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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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 안씨(順興 安氏)
관향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시조 안자미(安子美)
주요 집성촌 경상북도 예천군, 울진군, 상주시
경상남도 함안군, 진주시
전라북도 남원시, 순창군
전라남도 곡성군
황해도 연백군
평안남도 안주군
주요 인물 안향, 안우기, 안축, 안보, 안문개, 안종원, 안천보, 안원, 안경공, 안순, 안숭선, 안지귀, 안침, 안당, 안처순, 안현, 안자유, 안위, 안창호, 안중근, 안익태, 안동준, 안갑준, 안찬희, 안응모, 안상수, 안경률, 안홍준, 안성기, 안종범, 안철수, 안희정, 안재욱
인구(2015년) 520,384명
순흥안씨 대종회

순흥 안씨(順興 安氏)는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순흥 안씨의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1197년~1204년)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고, 순흥현(順興縣)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여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안자미에게는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이 있었다. 안영유의 손자 안향(珦)은 1260년(고려 원종 1년) 문과에 급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역임했는데 중국에서 쓰는 서적을 도입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의 진흥에 힘썼다. 안향이 크게 현달하여 생활 근거지가 개성으로 나뉘어 살게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생활근거지가 파주 금촌으로 옮겨졌는데, 여러 사화를 겪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종가는 서울 도동에 있다가 다시 황해도 연백군으로 옮겨졌다. 특히 관향지 순흥에 살던 종족들은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분파[편집]

시조 안자미의 세 아들 영유의 후손에 14개파, 영린의 후손에 4개파, 영화의 후손에 4개파가 있다.

인물[편집]

  • 안향(安珦, 1243년 ~ 1306년) :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과 감찰어사(監察御史), 상주판관(尙州判官)을 비롯한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충령왕 복위 때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가 되어 <섬학전(贍學錢)>을 설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유학(儒學)의 학풍을 일으켰다.
  • 안우기(安于器, 1265년 ~ 1329년) : 검교찬성사(檢校贊成事)
  • 안축(安軸, 1287년 ~ 1348년)
  • 안보(安輔, 1302년 ~ 1357년)
  • 안문개(安文凱, ? ∼ 1338년) : 첨의참리(僉議參理)를 지내고, 1327년(충숙왕 14)에는 왕이 원나라에 있었을 때 충절을 바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순흥부원군(順興府院君)의 호를 받았다.
  • 안종원(安宗源, 1325년 ~ 1394년)
  • 안천보(安天保, 1339년 ~ 1425년)
  • 안원(安瑗, 1346년 ~ 1411년)
  • 안경공(安景恭, 1347년 ~ 1421년)
  • 안순(安純, 1371년 ~ 1440년)
  • 안숭선(安崇善, 1392년 ~ 1452년)
  • 안침(安琛, 1445년 ~ 1515년)
  • 안당(安塘, 1461년 ~ 1521년)
  • 안처순(安處順, 1492년 ~ 1534년)
  • 안현(安玹, 1501년 ~ 1560년)
  • 안자유(安自裕, 1517년 ~ 1588년)
  • 안위(安衛, 1563년 ~ ? ) : 명량해전 출전
  • 안창호(安昌浩, 1878년 ~ 1938년) : 독립협회(獨立協會), 신민회(新民會), 흥사단(興士團)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 안중근(安重根, 1879년 ~ 1910년) :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쓰고 의병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하얼빈에서 전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 안익태(安益泰, 1906년 ~ 1965년) : 애국가 작곡
  • 안동준
  • 안갑준
  • 안응모(安應模, 1930년 ~ )
  • 안찬희
  • 안상수
  • 안경률
  • 안홍준
  • 안성기 : 배우
  • 안종범
  • 안철수 : 국민의당 대표
  • 안희정 : 충청남도지사 (양공공파 29세손)

항렬표[편집]

  • 1파(중시조로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