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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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메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조만영의 초상화(이한철의 작품)

조만영(趙萬永, 1776년 ~ 1846년)은 조선 후기의 정치가·문신서예가이다. 자는 윤경(胤卿), 호는 석애(石崖), 시호는 충경(忠敬), 본관풍양(豊壤)이며, 조진관(趙鎭寬)의 아들이다. 종묘순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생애[편집]

1813년(순조 13년) 능원郞)의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된 뒤, 지평(持平)·사간원정언, 겸문학 등을 역임하고, 1816년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갔다.[1] 1819년 부사직으로 있을 때 딸이 세자빈(世子嬪 : 순조의 장남인 추존왕 익종비)으로 간택되자,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그 일파인 풍양 조씨가 정계에 등장하자, 그 중추적 인물로서 안동 김씨와 세도를 다투게 되었다.

이듬해 행 이조 참의가 되고 1821년 금위대장(禁衛大將)[2], 이어 이조·호조·예조·형조의 판서와 한성부 판윤[3], 판의금부사 등 요직을 역임, 1845년 궤장(机杖)을 하사받고[4]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追增)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조부 : 조엄(趙曮)
    • 아버지 : 조진관(趙鎭寬)
      • 아우 : 조원영(趙原永) - 숙부 조진의(趙鎭宜)의 양자가 됨
      • 아우 : 조인영(趙寅永)
  • 장자 : 조병귀(趙秉龜)
    • 양손자 : 조성하(趙成夏) - 아우 조원영의 아들인 조병준(趙秉駿)의 차자
  • 차자 : 조병기(趙秉夔) - 아우 조인영의 양자가 됨
  • 장녀 : 신정왕후 - 문조의 비, 헌종의 어머니
  • 차녀 : 전주 이씨 이인설(李寅卨)의 처
  • 삼녀 : 기계 유씨 유치선(兪致善)의 처
  • 사녀 : 광산 김씨 김석현(金奭鉉)의 처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순조 19권, 16년(1816 병자 / 청 가경(嘉慶) 21년) 6월 10일(무오) 1번째기사
  2. 《조선왕조실록》 순조 23권, 21년(1821 신사 / 청 도광(道光) 1년) 1월 20일(임신)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 순조 30권, 28년(1828 무자 / 청 도광(道光) 8년) 3월 5일(갑진)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헌종 12권, 11년(1845 을사 / 청 도광(道光) 25년) 3월 19일(경진) 1번째기사

함께 보기[편집]

전임
김조순
조선의 상급 국상
1831년 1월 18일 ~ 1838년 3월 19일
후임
조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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