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Vladimir Putin (2017-07-08).jpg
Putin signature.svg
러시아제6대 총리
임기 1999년 8월 9일 ~ 2000년 5월 7일
전임: 세르게이 스테파신(제5대)
후임: 미하일 카시야노프(제7대)

러시아의 제3·4대 대통령
임기 1999년 12월 31일(권한대행 취임일)
2000년 5월 7일(정식 취임일) ~ 2008년 5월 7일
총리 미하일 카시야노프(2000년 ~ 2004년)
빅토르 흐리스텐코(2004년)
미하일 프랏코프(2004년 ~ 2007년)
빅토르 줍코프(2007년 ~ 2008년)
전임: 보리스 옐친(제1·2대)

러시아의 제10대 총리
임기 2008년 5월 8일 ~ 2012년 5월 7일
전임: 빅토르 줍코프(제9대)

러시아의 제6대 대통령
임기 2012년 5월 7일 ~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2012년 ~ )

신상정보
출생일 1952년 10월 7일(1952-10-07) (65세)
출생지 소련 레닌그라드
(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당 통합 러시아 (2008년 ~ 2012년)
러시아 인민전선 (2011년 ~ 현재)
종교 러시아 정교회
배우자 류드밀라 푸티나(1983년 ~ 2013년)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러시아어: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문화어: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 1952년 10월 7일 ~ )은 제2대, 제4대 러시아 대통령이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제2대 대통령 직을 맡았으며,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정권 하에서 총리직을 역임하였고, 201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여 다시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5월 7일 제4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후 공식 업무를 개시하였다.

생애[편집]

6세 때 어머니와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은 1952년 10월 7일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Vladimir Spiridonovich Putin , 1911년 ~ 1999년)이고 어머니는 마리아 이바노브나 푸티나(Maria Ivanovna Putina, 1916년 ~ 1998년)이다. 아버지는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소련 군인으로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에 항전했으며 어머니는 그 당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 그 후 둘이 낳은 아들이 바로 푸틴이다. 15년간 국가보안위원회에서 일한 뒤 1998년에는 국가보안위원회의 후신인 연방보안국의 국장으로 취임하였다.

KGB 경력[편집]

국가보안위원회 요원 시절

1975년에 푸틴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KGB에 가입하였으며 401번째로 KGB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1]

1991년 8월 20일, 8월 쿠데타가 일어났고, 푸틴은 쿠데타에 반대했다. 차후 푸틴은 나중에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였는데, 선택이 어려웠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쿠데타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있던 반대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

정치 활동[편집]

러시아 연방보안국 국장 시절 (1998년)

1999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그 해 12월 31일 옐친이 사임하면서 총리로서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이듬해 3월 26일 열린 정식 대선에서 러시아의 2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3월 14일에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되었다.

푸틴은 대통령 재임시 독립을 요구하면서 폭력항쟁을 벌이고 있는 체첸 반군들에 대해 강경책을 쓰는 한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구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했던 공화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썼다. 그러나 조지아우크라이나에서 잇따라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입지가 좁혀지기도 했다.

체첸 전쟁은 체젠반군들의 열렬한 저항으로 장기화되었으며 2004년 체첸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베슬란 인질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으나 서방 세계와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자신이 러시아 정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인 푸틴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 정교회성당인 조선정교회 장백성당을 건립한 계기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이 정교회 성화상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하면서 성화상을 모실 교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북한에서 이를 수락하면서 평양에 정교회 장백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대통령 재임기간[편집]

제1 임기(2000년 ~ 2004년)[편집]

크렘린을 떠나는 보리스 옐친과 함께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푸틴

2000년 5월 7일 취임식을 올린 푸틴은 재무 장관 미하일 카시야노프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2000년2004년 사이에 푸틴은 권력 투쟁에 승리하게 되었다. 겐나디 팀첸코, 블라디미르 야쿠닌, 유리 코발추크, 세르게이 체메조프 같은 새로운 비지니스 부호들도 푸틴에게 가까운 인연과 함께 드러났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이 일어난 동안에 러시아의 신문과 국제 대중 매체의 많은 이들은 특수 부대들의 구출 작전에서 130명의 인질들의 사망이 푸틴의 인기를 심하게 손상시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포위 공격이 끝난 후 곧 러시아 국민들의 83%가 푸틴과 그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완강함에 흡족해 하였으며 이는 곧 푸틴의 지지율 향상을 불러오게 된다.

