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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 TV 방송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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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 TV 방송망 주식회사
형태주식회사
창립1952년 10월 28일
창립자쇼리키 마쓰타로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산업 분야텔레비전 방송 사업
본사 소재지도쿄도 미나토구 히가시신바시1쵸메 6-1
핵심 인물
쿠보타 신타로 (대표이사)
매출액연결: 3,110억 5,100만 엔 (2019년)
자산총액연결: 6,009억 7,800만 엔 (2019년)
주요 주주니혼 TV 홀딩스 100%
(주식회사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14.6%)
종업원 수
1,247 명 (2017년)
자회사닛테레 테크니컬 리소시즈
닛테레 악스온
닛테레 이벤츠
닛폰TV 아트
Vap
니혼TV 엔터프라이즈
매드하우스
자본금60억 (2012년)
웹사이트http://www.ntv.co.jp

니혼테레비방송망주식회사(일본어: 日本テレビ放送網株式会社, にほんテレビほうそうもうかぶしきがいしゃ, Nippon Television Network Corporation, NTV)는 1952년에 설립된 간토 광역권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일본민영방송사이다. 일본의 민영방송사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된 방송사이기도 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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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부호(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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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 JOAX-DTV(UHF25ch/리모콘ID4ch, 주파수545.142857 MHz/10 kW)

지역 민방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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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닛폰 뉴스 네트워크를 조직하였고 몇 년후에는 프로그램 네트워크 NNS를 조직해 지역 민방 네트워크 협정으로, 맺고 있으며 오키나와현[1]에 NNN계열방송국이 없기 때문에 보도취재지역에 간토지역 외에도 오키나와현이 포함된다.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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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이래 오랫동안 4채널(4チャンネル, 욘찬네루) 및 NTV 등의 약칭을 사용해 왔으나, 1990년대 중후반부터 캠페인을 통해 닛테레(日テ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 개국한 BS 계열 방송의 채널명 역시 BS닛테레(BS日テレ)로 정했다. 표기상의 회사명인 日本テレビ니혼이 아닌 닛폰으로 읽는 것이 정식 독음이며, 이는 NHK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본TV 아나운서들은 실제 방송에서 니혼 테레비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방송 개시·폐막 영상인 비둘기의 휴일(원제: 鳩の休日, 하토노 큐지츠)에서도 방송국명을 니혼 테레비로 읽는다.

케이블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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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광역권에 걸친 지상파 방송 이외에 이하의 채널을 방송, 공급하고 있다.

日テレG+(닛테레G+),
일본스포츠 전문 채널이다. 닛폰 TV 방송망 계열의 유료방송 채널로, 프로 야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였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중심으로 프로야구 중계를 제공했으며, 축구, 모터스포츠,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의 경기와 관련 프로그램도 방송하였다. 이 채널은 과거 G+ SPORTS & NEWS 등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후 닛테레G+라는 브랜드로 운영되었다.
日テレNEWS24(닛테레 뉴스24)
일본뉴스 전문 채널이다. 닛폰 TV 방송망이 운영하며, 국내외 주요 뉴스와 속보를 24시간 편성·방송한다. 일본TV 계열의 뉴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경제, 사회, 정치, 국제, 기상 등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뉴스 전문 채널로 운영되어 왔으며, 이후 브랜드 개편을 거치면서 현재의 닛테레 NEWS24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TV의 지상파 뉴스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관련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며, 인터넷을 통한 뉴스 서비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日テレプラス(닛테레 플러스)
일본유료방송 채널이다. 닛폰 TV 방송망 계열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드라마, 예능, 애니메이션,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닛테레에서 과거에 방송된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한편, 자체 제작 프로그램과 특별 프로그램 등도 편성하고 있다. 일본TV 계열의 대표적인 유료 전문 채널 가운데 하나로, 케이블TV 및 위성방송 등을 통해 제공된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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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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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흑백 로고 (1953~1972)

