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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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러시아과 우크라이나의 위치
러시아의 국기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국기
우크라이나
외교 공관
주우크라이나 러시아 대사관 주러시아 우크라이나 대사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러시아 연방우크라이나의 관계를 말한다. 현재 두 나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2022년에는 러시아아가 우크라이나를 직접적으로 침공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분리된 국가들 간의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돌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 중 우크라이나는 독립과 주권 보장 정책이 가장 많았고, 유럽 연합(EU)과 러시아 간의 중립 외교를 택했다.[1]

우크라이나의 친러 성향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의 지지자들을 축출한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 연합과 러시아 사이의 중립 외교를 계속하기보다는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참여하려고 하였다. 마침 2004년에 체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슬로바키아가 유럽 연합에 참여하였고, 2007년에는 루마니아불가리아까지 뒤를 이었다.[a] 러시아 정부는 EU와 NATO가 러시아의 흑해 접근을 제한하자 옛 소련의 위성국들이 EU와 NATO 등에 참여하여 러시아의 서쪽이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대한민국일본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러시아에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국가들이 러시아를 둘러쌓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하고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네츠크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의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지원하여 돈바스 전쟁이 일어나게 하였다. 2020년 초까지 돈바스 전쟁은 13,0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하도록 만들었다.[2] 그리고, 2021년 내내 우크라이나 국경에 러시아가 군사력을 증강시키자, 서방국가와 러시아의 긴장감은 고조되었고,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시 강력한 경제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3][4] 이 충돌과 긴장감은 2022년까지 이어졌고, 이는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5]

국가 비교[편집]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공화국
Україна
러시아
러시아 연방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국기 및 국장 우크라이나 Lesser Coat of Arms of Ukraine.svg 러시아 Coat of Arms of the Russian Federation.svg
인구 41,319,838 (크림 반도 제외)[6] 146,171,015 (크림 반도 포함)[7]
면적 603,550 km2 (233,030 sq mi)[8] 17,125,191 km2 (6,612,073 sq mi)[9]
인구 밀도 73.8/km2 (191/sq mi) 8/km2 (21/sq mi)
시간대 1개 9개
배타적 경제 수역 147,318 km2 (56,880 sq mi) 8,095,881 km2 (3,125,837 sq mi)
수도 키이우 키이우 - 2,962,180 모스크바 모스크바 - 12,111,194
최대 도시
정부 단일 국가 이원집정부제 입헌 공화국 연방제 이원집정부제 입헌 공화국
언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종교 34% 우크라이나 정교회
27.6% 동방 정교회
13.8%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8.2%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0.7% 개신교복음주의
0.4% 로마 카톨릭교회
0.6% 기타
8.8% 무종교
5.6% 무신론[10]
71% 동방 정교회
15% 무신론
10% 이슬람교
<1% 로마 카톨릭교회
1% 그 외[11]
민족군 77.8% 우크라이나인
17.3% 러시아인
4.9% 기타
80.9% 러시아인
8.75% 튀르크족
3.96% 인도유럽어 사용 민족
3.78% 백인
1.76% 핀족과 몽골족
국제 통화 기구(IMF)의 GDP (nominal) $1,020억[12] $15억 7,600만[12]
국제 통화 기구의 GDP (PPP) $3,890억[13] $4,520억[13]
국제 통화 기구의 1인당 GDP (nominal) $2,583 $10,955
국제 통화 기구의 1인당 GDP (PPP) $8,656 $27,890
군사력
  • 우크라이나 국군 - 20만 9000명
  • 준군사 - 10만 2000명
  • 예비군 - 90만 명[14]
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 데니스 슈미할 미하일 미슈스틴
핵무기
준비양/전체양
0 / 0 (2019) 1,600 / 6,850 (2019)

분리독립 이전 관계[편집]

키예프 루스국[편집]

키예프는 바랑기아 류리크가가 다스리던 키예프 루스국의 수도였고, 이후 슬라브화되기 시작했다.

