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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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왕후
端敬王后
Seal of Queen Dangyeong.jpg
지위
조선 중종의 왕비
재위 1506년 9월 2일 ~ 9월 9일 (음력)
전임 폐비 신씨
후임 장경왕후 윤씨
이름
이칭 신비(慎妃) · 폐비(廢妃) · 폐비 신씨(廢妃 慎氏)
휘호 공소순열(恭昭順烈)
시호 단경(端敬)
신상정보
출생일 1487년 1월 14일(1487-01-14) (음력)
사망일 1557년 12월 7일(1557-12-07) (70세) (음력)
가문 거창 신씨
부친 익창부원군 신수근
모친 청원부부인 한은광
배우자 중종
자녀 없음
능묘 온릉(溫陵)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13-2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慎氏, 1487년 2월 7일 (음력 1월 14일)~1557년 12월 27일(음력 12월 7일))는 조선 중종의 정비(正妃)이다.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제일 짧은 7일의 재위 기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종반정 직후 역적의 딸로 연좌되어 폐출된 후 230여년 후인 영조 대에 부모와 함께 복권되었다.[1]

생애[편집]

탄생과 가계[편집]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1487년(성종 18년) 1월 14일, 아버지 신수근(愼守勤)과 어머니 한은광(韓銀光)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태종의 현손들로, 조모인 중모현주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딸이자,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의 어머니이다. 외조모인 정부인 김씨는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의 외손녀이다.

외조부인 한충인은 인수대비의 사촌 오빠이기도 하다.

1499년(연산군 5년) 13살의 나이에 당시 진성대군에 봉해져 있던 중종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이 되었다. 단경왕후와 중종은 태종과 한영정을 공통 조상으로 한다.

       ┌───→ 세조 덕종 성종 중종
     ┌─→ 세종
     태종             └───→    임영대군    중모현주 신수근
   단경왕후   
     └─→    경정공주    조씨부인    김씨부인       청원부부인   
     ┌─→ 한확    인수대비    성종 중종
   한영정   
     └─→    한전    한충인    청원부부인       단경왕후   

왕비 책봉과 폐위[편집]

1506년(중종 1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성공하면서 남편 진성대군(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인 데다가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관계로, 반정 세력들에 의해 왕비가 된지 1주일만인 9월 9일 폐위되었다.[2] 당시 중종은 어떻게 조강지처를 버릴 수 있냐며 주저하였지만, 반정 공신들의 압박에 이기지 못해 신씨를 폐출하였다.[2]

—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9월 9일 (을유)

신씨의 폐출 이후 새롭게 중종의 왕비가 된 장경왕후1515년(중종 10년) 사망하자, 담양 부사 등이 신씨의 복위를 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3] 하지만 복위를 반대하는 중신들에 의해 무산되었다. 훗날 단경왕후의 복위를 간한 사람들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중종은 높은 산에 올라 그녀가 거처하고 있던 사가를 바라보는 일이 많았고, 그 사실을 안 그녀의 사가에서도 중종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그녀가 자주 입던 붉은 치마를 펼쳐놓았다는 야사가 전해져 온다.

1544년(중종 39년), 중종의 임종 직전에, 중종이 신씨를 그리워하여 궁궐 내에 들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4]

1545년(인종 1년), 인종은 신씨가 거처하는 곳에 폐비궁(廢妃宮)이라는 이름을 주고 생활에 보조를 하기 시작했다.[5]

— 《인종실록》 2권,
인종 1년(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4월 6일 (무술)

사망[편집]

1557년(명종 12년) 12월 7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명종은 신씨의 장례를 왕비의 부모의 예(例)에 따라 이등례(二等禮)로 초상을 치렀다.

— 《명종실록》 23권,
명종 12년(1557년 명 가정(嘉靖) 36년) 12월 7일 (병술)

사후 복권[편집]

사후 230여년 후인 1739년(영조 15년) 3월 28일, 김태남 등의 건의로 왕후로 추숭되면서 단경(端敬)이라는 시호와 함께 공소순열(恭昭順烈)의 존호를 받았다.[1] 이때 아버지 신수근은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으로, 전어머니 권씨는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으로, 친어머니 한은광은 청원부부인(淸原府夫人)으로 추증되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위치한 온릉(溫陵)이다.

가족 관계[편집]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애니메이션[편집]

각주[편집]

  1. 영조실록》 49권, 영조 15년(1739년 청 건륭(乾隆) 4년) 3월 28일 (갑술)
    신비(愼妃)를 단경왕후로 추숭하다
  2.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9월 9일 (을유)
    신수근의 딸을 궁밖으로 내치다
  3. 중종실록》 22권, 중종 10년(1515년 명 정덕(正德) 10년) 8월 8일 (임술)
    폐비 신씨의 복위를 간한 담양 부사 박상 등의 상소문
  4. 중종실록》 105권, 중종 39년(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11월 15일 (경술)
    폐비 신씨를 궁에 들였다는 소문이 나다
  5. 인종실록》 2권, 인종 1년(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4월 6일 (무술)
    정원에 폐비궁을 돌볼 것을 전교하다
전임
폐비 신씨
조선 역대 왕후
1506년 음력 9월 2일~1506년 음력 9월 9일
후임
장경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