1951년 쇼리키 마쓰타로가 텔레비전 방송망 설립 구상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10월 텔레비전 방송 면허를 신청했으며, 1952년 7월 31일 일본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 예비 면허를 취득하였다. 같은 해 10월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쇼리키 마쓰타로를 초대 사장으로 선출했으며, 10월 28일 회사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1953년 8월 27일 정식 방송 면허를 취득한 닛폰TV는 이튿날인 8월 28일 오전 11시 20분에 개국하였다. 이는 일본 최초의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의 출범이었다. 개국 당일 저녁에는 세이코의 제공으로 일본 최초의 텔레비전 CM으로 알려진 '7시 시보'를 방송했으며, OP·ED에서는 스튜디오 세트로 제작된 흑백 영상 〈비둘기의 휴일〉을 선보였다. 개국 다음 날에는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스프로야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스포츠 중계 분야에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다양한 장르의 생중계와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53년 11월에는 지바현 후나바시 경마장에서 민영방송국 최초의 경마 중계를 실시했으며, 1954년 2월에는 역도산·기무라샤프 형제의 경기를 통해 첫 프로레슬링 중계를 진행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뉴스 프로그램 《오늘의 사건》을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뉴스 보도 분야에서도 기반을 다졌다. 1956년 8월에는 일본 최초의 텔레비전 아침 방송을 시작했으며, 방송 화면에 시각을 표시하는 방식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같은 해 12월 주부닛폰방송(CBC)과 오사카 TV 방송(OTV, 현재의 아사히 방송) 등이 개국하면서 이들 방송사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컬러 텔레비전 분야에서도 닛폰TV는 일본 민영방송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57년 컬러 텔레비전 방송 면허를 신청한 데 이어 12월에는 컬러 텔레비전 실험 방송국의 본면허를 취득하고, 12월 28일 일본 민영방송 최초의 컬러 텔레비전 실험 방송을 시작하였다. 1958년에는 최초의 VTR 드라마 〈잡초의 노래〉를 방송하고, 스튜디오 컬러 카메라를 이용한 실험 프로그램 〈마술 교실〉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방송 기술의 도입에도 힘썼다.

1958년 8월에는 요미우리TV 방송(YTV)과 TV 니시닛폰(TNC)이 개국하면서 닛폰TV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네트워크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개국한 니시닛폰방송(RNC)과 함께 닛폰TV 계열 전국 네트워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59년에는 컬러 방송과 대형 생중계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최초의 컬러 텔레비전 드라마 〈붉은 전쟁터에서 입었던 옷〉을 방송했으며, 4월에는 네트워크 뉴스 프로그램 〈닛폰 텔레 뉴스〉를 시작하였다. 특히 4월 10일 황태자 아키히토의 결혼식 당시에는 39대의 카메라를 동원한 대규모 생중계를 실시하여 텔레비전 방송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이날 촬영한 결혼식 장면은 35mm 컬러 필름으로 제작되어 같은 날 밤 특별 프로그램 「이 좋은 날」을 통해 컬러로 방송되었으며, 방송 중에는 일본 최초의 컬러 CM도 선보였다. 같은 해 마이니치방송(MBS)과 일본 시리즈 중계를 공동 제작하는 등 다른 민영방송사와의 협력도 확대하였다. 12월에는 미국 NBC가 제작한 컬러 프로그램 〈페리·줄·쇼〉를 일본에서 방송하면서 컬러 프로그램의 보급에도 앞장섰다.

컬러 텔레비전의 본격적인 보급과 방송 네트워크의 확대를 추진하며 일본 민영방송의 중심적인 방송사로 성장해 나갔다. 1960년 9월 10일에는 NHK라디오 도쿄(KRT)와 함께 컬러텔레비전 본방송을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1961년 1월 8일부터는 컬러 중계방송도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1962년에는 프랑스 RTF-TV(現 TF1)와 프로그램 교환 협정을 체결하는 등 해외 방송사와의 교류를 확대하였다. 또한 하루 종일 방송하는 체제를 완성하면서 방송 시간과 편성의 확대를 통해 종합 텔레비전 방송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63년에는 통신위성 릴레이 1호를 이용하여 일본미국 사이에서 텔레비전 영상을 전송하는 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는 국제 통신위성을 활용한 텔레비전 영상 전송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해외 교류와 국제적 활동도 이어져 1965년에는 파키스탄에 텔레비전 수상기 200대를 기증하였다.