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10세기에는 키예프 루스국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현재 두 국가는 키예프 루스국의 유산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에서는 키예프 루스국이 봉건적 분열이 있어 군주들 사이에 갈등이 강했다고 적혀 있으며, 키예프 루스국의 수도는 키예프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원이 같아 두 국가는 이에 대해 종종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15]

러시아 차르국/제국[편집]

몽골 제국의 키예프 루스국 침공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족의 역사는 갈라졌다.[16] 러시아 차르국은 옛 키예프 루스국의 영토들을 성공적으로 통합하여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한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를 받고,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되었다. 그런데 호전적으로 폴란드화를 거부했던 자포리자 코자크가 정부와 슐라흐타들과 충돌하였고, 코자크와 그의 지지자들은 흐멜니츠키 봉기 등을 일으키고 러시아와의 동맹을 원했다. 이는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이 체결되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17] 17세기부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점차 흡수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비로소 폴란드가 분할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러시아에 흡수되었다. 18세기 중반에는 러시아가 코사크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해산된 대부분의 군인들을 캅카스 지역을 정복하게 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땅을 "소러시아"라고 불렀고,[18]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소수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만이 이에 반대했다.[19]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의 조짐이 보이자 러시아 제국은 소러시아를 완전한 러시아로 만드는 계획을 진행했다.[19] 1804년에 우크라이나에 우크라이나어 수업을 멈추고, 금지 언어로 지정했다.[20] 또한, 1876년, 알렉산드르 2세의 비서 엠스 우카즈(Ems Ukaz)는 우크라이나어로 된 서적 출판을 금지했으며, 우크라이나어를 인쇄하는 것 역시 금지했다.[21]

소비에트 연방[편집]

우크라이나 SSR-러시아 SFSR 관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기
우크라이나 SSR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기
러시아 SFSR
1922년부터 1936년까지의 소련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위치(빨간색).

러시아 2월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 임시 정부의 우크라이나 업무 담당 대표자였던 페트로 슈테브니츠키(Petro Stebnytsky)를 통해 우크라이나 중앙 위원회와 공식적으로 동맹 관계를 맺었고, 우크라이나 중앙 위원회는 드미트리 오디네츠(Dmitry Odinets)를 러시아 업무 담당 대표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1918년 초 소비에트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화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동맹국과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으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적 충돌은 멈추어졌고, 같은 해 평화협정이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전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이념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싸웠다.[b]

1922년,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창립 국가였으며, 러시아 제국이 무너져 결국은 우크라이나어 사용 금지도 철폐되었다.[19] 초기에 소련에서는 다른 소련 내의 공화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Korenizatsiya"가 진행되기도 하였다.[22] 1991년 12월에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조약[c]에 서명하기도 했다.

1932년부터 1933년, 1년간 우크라이나에서는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어: Голодомор)라는 대기근이 일어났는데, 이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대기근이었다. 기근의 원인으로 당시 학자들은 자연적 요인, 경제 정책이나 소련의 지도자들의 농장 파괴 등으로 꼽아 학자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인위적인 기근이라는 문서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 대기근은 소련과 카자흐스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학자들은 1930년대 초의 광범위한 가뭄과 급진적인 경제 정책 때문으로 의견을 모았고, 2010년 1월 13일 키이우 법원은 이오시프 스탈린, 라자리 카가노비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스타니스와프 코시오르(Stanisław Kosior)와 블라스 추바르(Vlas Chubar)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23]

최근 관계[편집]

1990년대[편집]

키이우 러시아 대사관.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대사관.

핵무기 문제[편집]

소련의 붕괴는 여러 문제들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초창기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켰다.[24] 냉전 기간 동안 현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다량의 핵무기가 위치해 있었는데, 그 상태로 소련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가 분리 독립을 했고,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설계와 생산에 중요했던 건물들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 비축량을 가지고 있었다.[25][26] 이 핵무기 비축량에는 6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UR-100N 대륙간 탄도 미사일 130기, 10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RT-23 46기와 33개의 중폭격기 등이 있었다.[27]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무기들을 물리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명령 시스템에 의존했기 때문에 작전 통제권은 없었다.[25]

1992년, 우크라이나는 3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제거하기로 합의했다. 1994년에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러시아가 진행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에 따라 나머지 핵무기를 폐기하고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했고,[28][29][30] 1996년에는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양도했다.

