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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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蒙古族)
Mongols clothes man and woman.jpg
인구 약 1,000만 명
거점 몽골 몽골: 2,921,287[1]


중국 중국: 5,981,840[2]
러시아 러시아: 647,417
대한민국 대한민국: 34,000[3]
미국 미국: 15,000–18,000[4]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12,000[5]
체코 체코: 7,515[6]
일본 일본: 5,401[7]
캐나다 캐나다: 5,350[8]
독일 독일: 3,852[7]
영국 영국: 3,701[7]
프랑스 프랑스: 2,859[7]
터키 터키: 2,645[7]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2,523[7]

언어 몽골어, 중국어, 러시아어
종교 샤머니즘, 티베트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관련민족 칼카, 다우르족, 부랴트족, 투바인

몽골족(몽골어: Монгол үндэстэн, 중국어: 蒙古族, 러시아어: Монголы, 영어: Mongol people)은 몽골, 러시아, 중국(주로 내몽골 자치구)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약 800여만 명이 몽골어를 쓴다. 통계적으로 약 300만 명이 몽골에, 400만 명이 내몽골 자치구, 200만 명이 러시아나, 다른 지역에 거주한다. 중국 북부와 러시아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부랴트족, 도르호트인, 칼리쉬인 등의 몽골계 민족도 포함된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탁발선비가 원거주지인 가샨동을 떠난 뒤 ‘실위’가 출현할 때까지 어떠한 북방종족도 대규모로 이동해오거나 갔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실위인은 서쪽으로 옮겨가지 않고 남아 있던 탁발선비의 잔여세력으로 탁발선비와 기본적으로 같은 원류라고 할 수 있다.[9] 실위 중에서 몽골족의 선조인 몽올실위는 《구당서》와 《신당서》 등에 기술된 20부 실위의 하나였다.[10] 《구당서》와 《신당서》는 몽올실위가 망건하(望建河, 《신당서》는 室建河로 기록함)의 남쪽에 있다고 했는데 망건하는 지금의 에르구네하 및 헤이룽강에 해당된다. 이들은 본래 흥안령의 서쪽인 에르구네하로부터 헤이룽강 상류의 산림과 초원이 교차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9세기 중엽 위구르 제국의 붕괴를 계기로 실위인들이 대이동을 단행하자, 몽올실위도 수렵과 유목이 교차하는 곳인 헨티산맥의 오논강 유역으로 이동해왔다. 몽골족의 기원에 관해 라시드 앗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다른 종족들이 몽골종족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는데 얼마나 많이 참살시켰던지 두 남자와 두 여자를 빼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두 가족은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험준한 곳으

로 도망쳤는데 그 주변은 모두 산과 숲이었고 통과하기에 지극히 어려운 좁고 험한 길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방향에서도 없었다. 그 산지 중간에는

목초가 풍부한 아름다운 초원이 있었는데 그곳의 이름이 에르구네 쿤이었다. 쿤의 뜻은 협곡이고 에르구네는 ‘가파르다’이니 곧 ‘가파른 산애(山崖)’를 의미한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네쿠즈와 키얀이었고 그들과 그 후손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혼인을 통해서 (숫자가) 많아졌다.

[11]