선거가 열리기 몇달 전에 푸틴은 카시야노프 총리의 내각을 파면하고 미하일 프랏코프를 그 자리에 임명하였다.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러시아에서 민간인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에 올랐다. 러시아는 체첸의 반란 운동을 무력으로 잠재웠다. 2003년 체첸 공화국을 러시아의 일부로 선언하는 새 헌법을 채택하는 국민 투표가 체첸에서 실시되었다. 체첸은 선거 이후 안정되었다.

제2 임기(2004년 ~ 2008년)[편집]

승리의 날붉은 광장에서 연설 중

2004년 3월 14일 푸틴은 7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9월베슬란 학교 인질극이 일어나 100명이 사망하였고, 응답에서 푸틴은 행정상 조례의 다양함을 가져갔다.

2005년 러시아의 보건, 교육, 주택, 농업을 향상시키는 데 국립 우선권 계획들이 내려졌다.

당시 러시아의 거부이자 유코스의 회장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사기와 탈세로 지속적인 형사 소추가 크렘린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반대자들 둘다에게 호도르콥스키의 모금을 위한 보복으로서 국제 신문에 의하여 보였다. 정부는 호도르콥스키가 불로 소득세에 세금을 매기고 조세 피난처를 문 닫는 등 세금 암호를 막으려고 국가원의 큰 부분을 타락시키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호도르콥스키는 체포되고 유코스는 파산하여 회사의 재산들이 하위 시장 가격에서 경매되었다.

푸틴은 많은 업저버들이 러시아에서 매체의 자유에 넓은 탄압을 숙고함으로써 서방과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다. 2006년 10월 7일 러시아 육군의 부패와 그들의 체첸에서 지휘를 폭로한 저널리스트 안나 폴리트콥스카야가 자신의 아파트 로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폴리트콥스카야의 사망은 푸틴이 국가의 새로운 독립적 대중 매체에 계획을 실패한 고발과 함께 서방의 대중 매체에서 부르짖음을 일으켰다. 독일의 TV 채널 ARD와 폴리트콥스카야 살인 사건에 관한 자신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그녀의 살인 사건이 그녀의 필적보다 러시아의 권한들에 더욱 손해를 가져온다고 말하였다. 2012년 이내로 살인자들이 체포되고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아흐메드 자카예프를 가능한 의뢰인들로 임명하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하는 푸틴

2007년 9월 12일 푸틴은 미하일 프랏코프 총리의 요구에 정부를 해산하였다. 프랏코프는 그것이 국회 선거에 전단계에서 대통령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빅토르 줍코프가 새 총리로 임명되었다.

12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통합 러시아 당이 64.24%의 인기있는 득표율을 얻어 국가원에 들어갔다. 통합 러시아 당의 승리는 당시 러시아의 지도력과 정책들의 강한 인기있는 후원의 표시로 보였다.

총리 2기 재직 (2008 ~ 2012)[편집]

그는 3선 연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 자신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지명하였다.

