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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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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하나會)는 1963년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으로 이후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대구경북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하였다. 국방부육군사관학교 22기-23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식적으로 구성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육사 31기까지도 계속 모임이 결성되었고 1993년 초에는 육사 31기생이 동기회장을 놓고 난투극을 벌인 끝에 서울 용산의 군인아파트에 회원 명단이 살포되기도 하였다.[1][2]

1979년에는 육사 11기, 12기생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12.12 군사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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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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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전두환 (1951년)
12·12 군사반란 주동자들

1951년, 4년제 육군 사관학교 첫 입학생 중 대구경북 출신 생도였던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5명이 성회를 조직한 것이 시초이다. 전두환 주도로 육군사관학도들은 5.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벌였고, 이는 박정희 소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5성회는 회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확대 개편 과정을 여러번 거쳤다.[3] 이들은 1963년 7월 6일을 기점으로 육사 8기를 몰아내기 위해 '7.6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동향 출신 세력을 키우고자한 박정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4]

하나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가입 대상자는 보스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서약 절차를 거쳤다.[5]

  • 하나회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을 복종한다.
  • 하나회원 상호 간에 경쟁하지 않는다.
  • 이상의 서약을 위반할 시 '인격말살'을 감수한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여 승진이나 자리이동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였다. 1973년 윤필용 사건에서 수사 도중 하나회의 실체가 드러났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조사한 하나회는 (1) 정규육사 출신을 기본 정원제로 가입, 10명 내외로 (2) 회원 다수는 대구경북 출신이 점한다. (3)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케한다. (4) 고위층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징수 (5)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 라고 밝혀졌다.[6]

팀의 초기 리더는 윤필용전두환 등으로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한풀 꺾이지만, 조직의 다른 우두머리인 전두환은 기적적으로 보안사령관으로 복귀, 그에 대한 박정희의 각별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이후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하였다. 하나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하며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세력이 되었으며, 서로에 대해 "형님"이라는 암호명으로 서로가 하나회 멤버임을 과시했다.[7][8]

12.12 군사정변 및 5.17 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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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는 10·26 사건 이후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을 중심으로 권력공백기를 이용하여 군의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군내 각 요직에 배치된 하나회 회원들이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의 뜻에 따라 12·12 군사 정변을 주도했다.12·12 군사 정변이후 하나회 인사들은 군의 핵심 요직에 올랐다. 또한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을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에,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에 직접 임명하였다. 12.12에 참여한 하나회 회원과 12·12 군사 반란 비호한 일부 장성들의 세력은 "새로운 군부 세력"이란 뜻으로 '신군부'로 불리게 되었다.[9]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군부 세력들은 5월 초 집권 시나리오를 기획하여,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 내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을 불법 연행하고, 국회에 군병력을 주둔하여 임시국회를 무산시키는 등 반대 세력을 탄압하였다. 또한, 이들은 5·17 내란에 항거하여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 하였다.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보안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은 군내 요직 뿐만 아니라 전역후에도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10][11]

해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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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육사 31기생들이 동기회장 선출을 두고 하나회와 ‘비(非)하나회’로 양분되어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사태는 양측이 한 선술집에서 맥주병이 깨지고 바닥에 뒹굴며 난투극까지 치르는 소동을 벌인 뒤에야 다소 진정되었으나, 이미 동기생들 간의 앙금은 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1] 또한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3년 4월 2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백승도 대령에 의해 '하나회' 명단이 살포되었다.[12][13] 이러한 사태로 인하여[1], '군정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김영삼문민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진행하였다.[1] 5.18 광주민주화운동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등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14]

하나회 소속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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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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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2 3 4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2014.02.18). [將軍들의 전쟁] #6. 군인아파트에 ‘하나회 명단’ 괴문서 살포되다. 시사저널.
  2. 하나회회원 명단 유인물 군인아파트에 살포 파문. 한국경제. 1993년 4월 12일.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3. 무소불위 하나회 30년만에 막내려/권력이 요리한 군인맥 변천사. 1994년 4월 17일.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4. 김수민 (2023년 11월 23일). [기획] 12·12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회는 어떻게 신군부가 되었나.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5. 김지헌 (2024년 12월 4일). [김재홍 칼럼] 12.12와 5.18 진압의 내란집단 하나회.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6. 한용원, 한국의 군부정치 320~321쪽
  7. 고제규 기자. ‘형님’은 잊어도 ‘장포스’는 못 잊는다. 시사인. 2016년 3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8. 군대 내 '사조직' 발본색원 해야한다. 오마이 뉴스.
  9. 김경호 (2003년 12월). 한국군의 정치개입 원인분석 : 신 군부를 중심으로 :신 군부를 중심으로. 21세기정치학회보 13 (2): 23–41. ISSN 1229-5167.
  10. 육군 4대 사조직 명단 & 진급실태|신동아. 2005년 1월 24일.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11. 육군 하나회 악연 20년.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12. 동빙고 군인아파트에 하나회 명단 외.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13. 1993년 '하나회 명단' 폭로 백승도 준장 군 떠났다. 2005년 2월 1일.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14. 있습니다, 구글 검색 선호 추가 Google 검색에서 매일경제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2020년 5월 15일). [김재홍 칼럼] 5·18 광주, 정치군벌 하나회를 생각한다. 2026년 8월 1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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