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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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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혁명(독일어: Konservative Revolution 콘제르파티페 레볼루티온[*])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나타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족적 보수주의 운동이다.

보수혁명론자들은 독일이 어떤 제도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통일되지 못한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학자 로저 우즈는 이런 난립상을 “보수 딜레마”라고 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혁명론자들은 빌헬름 시대 기독교 보수주의, 평등주의, 자유주의, 의회민주주의를 동시에 반대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보수혁명론자들은 근대 세계의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로 인한 “문화적 절망”(프리츠 슈테른의 표현)에 빠져 있었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반기독교 윤리 및 불평등론, 독일 낭만주의의 반근대성과 반합리주의, 민족운동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비전, 프로이센적인 군국주의-권위주의 전통 등의 19세기적 요소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에서 자신들이 몸소 경험한 비합리적 폭력과 동지애(내지 전우애) 등으로부터 대안을 찾았다.

보수혁명론자들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나치즘의 여러 부분을 지지하면서도 엘리트주의적 시각 등 차이도 보여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그래서 학자들은 보수혁명운동을 독일의 “전(前)파시즘” 또는 “비(非)나치 파시즘”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실제 보수혁명과 나치즘은 19세기 반계몽주의를 공통된 뿌리로 공유하지만, 뚜렷하게 이질적인 요소들도 있다.[1] 예를 들어 독일 민족주의(푈키슈)는 보수혁명을 구성하는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보수혁명론자들이 반드시 인종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2] 보수혁명론은 반민주주의-유기체주의 이론을 사회에 만연시킴으로써 나치가 권력을 잡는 데 기여했을 수 있고,[3][4] 나치가 권력을 잡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지만,[5] 나치가 권력을 잡은 1933년 이후 보수혁명론은 다른 정치 이념들과 함께 탄압당하게 되었다.[6] 카를 슈미트를 비롯한 일부 예외를 제외한 다수의 보수혁명론자들은 나치의 반유대주의, 전체주의를 거부했다.[7][4]

보수혁명론은 1960년대-70년대 이후의 유럽 신우파, 특히 프랑스의 누벨 드루아트와 독일의 노이에 레흐테에 큰 영향을 미쳤다.[8][9][10] 그리고 이런 신우파 운동을 거쳐 현대 유럽의 정체성주의로까지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11][12]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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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혁명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보다 크고 오래된 반동운동의 일부로 포함되며, 19세기 초 낭만주의의 반근대주의와 반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국제주의를 거부하는 군국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민족주의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역사학자 프리츠 슈턴은 이 운동을 “문화적 절망”에 빠진 방향성을 잃은 지식인들로 묘사했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부르주아적 합리주의와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뿌리 뽑혔다고 느꼈다. 슈턴에 따르면 이들의 근대주의에 대한 증오는 모든 근대적 폐해가 “보수혁명”으로 싸워 해결될 수 있다는 순진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에 참여한 많은 지식인들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였다. 전선에서는 끔찍한 폭력과 비합리성으로 넘쳤고 이로 인해 이들 대부분은 전쟁중 겪었던 경험에 대해 사후적 의미를 찾게 만들었다. 에른스트 융거는 평시 사회에서도 군사 구조적 가치를 유지하고자 했던 보수혁명 분파의 주요 인물로 그는 전선에서 형성된 전우 공동체(Frontgemeinschaft)에서 진정한 독일 사회주의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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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로저 우즈가 “보수 딜레마”라고 명명했을 정도의 난립상을 자랑한[13] 보수혁명은, 무엇을 하겠다는 공통된 의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반대했는가를 통해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14] 보수혁명의 이념은 크게 세 가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 첫째로 독일 제국의 전통적 보수적 가치를 반대한다. 기독교의 평등윤리도 반대의 대상이며, 독일 제국을 복원하려는 반동적 복벽주의도 반대한다.
  • 둘째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권력과 상업주의 문화를 반대한다. 그리고 의회제와 민주주의 전반을 일반적으로 반대한다. 왜냐하면 민족공동사회(폴크스게마인샤프트)는 좌와 우의 구분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15]
  • 셋째로 사회주의의 계급론을 반대한다. 그러나 반마르크스주의적 수정주의는 포용한다.[16]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1차대전 최전선에서 겪은 전우애의 경험을 동지애로 전유하여 수정주의를 “피로 쓴 사회주의”라고 지칭했다.[14]

