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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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지(尹新之, 1582년 ~ 1657년)는 조선의 문신으로 선조부마이다. 선조의 서녀 정혜옹주와 결혼하였다. 윤두수의 손자이자,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아들이다.[1] 자는 중우(仲又)이고 호는 연초재(燕超齋)·현주(玄洲)이며, 시호는 문목(文穆), 본관은 해평(海平)이다.[1] 윤택영, 윤덕영의 10대조이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생애[편집]

1582년(선조 15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판관(判官) 한의(韓漪)의 딸 청주 한씨이다.[1] 1596년 선조의 서녀 정혜옹주와 결혼하여 해숭위(海崇尉)에 봉해졌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소모대장(召募大將)이 되어 강화도를 방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하여 청군에게 갑진진(甲津鎭)이 함락되고 청나라 군대가 강화성 앞에까지 진입해오자 자살을 기도하여, 언덕에서 투신했으나 목숨을 건졌다. 이후 전란 중에 아비를 버렸다는 이유로 죄를 주라는 탄핵을 받았으나 인조가 이를 듣지 않았다.[2] 1657년(효종 8년) 병으로 죽어 고양군 원당리에 묻혔다.[1]조선왕조실록》에서는 윤신지를 가리켜 글과 그림을 잘 지었다고 평가했다.[3]

가계[편집]

각주[편집]

  1. 《국역 국조인물고》 권6 국척(國戚) 윤신지의 비명(碑銘)
  2. 《조선왕조실록》 인조 36권, 16년(1638년) 4월 13일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 효종 18권, 8년(1657년) 5월 4일 2번째기사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