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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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은 한국의 성씨이다.

(安)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85,63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7위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죽산(竹山)·광주(廣州)·탐진(耽津)·안산(安山)·안동(安東)·수원(水原)·평안(平安)·순천(順川)·공산(公山)·태원(太原) 등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이 중에서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본관은 10본이다. 순흥·죽산·광주·탐진의 4본이 대본이며, 순흥 안씨가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광주 안씨[편집]

광주 안씨(廣州安氏)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때 광주의 향리(鄕吏)로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이후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토성분정(土姓分定)에 의해 안(安)씨로 스스로 갖게 되었다. 2015년 인구는 48,033명이다.

순흥 안씨[편집]

순흥 안씨(順興安氏)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 護軍)에 추봉되었다.[1] 안자미의 증손 안향(安珦)이 충렬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올랐다. 2015년 인구는 520,384명이다.

죽산 안씨[편집]

죽산 안씨(竹山安氏)는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있다. 안영의(安令儀)의 증손 안전(安戩)이 고려 충렬왕 때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지냈다. 2015년 인구는 77,026명이다.

신 죽산 안씨(新竹山安氏)의 시조 안원형(安元衡)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후손으로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안방준(安邦俊)이 있다.

탐진 안씨[편집]

탐진 안씨(耽津安氏) 시조 안우(安祐)는 고려 공민왕 때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올랐다.[2] 2015년 인구는 강진 안씨 15,585명, 탐진 안씨 10,513명으로 총 26,098명이다.

안산 안씨[편집]

안산 안씨(安山安氏) 시조 안자유(安子由)는 왕이 원나라에 갈 때 시종한 공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 3) 2등공신이 되었고, 1347년(충목왕 3)에는 첨의참리(僉議參理)로서 태묘(太廟)에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안탄대(安坦大)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507년(중종 2) 안탄대의 딸이 9세의 나이로 궁녀에 뽑혀 입궐하였다가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昌嬪安氏)가 되었고, 외손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이 선조(宣祖)로 즉위하였다.

2015년 안산 안씨 인구는 179명이다.

기타 본관[편집]

  • 공산 안씨(公山安氏) 시조 안익(安翊)은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678명이다.
  • 제천 안씨(堤川安氏) 시조 안적재(安迪材)는 고려시대 평리(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252명이다.
  • 주천 안씨(酒泉安氏) 시조 안정방(安挺方)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308명이다.
  • 태원 안씨(太原安氏) 시조 안만세(安萬世)는 원나라 전서를 지냈다. 노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같이 와서 정착하여 공민왕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2015년 인구는 1,637명이다.
  • 지곡 안씨(池谷安氏)로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있다. 현재 인구는 집계되지 않는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