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옹주 (15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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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옹주
지위
옹주
신상정보
출생일 1584년 음력 3월 22일
출생지 조선
사망일 1638년
사망지 조선
매장지 윤신지·정혜옹주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선조
모친 인빈 수원 김씨
배우자 해숭위 윤신지(海嵩尉 尹新之)
자녀 2남
윤지(尹墀), 윤구(尹坵)

정혜옹주(貞惠翁主, 1584년 음력 3월 22일 ~ 1638년)는 조선 시대의 왕족이다. 선조인빈 김씨의 차녀이다.

생애[편집]

가계[편집]

1584년(선조 17년) 음력 3월 22일 조선의 제14대 선조(宣祖)와 그 후궁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차녀로 태어났다[1]. (李), 본관전주(全州)이다. 신성군(信城君), 원종(元宗, 인조의 아버지) 등의 친동생이며, 인조(仁祖)의 고모이다.

정혜옹주의 생모 인빈 김씨수원 김씨 김한우(金漢佑)의 딸로, 명종(明宗)의 후궁으로 있던 경빈 이씨(慶嬪 李氏)의 외사촌이었던 관계로 궁중에서 자랐다. 이후 선조의 후궁이 되어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으며, 또 선조의 자식을 가장 많이 낳았다[2]. 그러나 광해군(光海君)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 金氏)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3].

옹주 시절[편집]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8세의 어린 나이에 피난 생활을 해야 하는 등 고생을 겪었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에는 정혜옹주가 나이가 어렸고, 피난길도 어수선하여 말 등을 준비할 수 없게 되자 선조가 옹주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간 후 무사히 난리를 피하면 큰 상을 내릴 것이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내수사(內需司)의 관원으로 있던 윤백상(尹百祥)이 자원하여 옹주를 황해도의 산 속으로 들어가 용케 적을 피하고, 그 해 겨울이 되어서야 의주(義州)로 들어갔다[4].

이후 정혜옹주는 1596년(선조 29년) 해평 윤씨 윤방(尹昉)의 아들 윤신지(尹新之)와 혼인하였다. 이때 윤신지는 해숭위(海嵩尉)에 봉해졌다[5].

사망[편집]

정혜옹주는 병자호란이 발발한지 2년 후인 1638년(인조 16년) 사망하였다. 당시 왕실에는 정혜옹주 말고도 여러 왕족들이 죽었으나 그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인조는 정혜옹주에 대해 예장(禮葬)을 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여러 대신들이 반발하였으나, 인조는 자신의 명대로 시행토록 하였다[6]. 현재 그녀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으며, 남편 윤신지와 합장되었다[5].

가족 관계[편집]

정혜옹주는 윤신지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1]. 남편 윤신지는 품계가 정1품에 올랐으며, 글을 잘 짓고 서화에 능하여 장인인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7]. 게다가 두 아들까지 총명하여 한때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자신보다 일찍 죽는 바람에 약 20여년을 은거하며 지내다가 1657년(효종 8년)에 죽었다[8].

장남은 윤지(尹墀)이며, 차남은 윤구(尹坵)이다. 윤지는 광해군 때 사직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지내고, 훗날 예조참판과 전라도관찰사, 경기감사 등을 지냈다. 또 글씨를 매우 잘 썼다고 한다[9]. 윤지의 딸이 김만기·김만중의 어머니로, 김만기의 딸이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 김씨이다. 윤구는 이조정랑 등을 지냈으며, 병자호란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다[10].

친정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조부 :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
  • 조모 : 하동부대부인 하동 정씨(河東府大夫人 河東 鄭氏, 1522~1567)
    • 아버지 : 제14대 선조대왕(宣祖大王, 1552~1608, 재위 1567~1608)
  • 외조부 : 사헌부감찰 김한우(司憲府監察 金漢佑, 1501~1577)
  • 외조모 : 충의위 이효성(忠義衛 李孝性)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어머니 : 인빈 수원 김씨(仁嬪 水原 金氏, 1555~1613)

시가 해평 윤씨(海平 尹氏)

  • 시조부 : 해원부원군 영의정 문정공 윤두수(海源府院君 領議政 文靖公 尹斗壽, 1533~1601)
  • 시조모 : 목청전 참봉 황대용(穆淸殿 參奉 黃大用)의 딸 정경부인 창원 황씨(貞敬夫人 昌原 黃氏, ?~1591)
    • 시아버지 : 해창부원군 문익공 윤방(海昌府院君 文翼共 尹昉, 1563~1640)
    • 시어머니 : 상의원 판관 한의(尙衣院 判官 韓漪, 1545~1576?)의 딸 정경부인 청주 한씨(貞敬夫人 淸州 韓氏)
      • 부마 : 해숭위 문목공 윤신지(海嵩尉 文穆公 尹新之, 1582~1657)
        • 장남 : 예조참판 윤지(禮曹參判 尹墀, 1600~1644)
        • 자부 : 경기도관찰사 홍명원(京畿道觀察使 洪命元, 1573~1623)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
          • 손녀 : 정경부인 해평 윤씨(貞敬夫人 海平 尹氏, 1617~1689) - 김만기·김만중의 어머니이며, 인경왕후의 조모
          • 손서 : 광산인 생원 증 영의정 광원부원군 충정공 김익겸(生員 贈 領議政 光源府院君 忠正公 金益兼, 1615~1637)
        • 차남 : 이조정랑 윤구(吏曹正郞 尹坵, 1606~1637)
        • 자부 : 영중추부사 김신국(領中樞府事 金藎國, 1572~1657)의 딸 청풍 김씨(淸風 金氏)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출처[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