2008년 2월 2일에 실시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후계자로 알려진 메드베데프가 70% 득표로 당선되었다. 메드베데프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푸틴은 자신이 대통령 직에 물러난 후에도 총리직을 맡겠다고 공언해왔다. 2008년 5월 7일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총리로 지명받아 2008년 5월 8일에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전임 대통령 출신 현직 총리(총리직은 2번째)가 되었다. 그는 2012년에 다시 대선에 출마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으며 2012년 3월 5일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다.[3] 2012년베들레헴에 거리 한 곳이 푸틴 거리라는 거리로 명명되었다.[4]

제3 임기(2012년 5월 ~ 2018년 5월)[편집]

2012년 5월 7일 취임식에서

2012년 3월 4일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63.6%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되었다. 임시 측량이 선거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실시되는 동안 투표는 러시아 야당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정권이 부정선거에 개입을 했다는 논란이 있기 때문에 야당들이 반대를 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운동이 일어나는 동안과 즉시 후에 반푸틴 시위가 일어났다. 5월 6일 약 8,000~20,000명의 시위자들이 모스크바에 모였으며 80명이 경찰과 직면하면서 부상을 당하고 450명이 체포되었으며, 다음 날에 다른 120명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야당을 포함한 정치적 반대 세력들과 러시아 국민들이 일으킨 반 푸틴 시위의 지도자이자, 정치적 라이벌 이였던 보리스 넴초프의 죽음으로 시위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그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는 계속하여 그들에게 폭력적인 제압을 하고 있다.

5월 7일 크렘린에서 취임식을 올리고 대통령으로서 첫날에 러시아 경제를 위한 넓게 분류한 목적에 긴 하나의 진술을 포함한 14개의 대통령 법령을 내렸다. 다른 법령들은 교육, 주택, 숙련 노동 훈련, 유럽 연합과의 관계, 국방 산업, 민족 간의 관계와 대통령 선거 운동이 있는 동안에 내려진 푸틴의 프로그램 조항들과 다룬 다른 정책들에 근심을 가졌다. 즉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내세운 정책에 대해서 야당과 러시아 국민들의 반대로 인하여 정권 자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혼 선언[편집]

2013년 6월 6일 푸틴과 그의 부인 류드밀라는 크렘린궁에서 열린 발레공연 '에스메랄다'를 함께 관람한 후 호화로운 방으로 이동해 국영 러시아 24TV 카메라 앞에 섰으며 공연에 대한 감상평을 한데 이어 이혼을 선언했다.[5] 푸틴은 "두 사람이 함께 살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가볍게 웃은 뒤 "그건 그래요"라고 말했다.[6] 이후 "이혼이라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기자의 두 번째 질문에 "그렇다. 이것은 교양 있는 이혼이다."라고 말했다.[7] 또 "우리는 갈라서기로 했으며 결혼생활은 끝났다."면서 "부부가 함께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8] 부인 류드밀라도 "대중 앞에 서는 게 싫었다. 비행기를 타는 일도 힘들었다."고 밝혔다.[9]


우크라이나에 군사 개입과 크림 반도의 병합[편집]

러시아 - 우크라이나 활동 계획에 서명하는 푸틴 (오른쪽) (2013년 12월 17일)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이 일어나자, 푸틴은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포착하는 명령을 내렸다. 3월 2일로 봐서 러시아군은 크림 반도 통치를 완료하였으며, 그러고 나서 3월 16일 크림 주민투표가 실시되어 93 퍼센트의 다수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되어 러시아에 가입하는 것을 투표하였다. 주민 투표는 크림 위기의 이유로 국제 공동체의 대다수에 의하여 위법으로 여겨졌다. 크림 타타르족 협의회는 주민 투표의 보이콧을 요구하였다. 유엔 안보리의 13개 회원국은 주민투표가 무효하다가 선언한 결의의 호의에 투표하였으나 러시아는 거부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절제하였다. 유엔 총회는 결의가 주민 투표의 무효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을 단언한 호의의 100표를 얻어 후에 채택되었다.

결과로서 몇몇의 나라들은 러시아에 허용을 강요하고, 더 많은 나라들이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과 러시아의 다음의 군사 중재에 이어 따랐다. 세계 석유의 가격에서 허용들과 협력이 떨어져 러시아의 경제 개발이 위기를 경험하였다.