흑해 함대와 세바스토폴 분단 관련 문제[편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두 번째 갈등은 흑해 함대세바스토폴에 관한 것이었다.[24] 흑해 함대가 모두 러시아의 관할 하에 있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을 추구한다고 밝혔고, 이에 러시아의 정치인들은 크림 반도의 영토 주장을 표명했으며, 러시아 의회는 1954년 크림반도 이양소련 공산당 서기장니키타 흐루쇼프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이양이라 불법이라며 계속 문제로 삼아 왔다.[24][31][32] 치열한 협상 끝에, 1997년, 흑해 함대를 분할하고, 러시아가 일부 세바스토폴 해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기존 국경을 인정하는 것으로 갈등을 해결했다.[33][34]

에너지 문제[편집]

소련이 붕괴되기 전에, 소련에서 서유럽으로 향하는 많은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은 현 우크라이나 지역을 통과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자원을 공급 받았고, 우크라이나는 가스를 공급받으면서 밀렸던 채무들을 투폴레프 Tu-160 등의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여 해결했다.[35]

1997년, 우크라이나의 수출 중에서 약 26.2%가 러시아였는데, 1998년-2000년에 23%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수입에서 45-50%를 러시아의 수입에 의존하였는데, 그 중에서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연간 소비되는 가스의 70-75%가, 석유는 80%가 러시아에 의존했다. 러시아 역시 수출 시장에서 우크라이나가 주요 수출국으로 여겨졌으며, 역사적으로 러시아 소비자들은 우크라이나 시장과 다른 시장들에 비해 결부되어 있었고, 러시아 소비자들의 90%가 우크라이나 시장을 희망했다. 그러나, 1997년, 대부분의 러시아 소비자들이 떠나면서 우크라이나에는 디지털 제어 시스템, TV, 녹음기, 굴착기, 자동차, 트럭 등의 산업용 기계 생산이 무려 97~99%가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공산주의의 침체기였던 1998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투자국이었다.[36]

2000년대[편집]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베리아 항공 1812편 격추 사건, 투즐라섬 분쟁 등의 논란이 일었지만, 레오니드 쿠치마가 당선되고 정권 말기에 러시아와의 관계는 개선되었다. 이것에는 2002년 러시아의 흐멜니츠키 원자력 발전소와 리우네 원자력 발전소 건설 지원이 큰 역할을 하였고,[37] 덩달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유라시아 경제 연합에 통합하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빅토르 유셴코가 집권하면서 이러한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유럽 연합 참여 시도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크게 나빠지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그 어떤 나라도 합병할 생각이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04년 12월 24일)[38]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러시아와의 친밀한 관계를 환영하고 있으나,[39] 러시아 제국에게 정복을 당한 적이 없는 우크라이나의 중서부 지역은 러시아,[40][41][42][43] 특히 소련[44]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여긴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식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45]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 참여(EU)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참여 시도는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반러시아 성향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도록 했다.[46] 이에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반러 성향이 아니라고 러시아를 안심시켰고,[47]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의 EU 가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48] 이러한 두 대통령의 우호적인 관계는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의 제 2언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49][50][51] 그러나, 2009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스 분쟁 동안 러시아의 언론들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적대적인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싼 러시아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공격적인 국가로 묘사했다.[52]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러시아의 러시아 외무부,[53] 당시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47][54]과 당시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시코프[55]와 우크라이나의 외무부 차관 보리스 타라슈크[56]와 당시 법무차관인 코르니추크 예벤 볼로디미로비치(Корнійчук Євген Володимирович)[57]와 당시 야당 당수였던 율리야 티모셴코[58]의 호전적인 반응으로 양국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또한, 세바스토폴과 흑해 함대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었고, 양국의 의견이 부딪히면서 긴장 상태로 돌입하였다.[45][59]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하자, 양국은 국교가 단절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유럽 연합 회원국 참고.
  2. 러시아 내전에 참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무정부주의자, 백인 러시아인, 볼셰비키, 협상가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전투원 등이었다.
  3. 벨라베자 조약

참조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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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kraine sticks to positions on Russia but leaves room for "compromises". 《Reuters》 (영어). 2020년 2월 12일. 2022년 1월 31일에 확인함. 
  3. “Russia is stoking tension with Ukraine and the EU”. 《The Economist》. 2021년 11월 14일. ISSN 0013-0613. 2022년 1월 3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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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장재은. “푸틴, 우크라 새벽 침공 강행…미 "동맹과 가혹한 제재"(종합2보)”. 2022년 2월 2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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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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