1965년에는 심야 종합 프로그램 〈11PM〉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시사 프로그램에 가까운 성격으로 출발했으나, 오하시 교센 등의 진행과 함께 사회·문화·오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형식으로 발전하면서 독특한 심야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한편으로는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또한 일부 방송은 닛폰TV뿐만 아니라 요미우리TV 방송과 주쿄TV 방송 등이 제작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계열 방송사 간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6년 4월 1일에는 닛폰TV를 중심으로 한 뉴스 네트워크인 NNN(Nippon News Network)이 출범하였다. 이를 통해 전국의 계열 방송사와 뉴스 취재 및 보도 체계를 연결하면서 전국 단위의 뉴스 네트워크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같은 해 6월 30일에는 일본을 방문한 영국 밴드 비틀즈일본 무도관 공연을 컬러 영상으로 독점 생중계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큰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비틀즈의 공연을 전국에 생중계하면서 닛폰TV의 대형 음악·이벤트 중계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1968년 4월에는 도쿄도 신주쿠구에 독자적인 송신소를 겸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텔레비전 방송탑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급속히 성장하는 도쿄의 방송 수요에 대응하고 자체 송신 시설을 강화하기 위한 구상이었으나, 이후 계획이 중단되면서 실제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70~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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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컬러 로고 (1972~2003)
1세대 상징 로고 (1978~2003)

국내 방송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해외 취재망을 강화하며 국제적인 방송사로의 성장을 본격화하였다. 1970년에는 나하·워싱턴·모스크바에 해외 및 지역 지국을 잇달아 개설하여 국내외 주요 지역의 취재 역량을 강화하였다. 같은 해 11월 10일에는 코우지마치 본사 인근에 있던 기존 송신탑에서 도쿄타워로 송신 시설을 이전하면서 수도권 방송의 송출 기반을 정비하였다. 컬러 방송의 보급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1971년에는 자사 제작 프로그램의 컬러화 비율이 거의 100%에 도달하여 일본 민영방송 가운데 가장 먼저 사실상 전면적인 컬러 프로그램 제작 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같은 해 5월에는 동양방송과의 제휴를 통해 서울에 지국을 개설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취재망도 확대하였다.

1972년에는 방송의 시각적 형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OP·ED에서 스튜디오 세트로 제작한 컬러판 〈비둘기의 휴일〉을 선보였으며, 같은 해 NNS(니혼TV 네트워크 협의회)를 발족하여 전국 계열 방송사와의 네트워크 체제를 더욱 체계화하였다. 한편 네트워크 편성을 둘러싼 계열 방송사 간의 조정도 이루어졌다.

1972년 12월에는 당시 주쿄광역권의 네트워크 가맹국이었던 나고야TV 방송과 프로그램 편성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주쿄광역권의 닛폰TV 계열 네트워크 방송국을 주쿄TV 방송으로 통일하는 방향이 결정되었다. 다만 주쿄TV 방송이 개국한 이후에도 일정 기간 나고야TV 방송이 중복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형태가 이어졌는데, 이는 당시 주쿄TV가 NET(현재의 TV 아사히) 계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편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 뉴스 분야에서도 닛폰TV의 활동은 확대되었다. 1973년에는 미국 ABC 뉴스사와 뉴스 제공 및 위성 중계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여, 해외 뉴스 취재와 국제 영상 중계 능력을 강화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요미우리신문·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 3사의 수뇌부 사이에서 닛폰TV와 도쿄방송(TBS)의 신문 자본을 통일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어 1974년 5월 요미우리신문사가 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이 보유하고 있던 닛폰TV 주식을 모두 매입하면서 닛폰TV는 완전히 요미우리 그룹의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닛폰TV와 요미우리신문을 중심으로 한 경영·미디어 그룹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었다.

