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경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고려 경종
高麗 景宗
고려의 제5대 국왕
재위 975년 7월 ~ 981년 7월
전임자 광종
후임자 성종
섭정 왕선 (975년 7월 ~ 976년 2월)
최승로 (976년 2월 ~ 977년 7월)
부왕 광종
별칭
왕주(王伷)
연호 태평(太平)
묘호 경종(景宗)
시호 지인성목명혜순희정효공희헌화대왕(至仁成穆明惠順熙靖孝恭懿獻和大王)
신상정보
출생일 955년 11월 9일
사망일 981년 8월 13일 (25세)
모친 대목왕후 황보씨
배우자 헌숙왕후 김씨
헌의왕후 유씨
헌애왕후 황보씨
헌정왕후 황보씨
종교 불교

경종(景宗, 955년 11월 9일 (음력 9월 22일) ~ 981년 8월 13일 (음력 7월 11일[1]))은 고려 제5대 국왕(재위: 975년 ~ 981년)이다. 는 주(伷), 는 장민(長民), 묘호는 경종(景宗), 시호지인성목명혜순희정효공희헌화대왕(至仁成穆明惠順熙靖孝恭懿獻和大王)이다. 광종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맏아들이다.

생애[편집]

어린 시절[편집]

광종이 강력히 추진하였던 호족 세력 숙청의 폭풍 속에서 부왕 광종과의 관계마저 좋지 못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치세[편집]

975년 광종의 뒤를 이어 고려 제5대 왕(王)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재위 초기에는 975년에서 976년까지 1년간 호족 출신 정치가 왕선(王詵)이 대리청정을 맡았다. 그러나 왕선이 권력을 남용하고 횡포를 자행하자 왕선의 대리청정 실권을 박탈시키고 축출 처분, 원로대신(元老大臣)이었던 최승로(崔承老)에게 976년에서 977년까지 1년간 대리청정을 임명하였고 이후 977년에서 981년 사촌 아우 개령군 왕치에게 선위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등극 이후와 만년[편집]

재위기 초반에는 광종 당시 수감되었던 정치범을 석방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들의 죄를 씻어주었으면서도 광종의 치적을 부정하는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였다. 또한 보복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모함을 당한 사람들이 무고자를 찾아 고발하거나 처벌하는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태조의 서자이자 유력 왕위 계승자였던 효성태자원녕태자가 살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경종은 보복법을 취소하였다.

광종 생존 당시 광종의 명으로 신라 경순왕의 딸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와 결혼하였다. 즉위 후인 975년, 장인인 신라 경순왕을 상보로 책봉하면서 작위를 정승공(政丞公)에서 낙랑왕(樂浪王)으로 높이고 식읍을 하사하였다. 이어 광종의 명에 의해 헌애왕후 황보씨(獻哀王太后), 헌정왕후 황보씨(獻貞王太后) 자매와 결혼하였고 헌애왕후로부터는 아들 목종을 얻었다.

나중에는 정사를 멀리 하고 오락과 음탕한 생활에 빠져 지냈다. 980년 최지몽이 왕승의 모반을 예언하여 이를 막고 왕승 등을 처형하였다. 981년 7월 병세가 위독해지자 장남인 개령군 왕송(王訟, 목종)에게 양위하려 했으나 어린 아들을 세우면 왕위가 찬탈당할 것을 우려하여 사촌동생이며 매제이자 처남인 개령군 왕치(王治, 성종)에게 양위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 병사하였다. 능은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영릉(榮陵)이다.

업적[편집]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여 고려의 토지제도의 시초를 마련하였다. 송나라와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여 사신의 왕래가 잦았다.

가계[편집]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1. 《고려사》〈세가〉2
전임
광종
제5대 고려 국왕
975년 - 981년
후임
성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