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광산 김씨(光山 金氏)
광산 김씨의 종문
광산 김씨의 종문
관향 광주광역시
시조 김흥광 (金興光)
주요 집성촌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영암군
전라남도 보성군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북도 고창군
주요 인물 김갑수, 김겸광, 김계휘, 김관영, 김구, 김국광, 김동한, 김만기, 김만중, 김민준, 김범수, 김상중, 김선빈, 김수로(김상중), 김수환, 김아중, 김영애, 김영철, 김용건, 김우중, 김응수, 김익경, 김일중, 김장생, 김장수, 김정수, 김집, 김춘수, 김춘택, 김태년, 김태현, 김택수, 김하중, 김황식, 김효석, 김효석, 김희중, 솔라(김용선), 이지아(김상은), 인경왕후(김진옥), 차현우(김영훈), 하정우(김성훈), 현빈(김태평)
인구(2000년) 837,008명 (8위)
※ 주요 인물은 가나다 순이며, 괄호( ) 안은 본명임.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광산김씨 정유대동보(光山金氏丁酉大同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 셋째 아들이라고 하나,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및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 선계(先系)는 정확하게 상고(詳考)할 수 없다.[1] 그러나, 여러 시대 정황과 헌강왕은 셋째 아들이 없는 것, 다른 기록[2]에서 신무왕의 셋째아들을 김흥광으로 기술한 것을 미루어 따져볼때, 신무왕의 셋째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왕자로써 고려로 통일의 대세가 기울자 신라의 비운을 알고 경주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 : 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달리 손자 김길(金吉)은 고려에 귀의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고려 태조 왕건은 김길은 삼중대광(三重大匡)[3]에,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이후 조부의 작호(爵號)이자 세거지(世居地)인 광산(光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며, 후손들 중 평장사(平章事:정2품)[4]가 8명이나 배출되자 사람들이 서일동을 평장동(平章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은 지금까지도 남아 평장리(平章里)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총 262명의 문과 급제자[5]를 배출하여, 본관별 서열로 제 8위를 기록하였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을 배출하였다.

분파[편집]

14세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을 파조로 하는 문숙공파(文肅公派), 14세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을 파조로 하는 양간공파(良簡公派), 14세 낭장공(郎將公) 김규(金珪)를 파조로 하는 낭장공파(郎將公派), 15세 문정공(文正公) 김태현(金台鉉)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文正公派),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을 지낸 17세 김영(金英)을 파조로 하는 사온서직장공파(司醞署直長公派)로 나뉘었다.

  • 문정공파(文正公派) - 15세 김태현(金台鉉)
  • 문숙공파(文肅公派) - 14세 김주정(金周鼎)
  • 양간공파(良簡公派) - 14세 김연(金璉)
  • 낭장공파(郎將公派) - 14세 김규(金珪)
  • 사온직장공파(司醞直長公派) - 17세 김영(金英)

집성촌[편집]

항렬표[편집]

  • 대동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