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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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한
출생 1722년
조선 한성부
사망 1776년
조선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
거주지 한양
국적 조선
별칭 자는 자는 정여(定汝).
학력 1753년(영조 29년) 문과급제
직업 문신
종교 유교(성리학)
자녀 아들 홍낙윤
부모 아버지 홍현보
친척 형 홍봉한, 사촌형 홍상한, 조카 혜경궁홍씨, 조카사위 사도세자, 외종손 정조, 외종손 의소세손, 8촌형 홍창한, 9촌조카 홍낙춘, 10촌 종손 홍국영

홍인한(洪麟漢, 1722년~1776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정여(定汝), 본관은 풍산(豊山). 예조판서 홍현보의 아들. 영의정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1775년 이후 세손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하였으며 1776년 조선 정조 즉위 후 처형되었다. 홍국영의 일족이기도 하다. 1855년(철종 6) 철종이 그를 복권하였으나 여러 차례 반대로 취소되었다가 다시 1858년(철종 9) 복권되었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선조의 6대손이자,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5대손이다.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작은 아버지(숙부)이며, 1753년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나아갔다. 조선의 대표적 명문 가문인 풍산 홍씨 가문의 일원이며, 혜경궁 홍씨의 친정 숙부라는 점도 작용해 영조의 신임을 받으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53년 가주서와 정언을 지내고 1754년 교리로 있을 때 조영순(趙榮順)을 변호하려다 파직되었다.

55년 헌납을 거쳐 당상관으로 특진하여 1757년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남안집사(湖南安集使)로 순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임오화변 이후[편집]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반대해 영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이후 정후겸, 심상운 등과 함께 홍국영 등을 모해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1776년 음력 3월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자, 숙청에 들어갔으며, 홍인한은 서명선의 탄핵을 받은 뒤 정후겸, 문성국, 김귀주 등과 함께 여러번 탄핵을 당한 뒤 충청도 여산(礪山)에 유배되었다가 배소가 옮겨져 고금도에 유배되었다가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처형됐다.

사후[편집]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거절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순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후에 철종 때인 1855년(철종 6) 철종이 그를 복직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홍문관과 양사의 반대를 받았다. 결국 여러차례 반대로 철종은 홍인한 복권 명령을 취소하였지만 1858년(철종 9) 10월 25일 복권되었다.

가계[편집]

  • 할아버지 : 홍중기(洪重箕)
    • 아버지 : 홍현보(洪鉉輔, 1680 ∼ 1740)
    • 어머니 : 풍천임씨 - 임방의 딸
      • 이복 형 : 홍봉한(洪鳳漢, 1713 ~ 1778)
    • 생모 : 성주이씨 - 이세황의 딸
      • 부인 : 평산부부인 신씨 - 신방의 딸
        • 장남 : 홍낙원(洪樂源)
          • 손자 : 홍경모(洪敬謨)
        • 차남 : 홍낙술(洪樂述)
        • 삼남 : 홍낙진(洪樂進)
        • 사남 : 홍낙손(洪樂遜)
        • 오남 : 홍낙준(洪樂浚)
      • 여동생 : 풍산홍씨

홍인한을 연기한 배우[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2007)
  • 이금희, 한중록 (상, 하) (국학자료원, 2006)
  •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