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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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洪錫炫
기본 정보
출생 1949년 10월 20일(1949-10-20) (67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美 스탠퍼드 大 대학원
직업 대학 교수, 기업가, 외교관, 정치가
종교 불교천주교(세례명: 세례자 요한)
본관 남양(南陽)
경력 삼성코닝 부사장
중앙일보 회장
JTBC 회장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
우리당 특임외교안보행정위원
민주신당 국제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한국기원 총재

의원 선수 無선 의원
정당 무소속

홍석현(洪錫炫, 1949년 10월 20일 ~ )은 대한민국기업가대학 교수이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앙일보, JTBC 회장을 지낸 이후 한국기원 총재 직위를 지내고 있다. 그는 기업인 이건희의 처남이며 기업인 이재용의 외숙부이다.

생애[편집]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세계은행(World Bank) 이코노미스트로, 1985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86년부터 삼성코닝 상무, 전무, 부사장 역임 후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해 1999년 회장직에 올랐다. 이때부터 중앙일보 한글제호 변경, 가로쓰기 시행, 섹션신문 발행 등 한국 일간지의 혁신을 주도하며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세계신문협회 회장,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아시아 지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신문협회장을 맡았다. 2005년에는 주미 한국대사를 지냈다. 2006년 중앙일보 회장 복귀 후 2011년부터 JTBC 회장을 중임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3월,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을 비롯해 맡고 있는 모든 중앙미디어네트워크 계열사 회장직을 사임했다.

2014년부터 한국기원 총재와 대한바둑협회회장을 맡고 있다. 이 밖에도 세계문화오픈(WCO) 조직위원회 위원장,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아시아 태평양 그룹 부회장, 아시아재단 이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자문위원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 2월에 주미 대한민국 대사로 재직하다가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된 논란으로 주미대사직을 중도에 사퇴하였다. 그 후 2006년 12월 27일에 중앙일보 회장으로 복귀하였다.[1]

2007년 중앙일보 지분의 43.79%를 소유하고 있었다.[2]

중앙미디어네트워크가 지주회사가 된 이후에는 중앙일보 지분이 29.40%으로 줄었다. [3]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경력[편집]

  • 1977년 3월 ~ 1983년 3월 : 세계은행(IBRD) Economist
  • 1983년 3월 ~ 1983년 10월 : 재무장관 비서관
  • 1983년 10월 ~ 1985년 1월 :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 1985년 4월 ~ 1986년 9월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 1986년 9월 ~ 1994년 4월 : 삼성코닝 상무, 전무, 부사장
  • 1987년 3월 ~ 1988년 9월 :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 1994년 3월 ~ 1999년 10월 : 중앙일보 사장, 발행인
  • 1999년 10월 ~ 2005년 2월 : 중앙일보 회장, 발행인, 인쇄인
  • 2002년 5월 ~ 2005년 2월 :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 2003년 3월 ~ 2005년 2월 : 제35대 한국신문협회장
  • 2003년 6월 ~ : 세계문화오픈(World Culture Open) 조직위원회 위원장
  • 2005년 2월 ~ 2005년 9월 : 제20대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 대사
  • 2005년 12월 ~ 2006년 6월 : 열린우리당 특임외교안보행정위웡
  • 2006년 12월 ~ 2017년 3월 : 중앙일보 회장
  • 2011년 2월 ~ 2017년 3월 : JTBC 회장
  • 2012년 12월 ~ : 삼극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회장
  • 2013년 1월 ~ : 아시아재단(Asia Foundation) 이사
  • 2013년 12월 : 서예진흥위원회 위원장
  • 2013년 12월 ~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이사
  • 2014년 1월 ~ : 한국기원 총재
  • 2014년 2월 ~ 2016년 8월 : 대한바둑협회장
  • 2014년 4월 ~ : 베르그루엔 거버넌스 연구소 21세기 위원회 멤버 (Berggruen Institute on Governance, 21st Century Council)
  • 2014년 7월 ~ 2016년 6월 : 국제바둑연맹(International Go Federation) 회장
  • 2014년 8월 ~ : 채텀하우스 자문위원 (Chatham House, Panel of Senior Advisers)
  • 2016년 1월 ~ : 경기고등학교 동창회장

중앙일보 혁신[편집]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중앙일보는 한국 일간지 중 혁신적인 행보를 계속해왔다. 1994년 한국의 일간신문 중 최초로 일반/경제/스포츠 등 섹션을 분리한 신문을 발행했으며 최초로 전문기자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1995년 ‘조인스’라는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7년 중앙SUNDAY 일요신문을 창간했다. 2009년 중앙일보는 한국 일간지 최초로 판형을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했다. [4]

글로벌 미디어그룹 경영[편집]

2000년대 들어 중앙일보는 종합미디어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재탄생했다. 신문군(중앙일보ㆍ중앙SUNDAYㆍ일간스포츠ㆍ코리아중앙데일리), 방송군(JTBCㆍJTBC2ㆍJTBC3폭스스포츠ㆍJTBC GOLF), 출판, 매거진, 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 등 미디어 계열사를 두루 갖추며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다채로운 미디어 포트폴리어를 갖춘 종합미디어그룹이 됐다. [5] 그리고 2016년 보광보광제주를 인수했다. [6]