라시드 앗딘의 설명은 몽골족이 에르구네를 기반으로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몽올실위가 에르구네 일대에 거주했다는 한문 기록과도 일치한다.[12] 몽골이라는 명칭이 가장 먼저 보이는 한문 사료는 《구당서》「북적전(北狄傳)」으로 ‘몽올(蒙兀)’이라 했고, 《신당서》「북적전」에서는 ‘몽와(蒙瓦)’라고 했는데, 당시 음운 통례상 올(兀)과 와(瓦)는 같은 음이다. 요·금시대의 한문 문헌에서 ‘맹고(萌古)’[13], ‘맹골(萌骨)’[14] 등으로 표기되다가 12세기 말경에 ‘몽고(蒙古)’로 바뀌었다. 또한 《몽골비사》에서는 “칭기스칸의 뿌리가 되는 부르테 치노와 고아 마랄이 ‘텡기스(Tengis)’를 건너와 오논강의 발원지인 부르칸 칼둔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여기서 ‘텡기스’는 튀르크어로 바다를 의미하지만, 내륙 한가운데 바다는 호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몽골인들은 큰 호수를 바다를 의미하는 ‘달라이(Dalai)’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텡기스’가 ‘쿨룬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15] 흥안령 서쪽지역의 에르구네와 쿨룬 부이르 초원에 거주하던 몽올실위가 몽골의 직접 조상이 된다는 것이 많은 사료 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840년, 위구르 제국의 멸망은 몽올실위를 비롯한 실위인들의 몽골리아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주한 실위인들은 당시 대제국을 건설했던 튀르크위구르의 선진문화와 유목경제를 흡수함으로써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것은 실위인들이 흥안령 서쪽의 에르구네하 일대에서 수렵과 약간의 목축, 농경을 하던 경제에서 기마 양 유목경제로 본질적인 전환을 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목경제로의 전환은 흥안령 일대의 수렵과 원시농경에 비해 보다 안정적인 생산을 보장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초원으로 이주한 수렵민은 유목민이 되었고, 이들의 기마 양 유목민화는 몽골 초원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몽골 초원이라는 생태환경에서 초원 기마 양 유목민으로 전환한 몽올실위는 향상된 기동력을 발판으로 크고 작은 부족 전쟁을 통해 강 력한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몽올실위를 주체로 실위인들이 점차 몽골족 으로 응집되었고, 흥안령을 포함해 실위인들이 거주하고 활동했던 모든 지역 은 몽골제국의 통치권 아래 흡수되었다.[16]

계통[편집]

현재의 몽골족은 동호족을 기본으로 북방에 존재하던 여러 이민족 북적, 산융, 흉노족, 돌궐족의 혼혈 민족이다.

중앙아시아 북부를 장악한 흉노족은 크게 아리아계 유럽인종과 몽골로이드 아시아 유목 민족이 있었다. 흉노 무덤에서는 아리아계 유럽인종과 몽골로이드 유골이 함께 출토되었다.

4~5세기 아틸라의 유럽 정복으로 상징되는 훈족의 서진, 그리고 중국에 남하하여 5호 16국 시대를 기점으로 흉노족은 사라지게 된다. 이 시점에 동호족이 흉노족이 중심지였던 바이칼, 울란바타르로 이동하였다. 이후 동호족과 이 지역에 남아 있던 흉노족, 말갈, 갈족, 타타르여진족만주족, 중국에서 넘어온 한족, 러시아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몽골 민족에 흡수되었다.

몽골 제국[편집]

몽골제국은 1206년 징기스칸이 세운 제국으로,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제국이다. 이 시기는 몽골의 가장 전성기 시절의 역사이다. 지금 현제 중화민국의 자치기구인 내몽골 자치구 때문에 중국이 자신드르이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에 독립한 것이 현제 몽골이고, 독립 못 하고 남아 있는게 내 몽골이다.

제국민의 아주 소수인 겨우 3% 혹은 그 이상만이 몽골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배층의 사위층, 즉 귀족으로 지냈다. 몽골은 아주 개방적인 정치 기구로써,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들의 문화나 종교를 매우 인정해주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식민지인이 공을 세우면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신분제는 있었으나 상당히 개방적인 정책을 했음을 볼 수 있다.

강했던 것과 대비되어 몽골은 그 후 수 세기가 지나자 급격하게 쇠퇴하는데, 그것이 징기스칸의 아들들의 권력 다툼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근대 역사[편집]

청나라강희제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외몽골로 분리시켰다. 이후 내몽골은 중국과 호흡을 같이하고 외몽골은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일어난 1911년신정 군주제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1917년 이후 한때 러시아 내전의 여파에 휘말렸으나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전란을 수습하고 1924년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이라 함에 따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막강해졌으며 중국과 소련의 분쟁이 발생할 때 옛 소련을 지원하였다. 그에 힘입어 코메콘 가맹 국가도 몽골에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다. 1992년에 복수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 공산주의 체제를 버리고 시장 경제를 도입했다.

