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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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안동 김씨(舊安東金氏)
관향 경상북도 안동시
시조 김일긍(金日兢) 또는 김숙승(金叔承)
주요 중시조 김방경(金方慶)
주요 인물 김순, 김사렴, 김사형, 김구덕, 김질, 김성동, 김수동, 김공망, 김수, 김시민, 김응하, 김자점, 김구, 김학응, 김재광, 김재익
인구(2000년) 425,264명 (18위)

구 안동 김씨(舊安東金氏)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혹칭 상락 김씨(上洛金氏)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김씨 분관록》과 《증보문헌비고》 및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시조가 김일긍(金日兢)이라 하며, 그는 경순왕 후예로 태사대광(太師大匡)를 역임했다고 한다. 일운 시조의 아버지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한다.

후손 김효인(金孝印)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중서령(中書令)에 추봉되었으며, 그의 아들 김방경(金方慶)은 벼슬이 중찬(中贊)이었으며, 삼별초 난를 평정하여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 '상락공'(上洛公)에 봉해지고 안동(安東)을 식읍으로 받았다. 시호가 충렬공(忠烈公)이며,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었다. 후손들이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은 해동(海東)의 명장으로 고려사(高麗史)를 수(繡)놓았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 대에 크게 융성하여 훌륭한 명신(名臣)을 많이 배출되었는데,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김선(金愃)은 전법판서(典法判書), 둘째 아들 김흔(金忻)은 삼중대광(三重大匡) 상락군(上洛君), 셋째 아들 김순(金恂)은 판삼사사(判三司事) 상락공(上洛公), 넷째 아들 김논(金惀)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을 지냈다. 그리하여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명문(名門) 세도가문(勢道家門)으로 지위를 굳혀왔다.

조선 말기 세도 가문인 신 안동 김씨와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나 시조(始祖)와 연원(淵源)을 달리하는 종중(宗中)이다.

분적[편집]

분적(分籍) 된 성씨로는 수안 김씨(遂安 金氏), 사천 김씨(泗川 金氏), 철원 김씨(鐵原金氏)가 있다.

분파[편집]

  • 파조 김숙영(金叔永) : 경순왕 후손으로 벼슬이 공부시랑(工部侍郎)이었다. (구)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장(金萇) :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으로 벼슬이 장령(掌令)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김희수(金希壽) : 김장의 5세손으로 문과 급제후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이었다.
    • 김홍도(金弘度) : 김희수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전한(典翰)이었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
    • 김첨(金瞻) : 김홍도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校理)였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
    • 김수(金睟) :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였으며, 시호가 소의공(昭懿公)이며,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 파조 김용(金龍) : 벼슬이 방약박사(方藥博士)였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정(金挺) : 벼슬이 지보주사[知甫州事였으며, 일파를 이루었다.[보주(甫州)는 지금의 예천(醴泉)으로, 지보주사는 지금의 예천 군수이다.]
  • 파조 김구정(金九鼎) : 벼슬이 직장(直長)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김광수(金光睟) : 김구정의 현손으로 진사(進士)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파조 김유선(金惟詵) : 벼슬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이생(金理生) : 벼슬이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 후손 김선(金宣)[선(愃)이라고도 쓴다.] : 벼슬이 전법판서(典法判書)이었으며, 수안(遂安)으로 분적(分籍)하였다.

본관[편집]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의 창녕국(昌寧國)이었는데 신라가 친출하여 고타야군(古陀耶郡)을 세우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했다. 고려 태조(太祖)가 백제 견훤(甄萱)과 싸울 때 이 고을 호족인 김선평·김행·장길 등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한 공으로 940년(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영가군(永嘉郡) 또는 길주(吉州)로 개명되었다가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이곳에 피난해 머물렀던 공으로 이듬해에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96년에 경상북도 안동군이 되었다가 1963년에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되었다.

인물[편집]

  • 김흔(金忻) : 김방경의 아들로 벼슬이 도첨의(都僉議)였으며, 시호가 상락공(上洛公)이다.
  • 김순(金恂) : 김방경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영공(文英公)이다.
  • 김승용(金承用) : 김순의 조카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보문각 대제학(大提學)이었다.
  • 김승택(金承澤) : 김승용의 아우로 벼슬이 정승(政丞)이었으며, 시호는 양간공(良簡公)이다.
  • 김구용(金九容) : 김승택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이었으며, 서원(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 김영돈(金永旽) : 김순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정승(左政丞)이었으며, 상락부원군(上洛府院郡)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숙공(文肅公)이다.
  • 김영후(金永煦) : 김순의 아들로 벼슬이 우정승(右政丞)이었고, 상락후(上洛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간공(貞簡公)이다.
  • 김사렴(金士廉) : 김영후의 손자로 벼슬이 안렴사(安廉使)였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사형(金士衡) : 김사렴의 아우로 벼슬이 좌정승(左政丞)이었으며, 공신(功臣)으로서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익원공(翼元公)이다.
  • 김주(金澍) : 김사렴의 7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대사헌(大司憲)이었으며, 공신으로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단공(文端公)이다.
  • 김질(金礩) : 김사형의 증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의정(左議政)이었으며,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
  • 김무(金碔) : 김질의 아우로 벼슬이 판서(判書)였고, 공신으로서 풍양군(豐陽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 김수동(金壽童) : 김질의 조카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영의정(領議政)이었으며, 공신으로서 영가 부원군(永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 김찬(金瓚) : 김질의 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였으며, 시호는 효헌공(孝獻公)이다.
  • 김수경(金壽卿) : 김수동의 아우로 공신으로서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졌다.
  • 김충갑(金忠甲) : 김영돈의 9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보덕(輔德)이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제갑(金悌甲) : 김충갑의 동생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충청감사(忠淸監司)였고, 시호는 문숙공(文肅公)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시민(金時敏) : 김충갑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경상우병마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였으며, 공신으로서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며 충사(忠祠)에 배향되었다.
  • 김시약(金時若) : 김시민의 아우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부사(府使)였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시양(金時讓) : 김시민의 종제(從弟)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였으며, 시호는 충익공(忠翼公)이다. 청백리(淸白吏)에 뽑혔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치(金緻) : 김시민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감사(監司)였으며, 호당(湖堂)에 뽑혔다.
  • 김득신(金得臣) : 김치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다.
  • 김휘(金徽) : 김시양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이조 판서(吏曹判書)였다.
  • 김수령(金壽寧) : 김방경의 8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공신으로서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도공(文悼公)이다.
  • 김응하(金應河) : 김방경의 11세손으로 조선조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선천 군수(宣川郡守)였다. 명(明)나라에서 조칙을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다.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며, 충사(忠祠)에 배향되었다.
  • 김응해(金應海) : 김응하의 아우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어영대장(御營大將)이었다.
  • 김중기(金重器) : 김응하의 증손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훈련 대장(訓鍊大將)이었다.
  • 김세익(金世翊) : 김응해의 손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총융사(摠戎使)였다.
  • 김흡(金潝) : 김세익의 손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어영대장(御營大將)이었다.
  • 김협(金浹) : 김응하의 현손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공신으로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