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홍진기

출생 1917년 3월 13일
고양군 한지면 하왕십리 (現 성동구 하왕십리동)
사망 1986년 7월 13일 (69세)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력 내무부 장관
배우자 김윤남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창씨개명으로 인해 도쿠야마 신이치(德山進一)라는 이름을 썼다. 아호는 유민(維民)[1] 배우자는 김윤남(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2]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생애[편집]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2년 경성지법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일제 때 판사[3]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에는 법무부 차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제네바 회담 참석차 출국하는 임병직 · 변영태 · 홍진기(1954)

법무부 차관이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4]

법정에 선 홍진기, 곽영주, 유충렬(왼쪽부터, 1960년)

4.19 혁명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사건으로 모는 등 이승만 독재정권 부역 행위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고, 처음에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얼마 안 가 석방되었다.

이후 삼성회장이자 훗날 사돈 관계[5]를 맺게 될 이병철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1964년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 사장, 1968년 중앙일보사 대표이사 사장, 1971년 주식회사 동양방송 대표이사, 1974년 중앙일보·동양방송주식회사 사장, 1980년 중앙일보사 회장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6]에 등재되기도 했다.

가계[편집]

관계 이름 출생일 사망일 활동사항
배우자 김윤남 1924년 6월 25일 2013년 6월 5일 원불교 원정사
장녀 홍라희 1945년 7월 15일 리움 관장
사위 이건희 1942년 1월 9일 삼성전자 회장
외손자 이재용 1968년 6월 23일 삼성전자 부회장
외손녀 이부진 1970년 10월 6일 호텔신라 사장, 삼성애버랜드 사장, 삼성물산 고문
외손녀 이서현 1973년 9월 20일 제일모직, 제일기획 부사장,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위원
장남 홍석현 1949년 10월 20일 중앙일보 회장
손자 홍정도 1977년 11월 11일 JTBC 사장
차남 홍석조 1953년 1월 8일 보광훼미리마트 장, 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손자 홍정국 1982년
3남 홍석준 1954년 9월 17일 삼성SDI 부사장
4남 홍석규 1956년 1월 15일 보광 대표이사
차녀 홍라영 1960년 1월 10일 삼성문화재단 상무
사위 노철수 1956년 7월 27일 애미커스 회장, 아버지 前 국무총리 노신영

각주[편집]

  1. 홍진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유진오. 《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 
  3. 주진우 (2009년 11월 20일). “조·중·동이 친일인명사전 때리는 까닭”. 《시사인》. 2014년 4월 3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최운상 (2008년 2월 1일). “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신동아》 (동아일보). 2016년 8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5. 정은균 (2013년 8월 20일). “이건희 장인이 '홍찐구'로 조봉받은 사연”.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3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6. 유인경 (2008년 8월 28일). ““독립투쟁이 전설로 묻혀서 되겠나, 그래서 나섰다””. 《경향신문》. 2014년 4월 3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전임
이병철
제2대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
1980년 7월 ~ 1986년 7월
후임
홍석현
전임
정재환
제7대 법무부 차관
1954년 2월 17일 ~ 1955년 10월 5일
후임
임석무
전임
민복기
제2대 해무청장
1955년 10월 5일 ~ 1958년 2월 20일
후임
권성기
전임
이호
제9대 법무부 장관
1958년 2월 20일 ~ 1960년 3월 23일
후임
권승렬
전임
최인규
제19대 내무부 장관
1960년 3월 23일 ~ 1960년 4월 24일
후임
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