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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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
출생1369년 5월 17일
사망1439년 12월 28일(1439-12-28)(70세)
성별남성
본관하양(河陽)
학력1390년(고려 공양왕 2) 식년문과에 급제
종교유교(성리학)
부모아버지 허귀룡(許貴龍)
어머니 이씨 부인(李氏 夫人)
형제형 허주(許周)

허조(許稠, 1369년 5월 17일(음력 4월 11일) ~ 1440년 2월 1일(음력 1439년 12월 28일))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菴),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어질고 강직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척추장애인이었다고 한다.

생애[편집]

1369년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허귀룡(許貴龍)과 이씨 부인 내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권근에게 학문을 배웠고, 1383년(우왕9년) 진사시, 1385년(우왕 11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390년(공양왕 2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전의시승(典儀寺丞)이 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정도전에 의하여 간천(間薦, 간접 추천)되어, 태조에게 중용되고 태조 시대 초에도 성균관 강독관 직에 임직되었고 그 후 진급하면서 세종 때까지 조선국 문관 관직을 지냈다. 태종이 즉위하자 사헌부잡단(司憲府雜端)으로 발탁되었으나, 강직한 발언으로 왕의 뜻을 거스르면서 완산판관으로 좌천 조치되기도 하였다.

세종 때에는 세 번이나 이조판서 직위를 지냈는데 이 시절, 죄인의 자식도 만일 죄가 없으면 연좌 관련 처벌치 않도록 하는 규법을 만들었다. 그 후 예조판서, 1438년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1439년 좌의정을 지냈다.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문경(文敬)이라는 시호 두 글자가 의미하기를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낮이나 밤이나 경계(警戒)하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

묘소[편집]

《허조 묘역》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이천리에 있다. 2013년 8월 28일을 기하여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업적[편집]

조선 초기 예악제도를 정비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청백리로 명망이 있었다. 1397년 전적이 되어 석전(釋奠)의 의식을 개정했고, 1422년《신속육전》(新續六典) 편수에 참가했다.

연관 인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