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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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김씨
별칭
별호 소의 김씨 (昭儀 金氏)
귀인 김씨 (貴人 金氏)
신상정보
출생일 1406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464년 음력 9월 4일
사망지 조선
매장지 신빈 김씨 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왕조 조선
부친 김원 (金元)
모친 삭녕 고씨
배우자 조선 세종
자녀 6남 2녀

신빈 김씨(愼嬪 金氏, 1406년 ~ 1464년 음력 9월 4일)는 조선의 제4대 세종후궁이다.

생애[편집]

본관은 청주이며, 아버지는 김원이고 어머니는 삭녕 고씨이다[1].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다.[2] 훗날 세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고, 1427년(세종 9년) 장남 계양군을 출산하였다. 그 후 정2품 소의를 거쳐 1439년(세종 21년) 종1품 귀인에 진봉되었다. 당시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김씨의 출신이 천하지만 13세부터 궁중에 들어와 행실이 바르기에 빈이나 귀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떠하냐" 고 묻자 김돈이 신개 등과 의논해 귀인으로 승격시켰다.[2] 이후 정1품 신빈(愼嬪)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2] 또한 그녀는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망한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조정에서 쌀 500석을 하사받았으며,[3]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단종이 그녀의 아들 의창군의 청원에 의해 그녀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4]

1464년(세조 10년) 음력 9월 4일 5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세조는 쌀, 콩등 모두 70석(石)을 부의로 내렸다. 그녀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있으며, 1994년 경기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김원(金元)
  • 어머니 : 삭녕 고씨
  • 시아버지 : 제3대 태종(太宗, 1367~1422, 재위:1400~1418)
  • 시어머니 : 원경왕후(元敬王后, 1365~1420)
    • 남편 :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
      • 1남 : 계양군 증(桂陽君 璔, 1427~1464)
      • 2남 : 의창군 공(義昌君 玒, 1428~1460)
      • 3남 : 밀성군 침(密城君 琛, 1430~1479)
      • 4남 : 익현군 연(翼峴君 璭, 1431~1463)
      • 5남 : 영해군 당(寧海君 瑭, 1435~1477)
      • 6남 : 담양군 거(潭陽君 璖, 1439~1450)
      • 그 외에 딸이 2명 있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2]

신빈 김씨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황인규, 논문 《조선전기 후궁의 비구니 출가와 불교신행》, 2011, 2016-11-29 확인
  2. 《조선왕조실록》 세종 84권, 세종21(1439) 1월 27일 2번째 기사
  3. 《조선왕조실록》 문종 1권, 문종 즉위년(1450) 3월 16일 2번째 기사
  4. 《조선왕조실록》 단종 3권, 단종 즉위년(1452) 9월 12일 1번째 기사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