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홍씨 (성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숙의 홍씨(淑儀 洪氏, 1457년 ~ 1510년)는 조선 전기 사람으로, 성종의 후궁이다. 본관은 남양으로, 행상호군(行上護軍) 홍일동(洪逸童)의 딸이자 문유질(文由質)의 외손녀다. 홍길동은 그녀의 서얼 숙부였다.[1]

홍길동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홍일동의 동생이라는 부분부터가 거짓이라는 것. 홍일동의 몰년은 1464년으로 세조 10년에 해당하고 홍길동이 체포된 시기는 1500년 연산군 6년에 해당한다(조선왕조실록을 참고했습니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36년의 차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홍길동이 홍일동의 당상관 차림으로 사칭하고 다녔다는 일화나 성종의 애첩이었던 숙의 홍씨의 비호 아래 대도적으로서 기만행위를 저질렀다는 주장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

또한 숙의 홍씨는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권력의 상당부분을 잃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카의 비호를 받을 여건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비록 홍일동이 과음으로 인해 사망했다고는 하나 생년이 1412년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쉰을 넘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홍길동이 전국구 단위의 도적패의 두령이였다는 점을 더 해서 생각하면 그가 두령으로 활동하려면 아무리 나이를 낮게고쳐줘도 60세 정도라는 것.

이런 과정으로 계산하면 홍길동과 홍일동의 나이 차이는 동생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인 약 30년 차이. 일부 문헌을 참고해도 홍길동이 1440년생이라는 자료가 존재하니 그것으로 계산해도 28년 차이다. 장성군에 전해지는 자료에는 1443년생. 31살 차이.게다가 홍길동의 돌림자인 동이 형제들과 다른 자료가 다수 존재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홍길동과 홍일동, 숙의 홍씨를 연관 지은 기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엄귀손과 유착관계를 맺어 활동했다는 내용은 있다.(홍길동을 도운 죄로 고문을 받다 옥사 했다는 내용)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연산군의 성격상 흥청망청이란 단어의 유래가 된 당사자당사자이니 흥청망청 써야 할 세금 등을 도적질해가는 홍길동과 연관성이 있다면 숙의 홍씨가 살아 남았다는 게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1472년(성종 3년) 정3품 소용에 책봉되었으나, 연산군의 즉위와 함께 종3품 숙용으로 강등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종2품 숙의(淑儀)의 직첩을 되찾고, 자수궁(慈壽宮)에 머물게 되었다.[2]

성종과의 사이에서 7남 3녀를 낳았다.

가족 관계[편집]

참고 자료[편집]

  1. 설성경, 《홍길동의 삶과 홍길동전》, 연세대학교 출판부, ISBN 89-7141-579-7
  2. 《조선왕조실록》 중종 1권, 9월 2일, 5번째 기사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