3월 18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혁명이 쿠데타였다고 말은 한 크림 연설을 꺼냈다. 또한 그날에 푸틴과 크림 반도의 새로운 지도력이 크림 위기로 이끈 법안에 서명하였다. 크림 주민 투표에 이어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으로 이어졌다. 5월 25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참조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선거들이 똑바른 방향에서 단계라고 말하였다. 같은 날 돈바스 국민 투표를 지니는 데 자율 선언을 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가진 친러시아 분리자들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돈바스 국민 투표에 러시아가 분리자들을 후원하여 90 퍼센트 가까운 투표자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는 데 호의를 가졌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후, 세바스토폴 방문 중 주민들과 인사하는 푸틴

8월 26일 푸틴은 민스크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상황을 논의하는 데 기꺼이 하였다. 포로셴코는 러시아의 후원으로 분리자들에게 러시아가 무기를 응용하는 의문에 의하여 은답되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정치적 타협을 원하고,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이익들을 약속했다고 말하였다.

11월 중순에 ARD는 푸틴이 돈바스 전쟁에서 러시아가 친러시아 쪽의 군사 타파를 허락하지 않을 것을 말했다고 보였다.

12월 4일 자신의 한해 연설에서 크림 반도의 병합을 반도가 러시아의 영혼적 땅인 이유로 역전되지 않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진술하였다.

시리아 내전 개입[편집]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는 푸틴 (2015년 9월 29일)

2015년 9월 푸틴은 그달 30일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 군사의 개입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였다.

러시아 군사 활동들은 이슬람 국가 단체, 알누스라 전선정복군을 포함한 시리아 정부에 반대한 군사 단체들에 대항하는 공습, 순한 미사일 타격과 전선 고문들의 이용을 지니었다.

2016년 3월 14일 푸틴이 시리아에서 러시아 군사를 위하여 세운 파견이 크게 이루어지고, 시리아로부터 러시아군의 주요 부분의 철수에 명령을 내린 그의 발표 후에 시리아에서 배치된 러시아군들은 지속적으로 시리아 정부의 후원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인 생활[편집]

2000년 일본 방문시 자신의 유도 기술을 선보이는 푸틴

국가보안위원회 요원 시절에는 독일민주공화국드레스덴에서 생활하였다. 1983년 독일어에 능통한 류드밀라 푸티나 여사와 결혼하여 2명의 딸을 두었으며, 2013년 6월 이혼을 발표했다. [10] 큰딸 마리야 푸티나(1985년생), 둘째딸 예카테리나 푸티나(애칭 카챠, 1986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출생). 딸들은 아버지가 1999년 총리로 임명될 때까지 모스크바 독일어 학교를 다녔다. 푸틴은 유도가 그의 취미이며, 2000년 9월 일본 방문 때 그의 색다른 기술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비판[편집]

3선 연임 회피 논란[편집]

과거 두 번의 대통령 재임(8년간) 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총리로 4년간을 지낸 뒤 또다시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는 3선 연임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의 조항을 바꾸려는 정부의 잘못된 법적 행동을 야당언론이 강력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언론 통제 논란[편집]

재임시절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살해당함으로 이러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언론 통제를 위한 발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보리스 넴초프의 죽음[편집]

현재 러시아 정부의 적으로 간주되어 암살로써 죽음을 맞이한 보리스 넴초프의 사망에 대해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자기 부하를 시켜서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냐? 하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돈바스 전쟁 개입[편집]

모스크바 시간 기준 2015년 5월 12일, 암살당한 야당인사 보리스 넴초프가 한때 이끌었던 자유주의 성향의 야당 러시아 공화당-인민자유당(RPR-PARNAS)은 넴초프가 작성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고, 전체 64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간 전투에 러시아군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을 도와 참여한 증거와 피해 규모 등이 들어가 있다.