1974년에는 제1차 석유위기의 영향으로 전력 절약을 위한 심야 방송 자제가 요구되었다. 우정성의 요청과 도쿄 소재 민영방송 5사의 합의에 따라 닛폰TV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그해 1월 7일부터 심야 방송을 0시 30분에 종료하는 등 방송 시간을 단축하였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의 에너지 절약 정책이 텔레비전 방송 편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였다.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영화와 대형 특별 프로그램이 닛폰TV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1975년 10월 8일10월 15일에는 영화방송 프로그램 〈수요일 로드쇼〉를 통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방송하였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방송된 사례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78년에는 닛폰TV를 대표하는 장수 특별 프로그램인 〈24시간 TV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가 시작되었다. 8월 26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자선과 사회공헌을 주요 주제로 삼아 장시간 생방송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매년 여름 방송되는 닛폰TV의 대표적인 연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9월 28일에는 세계 최초의 음성다중방송 실용화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하나의 텔레비전 방송 신호를 통해 복수의 음성 채널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 앞장섰다.

1980년 2월 9일에는 긴급 경보 방송의 실험 방송을 시작하면서 재난이나 긴급 상황에서 시청자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송 체계의 구축에 나섰다.

사회공헌과 공익 캠페인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1983년 2월 1일부터는 마약각성제 남용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 광고 〈각성제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을 포기하시겠습니까?〉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이후 일본 간토권의 민간방송사 전반으로 확대되었으며, 기획과 제작은 닛폰TV CM제작부가 담당하고 광고 기획에는 일본민간방송연맹이 참여하였다. 같은 해 12월 31일에는 〈전국 고등학교 퀴즈 선수권〉이 처음 방송되었다.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대표하여 퀴즈 실력을 겨루는 형식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이후 닛폰TV를 대표하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였다. 1985년까지는 연 2회 방송되었으며, 1986년부터는 연 1회 방송되는 형식으로 정착하였다.

방송 기술의 발전도 계속되었다. 1985년 11월 29일에는 문자 다중 방송의 본방송을 시작하여 텔레비전 방송에 문자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였다. 같은 해 미국 뉴욕에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해외 제작 및 취재 거점을 강화했으며, 서울지국도 기존 동양방송 사옥에서 중앙일보 순화동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한국 내 취재 기반을 정비하였다.

1987년 10월 5일에는 SNG(Satellite News Gathering) 시스템의 실험 운용을 시작하였다. 위성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취재한 영상을 신속하게 방송국으로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뉴스와 대형 사건·사고 현장의 생중계 능력을 한층 강화하였다. 1988년 5월 5일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세계 최초의 생방송을 실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극한의 환경에서 정상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하면서 닛폰TV의 위성 중계 및 대형 해외 생중계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다. 문화유산 보호와 국제적인 사회공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89년에는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복원 작업이 시작되자 복원 사업을 지원하였으며, 이 복원 작업은 1994년에 완료되었다.

1989년 8월 24일에는 고화질 텔레비전의 본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텔레비전보다 높은 화질의 영상을 제공하는 새로운 방송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향후 고화질 방송 시대를 준비하였다.

1990~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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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로고 (2003~2012)

장수 프로그램의 종영과 새로운 방송 서비스의 도입을 통해 방송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였다. 1990년 3월 30일에는 1965년부터 방송되어 온 장수 심야 프로그램 〈11PM〉이 약 25년에 걸친 방송을 마치고 종영하였다. 〈11PM〉의 종영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닛폰TV의 대표적인 심야방송 시대가 막을 내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국과의 방송 교류도 더욱 확대되었다. 1991년 7월에는 대한민국SBS 서울방송과 업무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92년 12월에는 보도 업무협정까지 체결하여 양 방송사 간의 뉴스 및 취재 분야 협력을 강화하였다. 같은 달 SBS 서울방송은 도쿄지국을 개설하면서 일본한국 사이의 방송·뉴스 교류를 더욱 확대하였다.

