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빈 안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선빈 안씨
善嬪 安氏
지위
조선 태종의 후궁
이름
별호 숙선옹주(淑善翁主)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1468년 6월 17일 (음력)
부친 안의(安義)
배우자 태종
자녀 2남 2녀
혜령군, 익녕군, 경신옹주, 숙안옹주

선빈 안씨(善嬪 安氏, ? ~ 1468년 6월 17일) 또는 숙선옹주(淑善翁主)는 조선 태종의 후궁이다.

생애[편집]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검교 한성윤(檢校 漢城尹) 안의(安義)의 딸로 궁인으로 입궁하였다가 태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1421년(세종 3년)에 숙선옹주(淑善翁主)에 봉해지고 그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직을 제수받았다.[1]

1430년(세종 12년) 영평군(鈴平君) 윤계동(尹季童)과 집터 문제를 가지고 다투어 송사하였다.[2]

1468년(세조 14년) 5월, 딸인 경신옹주와 노비와 전답의 재산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여, 선빈 안씨는 상서를 올려 딸의 불효를 호소하였다.[3] 의금부에서 관련 있는 자들을 국문하였는데, 이 송사로 경신옹주는 녹봉을 빼앗기고 노비와 전답의 일부를 어머니 숙선옹주에게 반환하였으며, 경신옹주의 아들 이효충은 직첩을 거두고 외방으로 쫓겨났다.[4]

선빈 안씨는 돌려받은 노비와 토지의 일부를 며느리인 익녕군의 아내 박씨와, 본인의 외손자이자 숙안옹주의 아들인 황호, 황징 형제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선빈 안씨와 경신옹주 모녀의 다툼에 익녕군의 처 박씨와 황호, 황징 형제가 의기 투합하여 임종이 가까운 선빈 안씨를 조종하였으나, 후에 황호, 황징 형제가 이를 뉘우쳤다고 기록하고 있다.[4] 이들 모녀의 송사는 예종, 성종 대에도 회자되었으며 예종은 경신옹주에게 녹봉을 되돌려 주었다.

1468년 6월 17일 사망하였다. 1872년(고종 9년), 정1품 선빈(善嬪)으로 추증되었다.

사후[편집]

숙선옹주(선빈)안씨 묘서울특별시 중랑구 봉화산 기슭에 있다. 『경국대전』 반포 이전 후궁에게도 '옹주'의 용어가 사용된 사실을 알려주는 실물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조선 세조때 예장된 묘제 석물(묘비, 상석, 장명등, 문석인 1쌍, 산신제석)이 잘 남아있어 2019년 6월 7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안의(安義, 생몰년 미상)
  • 어머니 : 미상
  • 남편 : 태종(太宗, 1367 ~ 1422)
    • 장남 : 혜령군 이정(惠寧君 李𥘺, 1407 ~ 1440)
      • 며느리 : 낙안군부인 무송 윤씨(樂安郡夫人 茂松 尹氏, 1405 ~ 1442)[5]
        • 손자 : 예천군 소효공 이수 (醴泉君 昭孝公 李洙, 1422 ~ 1455)
    • 차남 : 익녕군 이치(益寧君 李袳, 1422 ~ 1464)
      • 며느리 : 군부인 운봉 박씨(郡夫人 雲峰 朴氏, 생몰년 미상)[6]
      • 며느리 : 군부인 평양 조씨(郡夫人 平壤 趙氏, 생몰년 미상)
        • 손자 : 의천군 이승은(義泉君 李承恩, 생몰년 미상)
    • 장녀 : 경신옹주(敬愼翁主, 생몰년 미상)
      • 사위 : 전의위 이완(全義尉 李梡, ? ~ 1455)
    • 차녀 : 숙안옹주(淑安翁主, ? ~ 1464)
      • 사위 : 회천군 황유(懷川君 黃裕, 1421 ~ 1450)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1.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년) 5월 11일(임신)
  2. 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1430년) 10월 10일(정축)
  3. 세조실록》 46권, 세조 14년(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5월 16일(을해)
    숙선옹주가 노비 분배 문제로 인한 경신옹주와의 송사의 빠른 해결을 요구하다
  4. 세조실록》 46권, 세조 14년(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6월 14일(임인)
    경신옹주의 녹봉을 빼앗고 이효충의 고신을 거두어 외방으로 보내다
  5. 사직(司直) 증찬성(贈贊成) 윤변의 딸.
  6. 절제사 증 찬성 박종지(節制使 贈 贊成 朴從智)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