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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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에드먼드 버크의 초상화
출생 1729년 1월 12일(1729-01-12)[1]
사망 1797년 7월 9일 (68세)
영국 영국 비컨스필드
국적 영국 영국
민족 아일랜드계 영국인
고향 아일랜드 더블린
경력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정당 휘그당 (영국)
종교 아일랜드 성공회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년 1월 12일 ~ 1797년 7월 9일)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영국의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 연설가이다.

보수주의의 시초[편집]

최초의 근대적 보수주의자로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진보적인 당으로 생각되던 휘그당의 당원이었던 만큼 생전 스스로나 타인에게 보수주의자라는 정체성이 씌어진 적은 없었으나[2], 그가 주장한 대의 정부, 자연적 귀족, 사유재산, 소집단의 중요성은 보수주의의 기본 특징이 되었다.

사상적 배경[편집]

이상주의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선 전래된 관습, 전통 생활방식, 법률, 헌법 등 기존의 모든 사회제도를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지식인들의 열렬한 환영과 동시에 유토피아적 혁명은 공포와 독재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존 가치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반발에 대한 타당성은 프랑스 혁명 전후의 혼란으로 뒷받침되며 버크의 사상적 배경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여진다.[3]

그는 혁신적 변화와 급진적인 경제 개혁를 거부했는데 그런 변혁은 기존 질서의 파괴와 혼란 만을 초래할 뿐 실익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는 그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견해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계몽주의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체제를 이상향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인간 지성의 파괴적 행위의 전형적 예이며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한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영국의 명예혁명과 달리 폭정과 혼란, 경제체제의 파괴 만을 부른다고 경고했다.[4]

엘리트주의와 복지에 관한 관점[편집]

고대 그리스민주주의 실패 경험과 관련하여 만인의 지배는 만인의 독재라는 생각을 가진 버크였던 만큼, 당시 당연시되던 귀족주의엘리트주의에 긍정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신분에 관계없이 도덕성 품성과 능력에 따라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실력주의도 버크의 주장 중 하나이며 기존 보수주의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견해는 복지에 대한 그의 주장에서도 드러나는데 (빈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제약하는) 직접적인 국가의 복지 개입이 아닌 귀족과 부자의 도덕적인 고결함에 기초한 자발적인 온정주의에서 나온 복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

저서[편집]

  • 《프랑스 혁명 및 이에 관한 런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Relative to it, 1790)
  •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희소성의 고찰》
  •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

함께 읽기[편집]

참조[편집]

  1. 그의 출생년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이는 그의 생전에 그레고리력이 바뀐 원인이 크다.
  2. 민경국, 경제사상사 여행 42p
  3.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 서문(introduction)부분]
  4.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 18p]
  5. ²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