국내외 활동[편집]

알파고 명예9단증 수여[편집]

한국기원 총재로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에게 명예 9단증을 수여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5번기에서 4:1로 승리했다. [7]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여준 딥마인드 알파고 개발팀에 경의를 표하고 이에 맞서 초인적인 정신력과 창의성을 보여준 이세돌 9단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인공지능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이번 대회가 단지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대결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류에 기여할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PCI 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수상[편집]

2016년 2월 한국에서 최초로 태평양세기연구소(PCI)로부터 ‘PCI 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개인부문 상을 수상했다. PCI는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연안국 간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을 위해 1990년 설립된 비영리 재단이다. 2000년부터 아·태 지역 국가의 가교 역할을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에게 상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 장관, 해럴드 브라운 전 미국 국방 장관,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 스칼라피노 전 UC버클리 교수,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 대사 등이 상을 받았다. [8]

미원렉처[편집]

2015년 5월 28일 ‘새로운 한·중·일 시대와 대한민국의 꿈’이란 특강에서 “현재 한국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개방을 통해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제3의 개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매력국가’ ‘향기가 나는 국가’라는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희의 대표적인 특별강연 시리즈 중 하나인 <미원렉처>는 경희대학교 설립자 조영식 박사의 호 ‘미원(美源)’을 따서 이름 지은 강연이다. ‘학문과 평화’의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기획한 <미원렉처>는 국내외 석학과 거장, 실천인을 연사로 초빙해 강연을 진행한다.

문화다양성 기여[편집]

J글로벌포럼과 삼극위원회를 주최하며 학자와 언론인들 간의 유대를 끈끈히 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조직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월드컬처오픈(WCO)은 세계인의 평화와 친선, 화합과 축제의 장 마련, 신문화 창출, 나눔과 배움의 기회 마련,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생명운동과 상생운동 전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문화행사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7년 화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화동문화재단은 광화문 복원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치 오브 인라이튼먼트(The Arch of Enlightenment)‘ 제작을 후원하기도 했다. [9]

또 흩어져있는 서예 관련 단체들을 통합해 서예진흥위원회를 만들고 예술의 전당에 세계에서 유일한 서예박물관을 개관했다. [10]

탈세 사건과 해당 관련 논란[편집]

1999년 6월 29일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있었고, 그 후 1999년 10월 2일 홍석현은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등으로 구속되었다.[11] 1심에서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38억원을 선고받았고, 2000년 5월 26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30억원 판결을 받았는데[12], 2000년 8월 15일을 기하여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된다. 그 보름 후 중앙일보 회장으로 복귀한다.[13]

1999년 9월 30일 검찰 조사를 받으러 대검찰청에 도착할 때, 중앙일보 기자 40여명이 도열하여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친 일은 기자와 언론 사주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았다.[14]

직계 가계[편집]

각주[편집]

  1. “홍석현 전 주미대사, 중앙일보 회장에 선임”. 중앙일보. 2006년 12월 27일.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2. “이건희 회장에 중앙일보 의결권”. 조선일보. 2007년 11월 27일.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3. 사주와 광고에 중독된 신문, 소유구조 이대론 안 된다.
  4. “Seok-Hyun Hong |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org》.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5. “JoongAng Media Network”. 《jmedianet.com》.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6.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디지털 혁신의 출발점””. 《www.journalist.or.kr》.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7. “홍석현 총재 “세기의 바둑대결,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8.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韓 최초 ‘PCI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수상”. 2016년 2월 28일.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4894240.  |제목=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10. “예술의전당 - 공간이용안내 - 공간별소개 - 서울서예박물관”. 《www.sac.or.kr》. 2016년 7월 22일에 확인함. 
  11. “[특집] 중앙일보 사태의 진상 - 대선편파보도 시비에서 보광탈세 파동까지”. 신동아. 1999년 11월.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2.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원심 확정 벌금 30억”. 한겨레. 2000년 5월 26일.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3. “[미디어] '신문개혁' 시민운동 성큼”. 한겨레. 2000년 12월 25일.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4. “홍씨소환 안팎/출두현장 중앙일보기자 `격려인사'. 한겨레. 1999년 10월 1일. 2007년 11월 27일에 확인함. 홍석현 사장은 검찰이 나오라고 통보한 30일 오전 10시보다 3분쯤 이른 시각에 검정색 체어맨 리무진을 타고 대검청사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중앙일보사 기자 40여명이 "홍 사장, 힘 내세요"라며 격려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15. 2011년 8월 20일에 사망한 홍석준 기자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전임
홍진기
제2대 중앙일보 회장
2006년 12월 ~ 2017년 3월
후임
홍정도
전임
한승주
제20대 주미국 대사
2005년 2월 ~ 2005년 9월
후임
이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