보리스 넴초프는 220명 정도의 러시아 군인이 돈바스 전쟁에서 사망하였으나, 일로바이스크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숨진 병사들의 유족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는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동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군의 개입 주장을 강하게 부인해온 것과는 상반되는 사실이라, 논란이 예상된다.[11]

공로에 대한 인정[편집]

  • 2006년 9월에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푸틴에게 두 나라 사이의 우정에 대한 그의 공헌을 기념하기 위해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 훈장을 수여하였다.[12]
  • 2007년 타임 매거진의 올해의 사람으로 푸틴이 선정되었다 .
  • 2007년 2월 12일, 사우디 아라비아 압둘라 국왕은 푸틴에게 사우디 아라비아의 최고 민간 훈장인 압둘 아지즈 국왕 상을 수여했다.[13]
  • 2007년 9월 10일, UAE 대통령인 칼리파 빈 자이드 알은 푸틴에게 UAE의 최고 시민 훈장을 수여했다.[14]

참조[편집]

  1. Hoffman, David (2000년 1월 30일). “Putin's Career Rooted in Russia's KGB”. 《The Washington Post》. 
  2. R. Sakwa Putin: Russia's Choice, p. 11
  3. 푸틴 러 총리, 2012년 대선출마 시사
  4. 베들레헴에 '푸틴 거리' 생긴다
  5. MBN뉴스 (2013년 6월 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부부, 발레 관람 후 전격 이혼선언”. 2013년 6월 7일에 확인함. 
  6. MBN뉴스 (2013년 6월 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부부, 발레 관람 후 전격 이혼선언”. 2013년 6월 7일에 확인함. 
  7. MBN뉴스 (2013년 6월 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부부, 발레 관람 후 전격 이혼선언”. 2013년 6월 7일에 확인함. 
  8. MBN뉴스 (2013년 6월 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부부, 발레 관람 후 전격 이혼선언”. 2013년 6월 7일에 확인함. 
  9. MBN뉴스 (2013년 6월 7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부부, 발레 관람 후 전격 이혼선언”. 2013년 6월 7일에 확인함. 
  10.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6301671&date=20130607&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4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부부 끝내 파경…이혼 발표)
  11. 유철종 기자 (2015년 5월 12일). “넴초프 보고서 "러시아군 최소 220명 우크라 내전서 사망"(종합)”. 연합뉴스. 2015년 5월 12일에 확인함. 
  12. Video Chirac décore Poutine
  13. Atul Aneja Putin goes calling on the Saudis. The Hindu. 20 February 2007
  14. Putin Receives Top UAE's Decoration, Order of Zayed, Rbc.ru, 10 September 2007

외부 링크[편집]

Flag of Russia.svg 제3·4대 러시아 대통령 Standard of the President of the Russian Federation.svg
전 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권한 대행)
2000년 5월 7일 ~ 2008년 5월 7일 후 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보리스 옐친 · 블라디미르 푸틴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블라디미르 푸틴
Flag of Russia.svg 제6대 러시아 대통령 Standard of the President of the Russian Federation.svg
전 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2012년 5월 7일 ~ 2018년 5월 7일 (예정) 후 임
(현직)
보리스 옐친 · 블라디미르 푸틴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블라디미르 푸틴
전임
보리스 옐친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 권한 대행
1999년 12월 31일 ~ 2000년 5월 7일
후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전임
보리스 그리즐로프
통합 러시아당의 의장
후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니콜라이 보르듀자
러시아 연방 안전보장회의 서기
1999년
후임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임
세르게이 스테파신
러시아 총리
1999년 8월 9일 ~ 2000년 5월 7일
후임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임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총리
2008년 5월 8일 ~ 2012년 5월 7일
후임
빅토르 줍코프 (대행)
전임
토니 블레어
G8 의장
2006년
후임
앙겔라 메르켈
전임
당신
제81대 타임 올해의 인물
Time Magazine logo.svg
2007년
후임
버락 오바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