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 박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수빈 박씨(유빈 박씨)
수빈, 수비, 유빈, 유비, 가순궁
별명 수빈(綏嬪, 1787~사후)
현목수비(顯穆綏妃, 대한제국 추증)
배우자 정조
자녀 1남 1녀
순조
숙선옹주
왕조 조선
부친 좌찬성 박준원
모친 증 정경부인 원주 원씨
출생 영조46년(1770년) 5월 8일
사망 순조22년(1822년) 12월 26일
능묘 휘경원(徽慶園)

수빈 박씨 또는 유빈 박씨[1](綏嬪 朴氏, 1770년~1822년 12월 26일)는 조선의 제 22대 왕 정조의 마지막 간택후궁이며, 제 23대 왕 순조의 생모이다. 삼간택과 가례의 절차를 거쳐 처음부터 빈으로 입궁한 마지막 간택후궁이며 네 번째 후궁이다. 평상시 예절이 바르고 궁중 어른들을 잘 모셨으며 아침저녁 문안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아랫사람에겐 인자하면서도 위엄있게 이끌었고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애[편집]

출생과 가계[편집]

본관은 반남(潘南), 좌찬성 박준원의 딸이다. 훗날 왕에 등극하는 순조의 외가이므로 세도가였다.

후궁 간택[편집]

1786년(정조10년) 정조는 35세로 나이가 있었는데. 5월과 9월에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와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가 임신 만삭에 졸하였고, 정조의 정궁 효의왕후와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에게는 모두 소생이 없었다.

그래서 후사를 매우 걱정하며 1787년(정조 11년) 명문가 규수를 간택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책봉된 간택후궁이 수빈 박씨이다. 참고로 수빈 박씨는 간택 때 차점을 차지하였다가 삼간 때에 드디어 명원으로 뽑혔다고 한다.

후궁 시절[편집]

1787년(정조 11년) 2월 11일 18세의 나이에 책봉되어 수빈(綏嬪)이라는 빈호와 가순궁(嘉順宮)이라는 궁호를 받았고, 다음 날 2월 12일 가례를 치렀다.

1790년(정조 14년) 정조의 차남 원자(순조)를 낳았고, 원자를 낳은 후에도 왕비인 효의왕후를 신중히 섬겨 궁중에서 모두 어질다고 칭송하였다.

1793년(정조 17년) 정조의 차녀 숙선옹주를 낳았다.

1800년(정조 24년) 1월 원자(순조)가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정조 사후[편집]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고, 같은 해인 7월에 아들 순조가 보위에 오르고 나서도 대왕대비 김씨혜경궁 홍씨왕대비 김씨를 모시며 각근히 봉양하며 문안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망[편집]

1822년(순조 22년)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향년 53세에 졸하다. 원호는 휘경(徽慶). 시호는 현목(顯穆)을 받아 현목수빈(顯穆綏嬪). 시호 현목의 뜻은 '행실이 중외에 드러남'을 현이라 하고, '덕을 베풀고 의로움을 간직함'을 목이라 한다.

1823년(순조 23년) 신위를 봉안하고 현사궁(顯思宮)으로 불렀다가, 1824년(순조 24년) 신위를 옮겨 경우궁(景祐宮)이 되었고, 이후 신위는 궁정동 칠궁에 있다.

1823년(순조 23년) 순조실록에 순조가 자궁께서 평소 사후의 일을 생각해 별도로 두신 은자를 호조에 내어주다라는 기록이 있다.

하교하기를,

"자궁(慈宮)께서 평소 사후(死後)의 일을 생각하여 별도로 두신 은자(銀子) 1만 6천 냥이 있기에 지금 호조에 내어주니, 잘 헤아려서 원소(園所)의 역사와 후일 별묘(別廟)를 지을 때에 보태서 쓰도록 하라."

하였다.

— 《순조실록》 1823년(순조 23년) 1월 27일

대한제국이 개창된 후 고종이 정조를 황제로 추존함에 따라 수빈 박씨도 수비(綏妃)로 추존되어 1901년(고종 38년) 현목수비(顯穆綏妃)가 되었다. 다음 해 1902년(고종 39년)에 특진관 이주영 등이 그녀를 황후로 추존을 청하였으나, 고종에 의해 거절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본가 (반남 박씨 : 潘南 朴氏)

  • 큰아버지 : 박윤원[2]
  • 큰어머니 : 신 안동 김씨
  • 아버지 : 박준원(朴準源, 1739~1807)
  • 어머니 : 원주 원씨[3](原州元氏, 1740~1783) - 인조반정 공신 원두표의 자손. 정순왕후와 친척관계이다.
    • 오빠 : 박종보(1760~1808)
    • 오빠 : 박종경(1765~1817) - 형조판서[4]
    • 언니 : 평산인 신광회(申光晦)에게 출가.
    • 언니 : 전주인 이요헌(李堯憲)에게 출가.
    • 여동생 : 풍산인 홍욱주(洪郁周)에게 출가.
    • 여동생 : 전주인 류첨(柳詹)에게 출가.
    • 남동생 : 박종익(朴宗翊, 1773~1791)
    • 남동생 : 박종희(朴宗喜, 1775~1849)
  • 서어머니 : ?
    • 이복남동생 : 박종염(朴宗琰, 1797~1857)
    • 이복남동생 : 박종영(朴宗永, 1804~?)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남편 : 제22대 정조(正祖大王, 1752~1800)
    • 아들 : 제23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 1790~1834)
    • 며느리 : 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1789~1857)
      • 손자 :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5]
        • 증손자 : 헌종(憲宗, 1827~1849)[6]
    • 딸 :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
    • 사위 : 영명위 홍현주(洪顯主, 1793~1865) -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 홍낙성의 손자
      • 손자 : 홍우철
        • 증손자 : 홍승억[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유빈 박씨 진향문 한글본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수빈 박씨의 어머니와 정순왕후의 어머니는 둘 다 원주 원씨로 친척 관계이다. 또한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의 부인이 반남 박씨로 수빈 박씨와 친척 관계이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요절하였다.
  6. 헌종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대가 끊기게 되었다.
  7. 대가 끊어져 홍명희가 제사를 받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