주요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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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모흘러[17] 및 다른 문헌들[18][4][6]에 따르면, 독일 보수혁명 운동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나치즘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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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인 부분이 상당하게 존재하지만 보수혁명을 나치즘과 혼동하면 안된다.[1] 많은 보수혁명론자들이 강력한 지도자라는 개념을 고수하면서도 나치즘의 전체주의반유대주의적인 태도를 거부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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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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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2 Woods 1996, 1–2, 111–115쪽.
  2. Dupeux 1994, 471–474쪽.
  3. Woods 1996, 2–4쪽.
  4. 1 2 3 4 Klapper 2015, 13–15쪽.
  5. Woods 1996, 134쪽.
  6. 1 2 3 4 5 6 7 François 2009.
  7. Stern 1961, 298쪽.
  8. Pfahl-Traughber 1998, 223–232쪽.
  9. Bar-On 2011, 340쪽.
  10. François 2017.
  11. Teitelbaum, Benjamin R. (2017). Lions of the North: Sounds of the New Nordic Radical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46쪽. ISBN 9780190212599.
  12. Hentges, Gudrun; Kökgiran, Gürcan; Nottbohm, Kristina. "Die Identitäre Bewegung Deutschland (IBD)–Bewegung oder virtuelles Phänomen" 보관됨 2020-01-20 - 웨이백 머신. Forschungsjournal Soziale Bewegungen 27, no. 3 (2014): 1–26.
  13. Woods 1996, 59–60쪽.
  14. 1 2 Woods 1996, 1–2쪽.
  15. Woods 1996, 61–62쪽.
  16. Bar-On 2011, 333쪽.
  17. Armin Mohler, Karlheinz Weißmannn: Die konservative Revolution in Deutschland 1918–1932 – Ein Handbuch. 6. überarbeitete Auflage. Graz 2005, p. 379f (Spengler, Mann, Schmitt); p. 467ff (Jung, Spann); p. 472 (Hans Freyer); p. 479 (Niemöller); p. 62 (Lensch-Cunow-Henisch-Gruppe); p. 372 (Hofmannsthal, George); p. 470 (Winnig); p. 519ff (Niekisch); p. 110ff, 415 (Quabbe [5. Aufl. 1999]); p. 465 (Stapel).
  18. 1 2 3 Blamires 2006, 304쪽.
  19. Wolin, Richard (1992). Carl Schmitt: The Conservative Revolutionary Habitus and the Aesthetics of Horror. Political Theory 20 (3): 424–25. doi:10.1177/0090591792020003003. S2CID 143762314.
  20. Kroll, Joe Paul (2004년 9월 1일). Conservative at the Crossroads: 'Ironic' vs. 'Revolutionary' Conservatism in Thomas Mann's Reflections of a Non-Political Man. Journal of European Studies 34 (3): 225–246. doi:10.1177/0047244104046382. ISSN 0047-2441. S2CID 153401527.
  21. Sieferle 1995, 196쪽.
  22. Sieferle 1995, 74쪽.
  23. 1 2 Stern 1961, 295쪽.
  24. Franco Ferraresi (2012). Threats to Democracy: The Radical Right in Italy after the War. Princeton University Press. 44쪽. ISBN 978-1-4008-2211-9.
  25. Boutin, Christophe (1992). Politique et tradition: Julius Evola dans le siècle, 1898-1974 (프랑스어). Editions Kimé. 513쪽. ISBN 9782908212150.
  26. Hans Thomas Hakl, "Julius Evola und die deutsche Konservative Revolution," Criticon, No. 158 (April–June 1998), pp. 16-32
  27. Herf 1986, 39쪽.
  28. Sieferle 1995.
  29. 1 2 3 Poewe, Karla O. (2006). New Religions and the Nazis. Routledge. 157–59쪽. ISBN 9780415290258.
  30. 1 2 Volker Weiß: Die autoritäre Revolte. Die Neue Rechte und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Klett-Cotta, Stuttgart 2017, p. 40–45.
  31. Woods 1996,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