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왕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정간왕(靖簡王, 1021년 8월 ~ 1069년 11월)은 현종의 넷째 아들로, 고려 전기의 왕족, 문신이며 추존왕이다.[1] 생전의 작위는 개성국공(開城國公), 평양공(平壤公)이었다. 훗날 왕으로 추존되고 정간(靖簡)의 시호를 받았다.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본명은 왕기(王基)이다.[2]

생애[편집]

1021년 8월 현종의 넷째 아들로 연덕궁에서 태어났으며 덕종, 정종, 문종의 동생으로 바로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기(基), 연덕궁으로 봉했다가 후에 평양공(平壤公)에 봉해졌다.

1031년(현종 22년) 홍인숭효광덕공신 수태위상서령(弘仁崇孝光德功臣 守太尉兼尙書令)에 임명되고 개성국공(開城國公)에 봉작되었다. 1034년태보(守太保)로 승진하였고, 책문(冊文)에 이르기를, "본지(本枝 본종(本宗)과 지손(枝孫) )를 굳게 하여 영세(永世)토록 함은 역대의 영유(令猷)요, 보옥(寶玉)을 나누어 이로써 친함을 두렵게 함은 선왕(先王)의 아름다운 법이라. 이러므로 척리(戚里 외척(外戚))를 숭봉(崇封)하여 왕가에 번병(藩屛)이 되게 함이요, 이미 원공(元功=원훈(元勳))이 있음에 마땅히 총수(寵數)를 더할 것이다. 아아! 그대 왕기(王基)는 영원(靈源, 마음)의 큰 자취이니 위기(偉器)로 이름이 났도다. 뜻은 충정(忠貞)에 돈독하고 몸은 협보(挾輔)에 부지런하였다. 이에 구석(九錫)의 법(法)에 따라 곧 삼공(三公)의 직(職)을 주고 진기(珍奇)한 것과 아울러 명복(命服)을 사(賜)하노라. 지금 모관(某官) 모(某)를 보내어 예를 갖추어 너를 책명(冊命)하여 수 태보(守太保)를 삼고 계(階)와 훈(勳), 기타(其他)는 다 옛과 같이 하노니 나의 큰 교훈을 체득하여 너의 깊은 정성을 힘쓸지어다."라 하였다.

문종 초에 평양공으로 진봉되었다. 문종 초, 그에게 병이 나자 문종은 직접 어의를 보내 그의 병을 돌보게 하였다. 1049년(문종 3) 수태사(守太師) 겸 내사령(內史令), 1061년(문종 15)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1061년 교위(校尉) 거신(巨身) 등이 정변을 기도하여, 문종을 폐하고 그를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의 딸 정의왕후 왕씨는 순종의 왕비가 되었으므로 순종의 장인이 된다.[3][4] 사후 정간왕(靖簡王)에 추봉되었다.

왕실과의 겹사돈[편집]

그는 고려 문종의 동생이면서 이중 겹사돈간이 된다. 정간왕의 딸 정의왕후 왕씨는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소생으로, 친조카인 순종와 결혼하였다. 이후 그의 차남 낙랑공 왕영(樂浪公 王瑛)은 정간왕의 조카이자, 자신의 사촌누이가 되는 문종인예왕후 이씨 소생으로의 딸 보령궁주(保寧宮主)와 결혼한다.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 고려 제8대 현종(顯宗, 992~1031 재위: 1009~1031)
  • 어머니 겸 이모 : 원성왕태후 김씨(元成王太后 金氏, ? ~1028)
    • 형 : 고려 제9대 덕종(德宗, 1016~1034 재위: 1031~1034)
    • 형 : 고려 제10대 정종(靖宗, 1018~1046 재위: 1034~1046)
  • 친어머니 : 원혜태후 김씨(元惠太后 金氏, ? ~1022)
    • 형 : 고려 제11대 문종(文宗, 1019~1083 재위: 1046~1083)
    • 부인 : 미상
      • 장남 : 왕진(王璡)
      • 차남 : 낙랑공 왕영(樂浪公 王瑛, 1043~1112)
      • 며느리 : 보령궁주(保寧宮主, ? ~ 1113)
        • 손자 : 승화백 왕정(承化伯 王禎, ?~1130) - 이명: 제(禔)
        • 손부 : 숙종의 딸 흥수공주(興壽公主)
        • 손자: 왕지(王禔)
      • 3남 : 왕거(王琚)
      • 딸: 순종정의왕후 왕씨

각주[편집]

  1. 박상진 《내시와 궁녀》(가람기획, 2005.05) 275~276쪽 참고.
  2. 디지털한국학
  3. 박상진 《내시와 궁녀》(가람기획, 2005.05) 275~276페이지 참고
  4. 최범서, 《야사로 보는 고려의 역사》(가람기획, 2005) 273 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