방송 기술 분야에서는 디지털화와 고화질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2년 11월에는 SNG 디지털 전송 실험 방송국 면허를 취득하여 위성을 활용한 디지털 영상 전송 기술의 실용화를 추진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아날로그 하이비전 실용화 시험국 면허를 취득했으며, 이듬해인 1995년 7월 13일에는 와이드 고화질 텔레비전 본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차세대 고화질 방송 기술의 도입을 본격화하였다.

1993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캐릭터 〈난다로〉를 닛폰TV의 심볼 캐릭터로 지정하였다. 이를 통해 방송사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전달하는 한편, 캐릭터를 활용한 기업 홍보와 브랜드 전략도 강화하였다. 경영 및 사업 영역의 확대도 이어졌다. 1994년에는 RF 라디오닛폰의 주식을 취득하여 해당 회사를 지분법 적용 관련 회사로 취급하게 되면서 라디오 분야와의 연계도 강화하였다.

한편 1994년 12월에는 닛폰TV 본사 편성국 특별제작부 제작센터에 아역배우 아다치 유미 앞으로 배달된 파이프 폭탄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2명이 중경상을 입으면서 방송사에 대한 위협과 방송 관계자들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1995년에는 인터넷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공식 웹페이지를 개설하였다. 이는 텔레비전이라는 기존 방송 매체를 넘어 인터넷을 새로운 정보 전달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후 닛폰TV의 디지털 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되었다. 1996년에는 위성방송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4월 3일 CS 디지털 방송 〈CS★닛테레〉의 위탁 방송 업무 인정을 취득했으며, 같은 해 8월 28일부터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97년에도 CS 디지털 방송과 관련한 추가적인 위탁 방송 업무 인정을 취득하면서 위성방송 분야의 사업 기반을 확대하였다. 시청률 면에서도 닛폰TV의 강세는 계속되었다. 1997년 3월 2일에는 민영방송사 최초로 전일 시청률 100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높은 시청률 경쟁력을 입증하였다.

뉴스 전문채널 분야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1997년 계열사인 NCN(니혼텔레비전 케이블 뉴스)이 24시간 방송을 시작하면서 채널명을 NNN24(NTV NONSTOP NEWS 24)로 변경하였다. 이를 통해 닛폰TV 계열의 뉴스 서비스를 24시간 체제로 확대하였으며, 2005년 12월 1일에는 채널명을 다시 닛테레NEWS24로 변경하였다.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위성방송과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차례로 도입하고, 방송 제작 환경을 하이비전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2000년 12월 1일 오전 11시에는 BS 디지털 방송국인 〈BS닛테레〉(디지털 BS 4채널)의 방송을 시작하면서 위성 디지털 방송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위성방송을 통한 콘텐츠 제공 체제도 확대하였다.

2002년에는 2002 한일 월드컵과 관련한 방송을 맡아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어 2003년 8월에는 오랜 기간 사용해 온 코우지마치 사옥에서 시오도메 지역의 새로운 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하였다. 이와 함께 SBS 도쿄지국도 시오도메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양 방송사 간의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2003년 10월에는 프로듀서에 의한 시청률 조작 문제가 드러나면서 방송 제작과 시청률 경쟁을 둘러싼 윤리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었다. 이는 방송사의 제작·편성 과정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사건이었다.

디지털 지상파 방송으로의 전환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2003년 12월 1일 오전 11시에는 지상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닛폰TV는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2004년에는 개국 50주년을 맞아 방송 제작 체제의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2월 29일 방송센터와 본사 스튜디오의 기능을 시오도메 지역으로 이전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닛폰TV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하이비전 방식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CS 방송 NNN24에서도 하이비전 제작 비율을 크게 확대하면서 방송 제작 환경의 고화질화를 가속화하였다. 같은 해 3월 1일에는 닛폰TV 서울지국이 SBS 목동 사옥으로 이전하여 한·일 방송사 간의 협력 기반을 더욱 강화하였다.

