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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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겸
金益兼
조선국 성균관 동몽교관
(朝鮮國 成均館 童蒙敎官)
임기 1635년 12월 1일 ~ 1636년 11월 26일
군주 조선 인조 이종
신상정보
국적 조선
출생일 1614년
출생지 조선 충청도 논산군
사망일 1636년 12월 27일 (23세)
사망지 조선 경기도 강화유수부 강화산성 남문에서 분신 자살
본관 광산(光山)
학력 1635년 생원시 장원 급제
1635년 진사시 3등 합격
경력 조선 시대 문관
한시 작가
시조 시인
정치운동가
사회운동가
정당 무소속
부모 김반(부), 연산 서씨 부인(모)
형제 김익희(형)
김익훈(아우)
김익경(아우)
배우자 해평 윤씨 부인
자녀 김만기(장남), 김만중(차남)
친인척 김장생(할아버지)
김만균(조카)
김만채(조카)
김만길(조카)
김진구(손자)
김진규(손자)
인경왕후(손녀)
숙종(손녀사위)
별명 자(字)는 여남(汝南)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충정(忠正)
추증 작위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
종교 유교(성리학)

김익겸(金益兼, 1614년 ~ 1636년 12월 27일)은 조선문신(文臣)시인이자 정치운동가(政治運動家)이며 사회운동가(社會運動家)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字)는 여남(汝南)이며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충정(忠正)이다.

생애[편집]

출생과 과거 급제[편집]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손자인 그는 일찍이 박선(朴璿) 등을 사사하였으며 1635년 생원시에 장원 급제를 하였고 이어 같은 해 1635년 진사시에 3등 합격하였다. 이후 1635년 12월에서 1636년 11월까지 성균관에서 평서원(平書員)을 지냈다.

병자호란[편집]

1636년 후금 태종 숭덕제(後金 太宗 崇德帝)가 국호를 후금(後金)에서 청(淸)으로 개칭하자 이를 경하하기 위해 청나라에 특파된 사신 이확(李廓)이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와 함께 귀국하자, 명나라와 의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라도 조선청나라를 인정해 준 것은 잘못이며 오랑캐들의 조정에 가서 축하를 함으로써 조선의 국위와 국격을 훼손한 이확청나라 사신 용골대를 모두 죄인으로써 주살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으나 용골대에게는 끝내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고 이확은 유배형에 처해짐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어 그 해 겨울(1636년 12월)에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고 청나라 군사들로부터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되자 그는 강화도(江華島)로 가서 강화산성(江華山城)을 사수하다가 끝끝내 강화산성청나라 군사들로부터 함락되기 직전에 남문(南門)으로 올라가 홀로 분신 자결하였으니 그의 나이 23세였다.

사후[편집]

그의 사후에도 청군에 항거하는 동지들[편집]

그가 자결 순국한지 한 달 후인 이듬해 1637년 1월 22일에는 강화도에 남아 있던 77세 노구(老軀)의 충신(忠臣) 김상용(金尙容)과 31세의 청년 충신 권순장(權順長) 또한 강화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에 결사 항거하다가 화약에 불을 질러 함께 동반하여 분신 자결했다.

후손[편집]

그가 1633년 20세 때 출생한 그의 아들 서석 김만기(瑞石 金萬基)는 숙종(肅宗)의 정비(正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아버지이고 그가 1636년 12월에 강화도(江華島)에서 23세로 분신 자결한 이듬해 1637년 유복자로 출생한 그의 아들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은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小說家)이자 문신(文臣)이다.

묘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