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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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金陽澤, 1712년 ~ 1777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훈구대신 김국광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정조의 노론 측근이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정조의 신임을 받은 영의정이며, 노론의 핵심 거두였지만, 김하재의 역모 사건으로 관작이 삭탈되었다가 뒤에 정조에 의해 회복된다.

생애[편집]

과거 급제 이후[편집]

과거 급제 후 김양택은 설서, 정언, 수찬, 사서, 부교리, 수찬, 부수찬, 문학, 헌납, 교리, 필선 등 청요직과 대간직, 옥당직을 두루 거쳤고, 한 때 영변부사로 나가서 외직으로 있기도 했다.

당상관 승진 이후[편집]

대사간, 승지, 대사성, 황해도관찰사, 부제학, 충청도관찰사 등을 지내면서 김상로김상복, 이천보, 홍봉한, 한익모, 민백상, 김상철 등과 영조의 노론 측근으로 활동했다.

재상 승진 이후[편집]

이후 대사성, 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우유선, 좌빈객, 이조판서,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병조판서, 수어사, 우참찬, 제조를 거치며, 김상복, 김상철, 한익모, 정존겸, 이사관 등과 정조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맹활약한다.

정승과 영의정 시절[편집]

이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치며, 정조의 노론 측근이 되고 영의정에 오르며 정조를 보호한다. 그러나 김하재의 역모 사건이 터지며 관직이 삭탈당한다.

생애 후반[편집]

그러나 정조는 그의 관직을 회복시켜 영돈녕부사로 삼았고, 이듬해 죽자 정조는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