2005년 12월 1일에는 24시간 뉴스 전문채널 〈NNN24〉의 명칭을 〈닛테레 NEWS24〉로 변경하였다. 이를 통해 닛폰TV 계열의 뉴스 브랜드를 보다 명확하게 정비하고 24시간 뉴스 서비스의 이미지를 강화하였다.

2006년에는 디지털 미디어의 확대가 더욱 본격화되었다. 3월 1일 스포츠·뉴스 전문채널 〈G+ SPORTS&NEWS〉의 명칭을 〈니혼 텔레비전 G+〉로 변경하였으며, 4월 1일부터는 원세그 본방송을 시작하였다. 또한 4월 3일에는 방송 서비스 구역인 간토 광역권의 보도 취재 하이비전화가 거의 완성되면서 뉴스 취재 현장에서도 고화질 제작 체제가 자리 잡았다. 같은 달 12일에는 팟캐스팅을 통한 동영상 콘텐츠 제공에도 참여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식에도 진출하였다.

한편 오랜 역사를 지닌 뉴스 프로그램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2006년 9월 29일에는 1954년부터 방송되어 온 장수 뉴스 프로그램 〈오늘의 사건〉이 52년에 걸친 방송을 마치고 종영하였다. 이후 후속 프로그램으로 〈뉴스 제로〉가 시작되면서 닛폰TV의 뉴스 프로그램 역시 새로운 형식과 진행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2009년에는 개국 55주년을 맞아 닛폰TV의 상징적인 오프닝·클로징 영상인 〈비둘기의 휴일〉을 다시 방송하였다. 이는 닛폰TV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되돌아보는 기념적인 프로그램으로서 개국 초기부터 이어져 온 방송사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선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4월 1일에는 대만의 미디어 그룹 왕왕 산하의 지상파 방송사 중국텔레비전공사와 위성방송사 중천전시 등과 포괄적인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어 10월 19일에는 중국 국영 신화통신방송 분야의 상호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중국대만의 미디어 기업·언론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하였다.

201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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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로고 (2014~현재)

2011년 3월 11일에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닛폰TV의 방송 운영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재난 발생 직후인 3월 11일 오후 2시 57분부터 3월 14일 오전 4시까지 광고 방송을 중단하고 재난 관련 보도와 정보를 중심으로 방송을 편성하였다. 이를 통해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공공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방송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같은 해 7월 24일에는 일본의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닛폰TV 역시 지상파 아날로그 본방송을 종료하였다. 이는 1953년 개국 이후 약 58년 동안 이어져 온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 시대가 막을 내리고 디지털 방송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경영 체제에도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2012년 3월 29일 인증방송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회사명을 닛폰TV 홀딩스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동시에 회사 분할을 실시하여 새로운 닛폰TV 방송망 주식회사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방송 사업과 그룹 전체의 경영 기능을 분리하고 지주회사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였다.

2013년 5월 31일 오전 9시에는 도쿄 스카이트리를 통한 지상파 전파 송출을 시작하였다. 도쿄 스카이트리를 새로운 송신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수도권의 지상파 방송 송출 체제를 현대화하고 안정적인 전파 송출 기반을 마련하였다.

2015년 3월 31일에는 BS 디지털 위성을 통해 제공하던 난시청 지역 대상 지상파 동시방송을 정오를 기해 종료하였다. 이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전국적인 보급과 수신 환경 개선에 따라 기존의 보완적인 동시방송 서비스가 단계적으로 종료된 것이었다. 제작 시설의 확충도 이어졌다. 2019년 1월 29일에는 과거 코우지마치 본사 인근에 새롭게 건설된 닛폰TV 반초 스튜디오가 가동을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닛폰TV는 시오도메의 기존 방송 제작 거점과 함께 새로운 스튜디오 시설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방송 인프라를 더욱 강화하였다.

