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15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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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李聖求, 1584년 ~ 1644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分沙)·동사(東沙), 시호는 정숙(貞肅), 본관은 전주.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의 후손이다.
생애
[편집]160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08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가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광해군 초기에 전적, 감찰을 거쳐 예조, 형조, 병조, 호조의 좌랑, 부교리, 헌납, 병조정랑, 교리 등을 역임하고 지평, 장령, 집의 , 정언을 거쳐 수찬과 교리를 역임 중 1614년, 이항복을 옹호하다 파직되고 1614년, 이천현감으로 기용되고 1616년, 영평판관, 포천현감을 겸임했으나 1618년, 이항복이 북청의 유배지에서 죽은 후 송덕비를 세운 것에 대해 또 다시 파직되고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다시 사간으로 기용되고 강화부윤, 부승지, 예조참의를 거쳐 대사간, 병조참지로 승진하고 이어 이조참의로써 왕세자를 전주로 호종하였으며 이어 가선대부로 승진되어 이해 전라감사에 임명되고 그 뒤 대사간, 좌승지, 도승지, 병조참판을 지냈다. 1628년(인조 6) 유효립에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寧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 대사헌, 형조참판, 경기감사를 거쳐 1636년, 형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와 체찰부사를 겸하고 병자호란 때는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한 뒤 우의정, 좌의정을 겸하고 1640년, 영돈녕부사, 1641년, 영의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