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직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military.png
신직수
申稙秀
생애 1927년 3월 21일 ~ 2001년 9월 9일 (75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평산(平山)
별명 (號)는 인강(仁崗)
종교 유교(성리학) → 불교천주교(세례명: 요셉)
배우자 김순아
자녀 슬하 3남 2녀
친척 신현성(손자)
신은지(손녀)
홍석현(사위)
조혜진(자부)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52년 ~ 1961년 12월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소령
근무 육군군사고등법원
육군본부 헌병참모부
지휘 법무장교
주요 참전 한국 전쟁
서훈 내역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청조근정훈장
보국훈장 통일장
중화민국 특종대수운마훈장
기타 이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 부장
대통령 비서실 법률담당 특별보좌관
신민주공화당 외교안보행정특임위원
자유민주연합 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신직수(申稙秀, 1927년 3월 21일 ~ 2001년 9월 9일)는 대한민국군인이자 前 검찰총장, 前 법무부 장관이다. 박정희 정권의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1974년 3월15일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당시 신문은 ‘울릉도 거점 간첩단 47명 검거’라고 제목을 달았다. ‘정부전복 획책…10여년간 암약’, ‘위장업체·서클 등 구성’, ‘지식층·군부 침투 기도’가 부제였다. 47명의 인적 사항과 얼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조작이었다. 울릉도 주민과 1960년대 중반 일본 농업연수를 다녀온 전북 사람들을 억지로 엮어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간첩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1974년은 유신 정권이 저항에 부닥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정권은 국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2차 인혁당 사건)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른바 사법살인이 자행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을 살해한 것이다. 유신 정권의 대법원은 전영관·김용득·전영봉 세 사람에게 사형, 4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15년에서 1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형은 1977년 12월5일 집행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감옥생활과 보안관찰로 고통을 받았다.

울릉도 간첩단에는 유명 인사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건에 비해 오랫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다. 피해자 한 사람이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2010년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피해자들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을 포함해 19명이 지금까지 무죄를 선고받았다.

생애[편집]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충청남도 서천 출생이며 호(號)는 인강(仁崗)이다. 1952년 육군 갑종사관 군법무관 장교로 임관한 후 1961년 12월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특이사항은 군 법무관 임용시험 합격자 출신으로서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그리고 중앙정보부을 역임한 전무후무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군 법무관 임용시험 출신이 고등고시, 사법시험의 기수가 생명과 같은 검찰조직의 수장으로 만 7년간 재직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1]으로 인해 무려 36세의 젊은 나이에 검찰총장에 올랐다. 공직 시절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청조근정훈장, 보국훈장 통일장, 중화민국 특종대수운마훈장 등을 받았다.[2][3]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경력[편집]

가족 관계[편집]

관계 이름 출생일 사망일 활동사항
배우자 김순아(金順兒) 1929년 10월 6일 2009년 7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
장남 신창균(申敞均) 1950년 3월 27일 - 동광기업 대표
장녀 신연균(申硯均) 1953년 2월 21일 - 홍석현의 아내
차남 신헌(申獻) 1954년 9월 7일 - 조혜진의 남편
3남 신황균(申晃均) 1957년 1월 10일 - 광륜상사 대표(미국 거주)
차녀 신선균 1961년 11월 28일 - -
손자 신현성 1985년 11월 12일 - 티켓몬스터 대표

신직수를 연기한 배우[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박정희가 군 사단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법무참모를 맡았다
  2. 장영은. 신직수 전 법무장관 별세. 연합뉴스. 2001년 9월 9일.
  3. 이수형. 신직수 전법무부장관 별세. 동아일보. 2001년 9월 9일.
  4. 한국대학은 이후 국제대학을 거쳐 서경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5. 일부포털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다
  6. 동아일보, 2001-09-09
전임
박원석
제4대 중앙정보부 차장
1963년 7월 19일 ~ 1963년 12월 7일
후임
이병두
전임
정창운
제11대 검찰총장
1963년 12월 7일 ~ 1971년 6월 3일
후임
이봉성
전임
배영호
제22대 법무부 장관
1971년 6월 4일 ~ 1973년 12월 2일
후임
이봉성
전임
이후락
제7대 중앙정보부장
1973년 12월 3일 ~ 1976년 12월 3일
후임
김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