카이트리를 새로운 송신 거점으로 활용했으며,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과 제작 시설 확충을 통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경영·방송 체제를 구축하였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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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V의 중계차
  • 정식회사명에 방송망 이 들어간 이유는 전국적인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도쿄에 중앙방송국을 두고 오사카나고야등지에 니혼TV 계열의 지역방송국을 개설하여 중앙방송국과 지역방송국간에 독자적인 초단파 통신망을 설치하고 방송이외의 대역은 통신사업을 하여 방송사업과의 겸업과 통신사업의 민영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일본 우정성이 이러한 계획을 일축함으로써 통신사업에서 철수하게 되고 간토 광역권만을 대상으로 하는 민영 방송국이 되었다.
  • 일본 프로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독점중계하는 이유는 니혼TV의 대 주주인 요미우리신문 그룹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창단하였기 때문이다.
  • 일본 프로레슬링 중계로 텔레비전의 첫 방영에 프로그램을 격주로 편성하였다.
  • 개국 당시 일본의 텔레비전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광고 매체로서의 민영 텔레비전임을 어필하기 위해 수도권의 주요 장소에 가두 TV를 설치해 텔레비전 보급률 증진에 유용하게 이용했으며 또한 코우지마치에 있는 사옥옆의 텔레비전탑을 전망 목적으로 일반에 공개하면서 이곳은 도쿄 타워가 생기기 전까지 관광 명소로 사랑받았다.
  • 너무 요미우리 신문 색깔을 띄어서였는지 초기에는 가맹국이 모이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도쿄 방송보다 네트워크 구성이 늦어져 보도 프로그램의 질적저하가 일어났으며 그와 동시에 일어난 프로그램 판매실적 저하, 그리고 당시 사장이었던 쇼리키 마쓰타로가 도쿄타워를 통한 방송송신을 거부하면서 생긴 난시청문제로 인해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잠시 침체된 적이 있었다.
  •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중에서 새로운 매체를 빨리 방송에 적용시키는 방송국으로 유명하다.
  • 1973년 4월 10일부터 1973년 9월 30일까지 도라에몽을 방영하였고 시청률도 좋은 편이었으나 제작사 문제로 조기종영되었고 후에 그 회사는 도산하였으며, 당시 방영된 도라에몽은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상이 현재 공개되지 않고 있거나 소실되었다.
  • 1980년대에는 당시 유행이던 로봇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방영했지만 1990년이후로는 더 이상 로봇 애니메이션들을 방영하지 않는다.
  • 1989년 오키나와에 2개의 민영방송국 주파수가 할당되자 난세이 방송(南西放送)이라는 회사를 세워 오키나와에 닛폰TV 계열국을 세우려 했으나 버블경기 침체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이 원인이 되어 진출계획이 취소되었다.
  • 1991년 대한민국SBS의 개국 때부터 SBS와 제휴 협정을 체결하였다.
  • 2011년 7월 24일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때 개국시부터 2001년 9월까지 사용된 비둘기의 휴일을 송출 한 후 "58년간 고마웠습니다"라는 자막을 띄우며 정파했다.

주요 프로그램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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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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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이드쇼 제작 및 외주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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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버라이어티 제작 및 외주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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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및 외주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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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오름차순)

니혼TV 요미우리TV 방영 제작 및 외주제작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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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오름차순)

본사, 지사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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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사

東京都港区東新橋一丁目6番1号 도쿄도 미나토구 히가시신바시 1쵸메 6번지 1호(이 본사를 시오도메(汐留)라고 한다.)

  • 간사이지사

大阪府大阪市北区堂島2-2-2 近鉄堂島ビル14階 오사카후 오사카시 키타쿠 도지마2-2-2 킨테츠도지마빌딩 14층

지역 민방 (네트워크 가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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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네트워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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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네트워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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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에 있는 다른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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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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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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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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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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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키나와 TV 방송에서 1990년에 발간한 오키나와 TV 30년의 걸음이라는 책에 따르면 원래 오키나와 TV 방송 초대 사장이 후지TV와 지역 민방 네트워크 협정을 맺기 전 니혼TV에 지역 민방 네트워크 협정 체결을 했으나 니혼TV측이「시기 상조」라면서 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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