기기를 결합, 자체 제작되기도 했다.[4]

개국 및 운영[편집]

1964년 5월 9일동양라디오를 개국했으며, 1964년 12월 7일 동양텔레비전(서울 아날로그 7번, 부산은 1964년 12월 12일 아날로그 9번으로 개국),[5] 1966년 8월 15일에는 동양FM을 개국했다. 동양방송은 TV 개국 이후 쇼쇼쇼를 비롯한 쇼 프로그램과 다양한 연속극으로 이목을 끌었고, 국영방송이었던 KBS의 시청률을 앞질렀으며, 민영방송 MBC가 TV 개국을 한 후에도 우위였으나, MBC가 여러 드라마를 히트시키며, 이후 MBC와 시청률에 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양방송이 문화방송을 근소하게 앞섰다. (예능 제외) (국·공영방송인 KBS는 두 민방에 밀려났고,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도 두 민방보다는 적었다.)

1960년대말에는 시설 확장을 위해 87만여 달러의 외국의 차관을 도입하기도 했다.[6] 1971년 동양방송의 공칭자본금은 4억원으로 평가되었다.[7] 1970년대초에는 동아방송, 문화방송과 합자로 송신탑을 건립하였다.[8] 1978년부터는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준비하는 등 큰 성장을 하였다.

언론 통폐합[편집]

12.12 사태 이후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여 허문도가 단행한 언론 통폐합 조치에 따라 1980년 11월 30일에 동양방송은 한국방송공사1980년 12월 1일 새벽 0시를 기해서 강제로 통폐합되면서[9] AM 라디오는 KBS 제3라디오, FM 라디오는 KBS 제2FM, 텔레비전은 KBS 2TV가 되어 동양방송은 없어졌다. 인수 당시 동양방송의 재산 규모는 340억원에 달했다. 동아방송은 약 42억원, 기타 방송들은 10억대 미만이었다.[10] 후에 중앙일보사는 당시의 자산을 700억원으로 추정하기도 했다.[11]

언론 통폐합 이후[편집]

노태우 정부 주도의 5공비리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이고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인 1988년 10월, ‘동양방송부활 추진위’가 구성되어 방송 부활을 호소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12]

1990년 11월 26일, 중앙일보사는 한국방송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동양방송 강제 양도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액 860억원을 지급하라는 배상금 지급신청을 서울지검 서울지구국가배상심의회에 제출하였으나,[11] 위원회에서는 소멸 시효 3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중앙일보를 포함한 14개사의 손해배상 신청을 기각하였다.[13]

20년 후인 2009년 11월 30일 옛 TBC 관계자와 연예인 등 400여 명이 '동양방송 환원을 기원하는 모임'을 열고 중앙일보종합편성채널 사업 진출 추진을 격려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동양방송이 지상파였지만, 종편만 허용돼 종편 추진)[14] 중앙일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절차 이전부터 자사의 종편 JTBC가 TBC의 후신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1980년 11월 30일에 폐국된 TBC를 기념해 2011년 12월 1일에 개국했다.[15]

동양라디오의 수도권 AM 주파수였던 639㎑는 1980년에 제3라디오가 되었다가 1981년에 폐지되어 제2라디오 동시방송으로 전환되었으며 동양방송과 전혀 관련이 없는 2000년에 제3라디오가 개국하였다. 한편 2010년에 제3라디오 주파수를 1134㎑로 옮기면서 639㎑는 폐지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639㎑ 주파수를 내보냈던 개봉송신소도 폐쇄하였다.

제휴국과 지역국[편집]

  • 동양FM : 대구광역시(대경권) - 한국FM
  • 지역국 : 부산광역시(동남권) - 부산동양방송
  • 동양라디오 : 군산 - 서해방송, 광주광역시 - 전일방송
  • 동양텔레비전 : 해외 - 닛폰TV

로고송[편집]

신원미상의 여성이 부른 "정성을 다하는 동양 텔레비전"과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 동양 텔레비전"이 사용되었다.

사가[편집]

  • 동양라디오(개국당시 라디오서울) 사가의 가사를 동양TV, FM이 개국하면서 바꾸었으며, 멜로디는 같다.

TBC 동양방송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FM도 동양방송 동양방송
뉴스도 교양도 오락도 하늘을 전파로 수놓아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아~ 아~ 아~
사랑해 TBC 동양방송

주요 프로그램[편집]

뉴스[편집]

  • TBC 석간
  • TBC 리포트
  • TBC 뉴스
  • 오늘의 스포츠
  • 뉴스 기상도 (동양 라디오)

드라마[편집]

외화(외국 드라마)[편집]

만화[편집]

영화[편집]

코미디/퀴즈[편집]

쇼 오락[편집]

TBC FM[편집]

TBC 라디오[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商業放送을凖備, 《동아일보》, 1962.9.26
  2. 民間東洋TV許可 오는5月開局豫定, 《동아일보》, 1963.1.1
  3. 技術援助등要請 東洋TV서日本에, 《경향신문》, 1963.6.15
  4. 活氣띠게될 TV放送界, 《경향신문》, 1964.2.17
  5. 7日開局 첫民間放送局 東洋텔레비죤, 《동아일보》, 1964.12.5
  6. 民間TV붐 이를 69년, 《경향신문》, 1969.1.1
  7. 企業家와財閥, 《매일경제》, 1971.2.23
  8. 「남산綜合送信塔」完工,가동단계, 《동아일보》, 1971.12.3
  9. 이병철의 경영철학 p.268 - 삼성경제연구소 저
  10. 통폐합때 민영방송 재산 방송공사,3백40억 인수, 《한겨레》, 1988.10.11
  11. TBC 원상회복요구 소송, 《동아일보》, 1990.11.26
  12. 東洋·東亞방송 부활추진, 《경향신문》, 1988.10.20
  13. 「言論통폐합」損賠신청 기각, 《경향신문》, 1991.2.9
  14. 한자리에 모인 TBC 시절 ‘그때 그 사람들’ 중앙일보,2009년 12월 1일
  15. CBS 특별취재팀 , "개국 못하면 사표 써!" 종편54 12/1 개국 강행 왜?, 노컷뉴스, 2011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