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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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 또는 기독교 보수주의사회보수주의우파 사상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 정치사상의 일종이다. 미국에서는 기독교 윤리와 전통적 자유주의 성향의 미국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며, 한국에서도 보수주의나 반공주의와 상통하여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세계 각국의 기독교 우파[편집]

미국[편집]

기독교 우파의 정치운동은 미국의 교회역사나 정치역사에 있어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미국 기독교 우파는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출처 필요]

사회운동[편집]

이미 1920년대부터 근본주의 성격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공립학교내 진화론 교육 반대운동을 통해 사회문제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미 성서동맹(Bible League of North America), 미국 성서 십자군(Bible Crusaders of America), 기독교 신앙수호자(Defenders of Christian Faith)등의 기독교단체를 결성하여 대중집회, 진화론반대법 제정운동등을 했으며, 1925년에는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유명 법정투쟁이 벌어지기에 이른다.

반공주의는 미국 보수주의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기독교 우파와 결합하여 왔다. 특히 매카시즘 광풍 당시 기독교 십자군(Christian Crusaders), 기독교 반공산주의 십자군(Christian Anti-Communist Crusade), 교회연맹(Church League) 등이 결성되어 비종교세력과 연합하여 보편복지 반대나 공화당 지지 운동 등에 참여하였다.

1970년대말 미국 공화당은 보수 기독교인들과 결탁하는데, 당시 공화당은 기독교인의 소리(Christian Voice),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등의 보수 기독교단체들을 활성화시켰다. 특히 침례교 목사 제리 폴웰이 주도한 도덕적 다수는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때부터 보수 기독교인들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도덕적 다수에 반대하는 여러 복음주의 교회들과 알력이 발생했다.

입장[편집]

미국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정치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낙태 반대
  • 동성애 반대
  • 학교 내 종교교육 부활
  • 국방비 증액
  • 공화당의 경제정책 지지

한편 1990년대 기독교 우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출처 필요]

  • 기독교 근본주의보다는 온건한 복음주의가 득세한다.
  • 초교파적 입장이 강화되고 있고, 종파주의가 약세이다.
  • 선거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낸다.
  • 자본과 조직력 모두 우수하다.
  • 세속적인 홍보수단도 사용하며, 비종교적 정치언어도 사용한다.
  • 비 기독교인들도 공감이 가도록 말한다. 기독교인 자녀들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므로 공립학교내 종교교육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표적인 미국 기독교 우파들의 논리이다.
  • 조지 부시 현 미국 대통령 당선에 기여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
  • 이웃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다.
  • 국수주의 성향이 있다. 제리 폴웰은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국을 보호하던 손을 거두었다"면서, 미국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신정국가인양 주장한 바 있다.

한국[편집]

한국의 개신교회는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미국 기독교 우파와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미군정 시대[편집]

일본들의 퇴각으로 통치행정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자, 미군정은 행정상의 공백을 메꾸면서 친미 인사들을 등용했는데, 당시 미군정에 한국인을 고용하도록 권하는 임무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의 아들인 윌리엄스(G. Z. Williams) 해군 대령이 맡았는데 그는 여러 개신교 신자들을 천거하였다.

이승만 초대대통령 시대[편집]

그 결과 제1공화국의 주요 국가기관과 고위직에는 개신교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진출했다.[1]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감리교 장로였으며, 이기붕 부통령감리교회의 집사였다.

6.25 전쟁 시기[편집]

195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 침공으로 발생한 6.25 전쟁 당시 개신교조선인민군들과 조선로동당원에 의해 목사들과 교인들이 살해당하거나 납북당한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 개신교회는 유신론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공산주의에 대하여 뿌리깊은 반대 입장을 취한다.

군사 정권[편집]

한국 개신교는 교회의 보호와 교세 확장을 위해 1962년부터 1987년까지 군인들이 정치를 한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당시 경제논리와 성장주의 모델을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 한국 개신교회는 Explo '74와 같은 대형 집회와 한민족의 개신교 신자화를 위한 대대적인 전도 운동을 벌였으며, 군사독재정권에 대해서 한국 개신교회는 반공주의 성향을 주요한 이유로 지지를 보내었다.[2] 원로 교회사학자이자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인 김영재 교수는 과거 군사정권당시 진보교단들은 민주화 운동에 사회운동으로 참여한 것에 반해, 보수 교단들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군사독재정권에게 아론의 지팡이(권력의 정통성을 의미한다.)를 들려달라고 부르짖었다고 강력히 비판하였다.[3] 이에 대해 한신대학교 설립자이자 신학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는 “한국 교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내세워서 무조건 국가권력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비평하고 있다.[4]

반공주의[편집]

한국 개신교회천주교회 보수파의 반공주의한국전쟁 이전부터 존재한, 뿌리깊은 이념이기도 하다. 한국 보수 기독교계의 반공주의는 1920년대부터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5] 1920년대 조선에는 사회주의가 새로운 이념으로 들어오는데,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은 미신에 빠져 있으며, 항일의식을 약화시킨다. 또한 자본주의제국주의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라면서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비판했다.[6] 이에 대해 한국 기독교 보수파는 개신교와 천주교 구분없이 사회주의자들을 '그리스도복음'으로 이끌고, 교회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는 교회개혁을 하기보다는 그들을 배척하였다.[7]

기독교 비판의 배척[편집]

1920-30년대 유물론적 사회주의자들은 유신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기독교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소위 반(反)기독교운동을 벌이는데, 당시 한국의 개신교회와 천주교회 보수파는 이들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계와 기독교의 화해는 사회주의자들이 유물론을 포기하고 유신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문제를 현실에 대한 순응, 미신, 폭력 등을 거론했으며(→박헌영 문서 참조), 기독교계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배척하였다.

광복 이후[편집]

광복이후 한국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보수파는 교회와 공산주의간의 이념대립, 한국전쟁당시 공산주의에 의한 수난을 통해 공산주의를 더욱 더 부정하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군사정권당시 한국 교회의 민주화운동사회선교를 종교를 빙자한 공산주의 운동으로, 민중신학해방신학사회주의공산주의 신학으로 매도하였다. 즉, 한국의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보수파에게 민주화운동, 사회선교, 민중신학, 해방신학을 종교를 빙자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공산주의사회주의로 매도하는 입장에서 기독교 신앙의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신학에 대한 편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운동과 남북대화시도라는 사회의 변화에 힘입어 1988년 한국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보수파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당시 한국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신념으로 우상화 하면서 동포를 미워하는 죄(요한 복음서 13:14-15ㅡ4:20-21)를 저질렀다면서 반공주의성향에 대한 반성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지금도 소위 보수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이 친미·반공집회를 주도하거나 주일 예배시 매카시즘성향의 정치설교를 한다는 주장도 있다.[8]

출처[편집]

  • 기독교 사상2006년 3월호 '제국과 근본주의',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와 《5시간만에 읽는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저/작은행복
  •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기독교사상》2005년 9월호, '무엇이 이 시대의 복음이고 선교인가'

각주[편집]

  1.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에서 발간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100주년사를 보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당시 개신교 목사들이나 신자들이 국회의원으로 취임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승만 정권과 한국 개신교 교회가 정치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정경분리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한 잘못을 반성하는 내용이 있다.
  2. 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칼럼 : 한겨레21:
  3. 김영재, 《믿음 그리고 행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출판부.
  4. 김은봉 지음, 《한국사 103장면》, 가람.
  5.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p.199
  6. 네이버 백과사전의 반기독교운동 설명[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7.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p.199
  8. 기독교사상 2006년 4월호, 민주화이후의 한국교회/대한기독교서회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