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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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
明聖王后
지위
세자빈
재위 1651년 ~ 1659년
전임 빈궁장씨(인선왕후)
후임 빈궁김씨(인경왕후)
왕비
재위 1659년 ~ 1674년
전임 인선왕후
후임 인경왕후
왕대비
재위 1674년 ~ 1683년
전임 효숙왕대비(인선왕후)
후임 혜순왕대비(인원왕후)
이름
별호 왕세자빈, 현렬왕대비
존호 현렬(顯烈)
휘호 희인정헌문덕(禧仁貞獻文德)
시호 명성(明聖)
전호 영모전(永慕殿)
신상정보
출생일 인조 20년(1642) 5월 17일
출생지 장통방(長通坊) 사저
사망일 숙종 9년(1683) 12월 5일
사망지 창덕궁 저승전(儲承殿)
능묘 숭릉
배우자 현종
자녀 숙종
명선공주
명혜공주
명안공주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년 6월 13일(음력 5월 17일) ~ 1684년 1월 21일 (1683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의 제18대 국왕인 현종의 정비(正妃)이자 숙종의 어머니이다. 숙종과 명선·명혜·명안 3공주를 낳았다.

본관은 청풍(淸風). 정식시호현렬희인정헌문덕명성왕후(顯烈禧仁貞獻文德明聖王后)이며 현렬왕대비(顯烈王大妃)로 불리기도 한다.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과 덕은부부인(德恩府夫人) 송씨(宋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지능이 비상하고 총명하였으나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 남편 현종이 후궁을 한 명도 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생애[편집]

1642년 6월 13일(음력 5월 17일) 김우명의 딸로 태어났다.

홍수의 변[편집]

1651년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하고 아들인 숙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다. 왕대비에 오른 뒤 조정의 일에 자주 간섭하여 남인들의 비난을 샀으며, '삼복(三福)'이라 불리며 효종과 현종의 총애를 받던 인평대군의 세 아들 복창군(福昌君)과 복선군(福善君), 복평군(福平君)이 숙종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여, 그들이 국왕의 총애를 믿고 궁중에 빈번히 출입하여 궁인들을 희롱하고, 인선왕후의 상중에 궁녀들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고 모함하여 죽이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홍수(紅袖)의 변’이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무고로 판명되었고, 오히려 사건을 꾸민 명성왕후의 아버지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이 무고죄로 몰려 반좌율 즉, 무고죄를 무고한 내용에 기준하여 처벌하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자 명성왕후는 왕이 집무를 보는 편전으로 나아가 대성통곡을 하며 인평대군의 세 아들들이 궁녀들과 불륜을 맺은 것은 진실이라며 아들 숙종을 다그쳤다. 결국 숙종은 그들 세 형제를 귀향(歸鄕) 보냈으나 남인들은 명성왕후를 조선 중기 중종의 계비로서 권력을 휘두른 문정왕후에 빗대어 “문정왕후를 다시 보겠다” 라고 비아냥거리며 명성왕후의 정치간섭을 비난하였다.[1] 급기야 이 사건으로 큰 망신을 당한 명성왕후의 아버지 청풍부원군 김우명은 두문불출하다 1675년, 홧병으로 사망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서인과 남인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죽음[편집]

그 뒤에도 대왕대비자의대비전의 궁녀 출신으로 숙종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던 희빈 장씨(禧嬪 張氏)를 출신이 천하고 무식하며 성품이 극악하다는 이유를 들어 궁밖으로 내쫓았다고 전한다. 최근에는 명성왕후가 그녀를 내쫓은 진짜 이유가 희빈 장씨남인에 의해 입궁된 간자로 보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2]

1683년에는 아들 숙종이 기질(奇疾)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평소 무속 신앙을 신봉했던 그녀는 숙종의 무사쾌유를 기원하는 굿을 하였는데 무당이 '현왕(現王, 숙종)에게 삼재(三災)가 있어 기질을 앓고 있는 것이니 현왕의 쾌유를 위해서는 왕의 어머니(명성왕후)가 삿갓을 쓰고 홑치마만 입은 채 물벌을 서야 한다'고 계시를 내리자 명성왕후는 무당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들여 혹독한 겨울 날씨에 삿갓을 쓰고 홑치마만 입은 채 물벼락을 맞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지독한 독감을 얻어 그해 1월 21일(음력 12월 5일)에 창경궁 저승전(儲承殿)에서 훙서(薨逝)했다. 그녀의 사후에 그녀의 무녀가 평소 옥교를 타고 궁에 예사로이 출입을 한 사실[3] 이 비판되었고, 무녀의 계시로 그녀가 사망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처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지만 숙종은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종결하였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현종과 합장되어 있는 숭릉(崇陵)이다.

가족 관계[편집]

 조선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明聖王后 金氏
출생 사망
1642년 6월 13일 (음력 5월 17일)
조선 조선 한성부 장통방 사저
1684년 1월 21일 (1683년 음력 12월 5일) (41세)
조선 조선 한성부 창경궁 저승전
명성왕후의 한글 어필


부모[편집]

본관 생몰년 부모 비고
청풍부원군 淸風府院君
김우명 金佑明
청풍 1619년 - 1675년 김육 金堉
파평 윤씨 坡平 尹氏
덕은부부인 德恩府夫人
송씨 宋氏
은진 1621년 - 1660년 송국택 宋國澤
진주 강씨 晋州 姜氏


배우자[편집]

 조선 제18대 국왕   현종 顯宗  출생 사망
1641년 3월 14일 (음력 2월 4일)
청나라 청나라 심양 심관
1674년 9월 17일 (음력 8월 18일) (33세)
조선 조선 한성부 창덕궁 재려


자녀[편집]

작호 이름 생몰년 배우자 비고
-   공주[4] 1658년 - 1658년      미혼
장녀 명선공주 明善公主 1659년 - 1673년
장남 숙종대왕 肅宗大王 순 焞 1661년 - 1720년 인경왕후 김씨 仁敬王后 金氏
인현왕후 민씨 仁顯王后 閔氏
인원왕후 김씨 仁元王后 金氏
 제19대 국왕 
차녀 명혜공주 明惠公主 1662년 - 1673년      미혼
삼녀 명안공주 明安公主 온희 溫姬[5] 1665년 - 1687년 해창위 海昌尉 오태주 吳泰周


손자녀[편집]

명선공주 숙종대왕 명혜공주 명안공주
- 경종대왕 景宗大王
영조대왕 英祖大王
 연령군 延齡君 
- 오원 吳瑗


명성왕후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영화[편집]

각주[편집]

  1. 《여인열전》2부:냉혹한 승부사들-장희빈/이덕일 지음/김영사 p.101-102
  2. 《여인열전》2부:냉혹한 승부사들-장희빈/이덕일 지음/김영사 p.101
  3. 옥교를 탈 수 있는 것은 당상관의 어머니과 아내, 며느리 뿐이다. 희빈 장씨의 생모는 당하관의 처로서 옥교를 타고 궁에 입궁하였다고 하여 왕명을 상징하는 동패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옥교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폭행을 당했다.
  4. 승정원일기》 효종 9년(1658년) 4월 28일과 6월 3일 기록에는 세자빈이 낳은 군주아기씨(郡主阿只氏)의 출생과 사망에 따른 상사를 전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 《명안공주 작명단자》보물 제1220호
전임
인선왕후
조선 역대 왕후
1659년 ~ 1674년
후임
인경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