몽골 민주 공화국 밖의 몽골족[편집]

몽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몽골족 자치 구역

중국의 자치구인 내몽골 자치구몽골족 자치구이지만, 이 지역의 다수 민족은 한족이다. 러시아에도 몽골족 자치 지역이 있는데 칼미크 공화국우스티오르딘스키부랴트 자치구, 아긴스크부랴트 자치구, 부랴트 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언어[편집]

몽골 문자(중국 내몽고에서 사용)와 키릴 문자(몽골에서 사용) 두 가지로 표기한다. 현대 몽골어는 러시아어 차용어가 소수 있다. 파스파 문자, 전통 몽골 문자, 소욤보, 키릴 문자 등이 있다.

전통 문화[편집]

백식은 유제품을 말하고 홍식은 육류(주로 소, 양, 낙타고기 등)를 말한다. 백식은 몽골어로 순결하고 고상한 음식이라는 뜻으로 귀한 손님이 오면 통상적으로 반드시 접대하며 가족이나 친지 중의 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날 때도 백식을 먹게 하여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홍식은 몽골어로 붉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시집을 갈 때는 반드시 삶은 양의 가슴고기를 먹음으로 가족들과의 이별을 나타낸다. 몽골인의 대부분은 라마 불교를 믿는다.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Монголын үндэсний статистикийн хороо”. National Statistical Office of Mongolia. 2013년 11월 14일에 확인함. 
  2. “中华人民共和国国家统计局 >> 人口普查公报”. 《Stats.gov.cn》. 2013년 12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0월 14일에 확인함. 
  3. 'Korean Dream' fills Korean classrooms in Mongolia”, 《The Chosun Ilbo》, 2008년 4월 24일, 2008년 9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2월 6일에 확인함 
  4. Bahrampour, Tara (2006년 7월 3일). “Mongolians Meld Old, New In Making Arlington Home”. 《The Washington Post》. 2007년 9월 5일에 확인함. 
  5. “President of Mongoli Received the Kalmyk Citizens of the Kyrgyz. 2012”. 2016년 12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4일에 확인함. 
  6. “Latest numbers show 7,500 Mongolians working in Czech Republic”, 《Mongolia Web》, 2008년 2월 19일, 2008년 10월 4일에 확인함 
  7. “Mongolia National Census” (PDF) (몽골어). National Statistical Office of Mongolia. 2010. 2011년 9월 15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1월 29일에 확인함. 
  8. NHS Profile, Canada, 2011
  9. 어장지우허 지음, 북방사연구팀 옮김(2009), 『몽골인 그들은 어디서 왔나』, 소나무, 60~73쪽
  10. 《舊唐書》 권199, 「室韋傳」; 《新唐書》 권291, 「室韋傳」. 당대 한문사료에서 처음 등장한 몽올실위에 대해 중국 학계에서는 크게 두 종류로 의견이 나누어져 있다. 張久和와 林樹山 등은 수대 ‘심말달 실위’에서 나왔다고 본 반면에, 鄭英德, 劉光勝과 鄧國平 등은 ‘북실위’에서 몽올실위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11. 라시드 앗딘 지음, 김호동 역주(2002), 『부족지』, 사계절출판사, 252~253쪽
  12. 《新唐書》 권291, 「室韋傳」
  13. 《遼史》 권24, 「道宗本紀」24, 도종 4년조
  14. 《金史》 권44, 志25, 兵制
  15. 周淸澍(2001), 『元蒙史札』, 內蒙古大學出版社, 21쪽
  16. 윤은숙ㆍ연규동ㆍ장준희ㆍ최준ㆍ김선자ㆍ김정열ㆍ장석호ㆍ박소현ㆍ김주용. 《만주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54~57쪽. ISBN 978-89-6187-305-5.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