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왕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인목왕후
왕비
재위 1602년 ~ 1608년
전임자 의인왕후
후임자 폐비 유씨(문성군부인)
왕대비
재위 1608년 ~ 1618년(왕대비 재위기간)
1618년 ~ 1623년(서궁 유폐 시절)
1623년 ~ 1624년(인조 반정으로 복위)
전임자 인성왕후(공의왕대비)
인순왕후(의성왕대비)
후임자 장렬왕후(자의왕대비)
대왕대비
재위 1624년 ~ 1632년
전임자 문정왕후(성렬대왕대비)
후임자 장렬왕후(자의대왕대비)
별칭
별호 소성왕대비, 폐비(서궁), 소성대왕대비
신상정보
출생일 선조 17년(1584) 11월 14일
출생지 반송방(盤松坊) 사저
사망일 인조 10년(1632) 6월 28일
사망지 인경궁 흠명전(欽明殿)
능묘 목릉
부친 연흥부원군 김제남
모친 광산부부인 광주 노씨
배우자 선조
자녀 영창대군, 정명공주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 ~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1])는 조선 선조(宣祖)의 계비(繼妃, 임금이 다시 장가를 가서 맞은 아내)이다. 흔히 인목대비(仁穆大妃)로 불리나, '인목(仁穆)'은 죽은 뒤에 받은 시호(諡號)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호칭이다. 선조 때 '소성(昭聖)'이라는 존호를, 광해군 때 '정의(貞懿)'라는 존호를 받아 통칭 소성대비(昭聖大妃)라 불렸다.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 대왕대비가 되어 '명렬(明烈)'이라는 존호가 더해졌고, 죽은 뒤 '광숙장정(光淑莊定)'이라는 휘호와 '인목'이라는 시호가 올려졌다. 고종 때에 '정숙(正肅)'이라는 존호가 추가로 더해짐으로써, 정식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정숙인목왕후(昭聖貞懿明烈光淑莊定正肅仁穆王后)이다.

생애[편집]

연안 김씨 김제남(金悌男)과 광주 노씨의 딸로, 1584년 12월 15일(음력 11월 14일)에 태어났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懿仁王后)가 사망한 뒤 1602년에 왕비로 간택되어 19세의 나이로 51세의 선조와 가례를 올렸다. 1603년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비가 되고 대북(大北)이 집권하였는데,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해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을 사사(賜死)하고 이어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킨 뒤 살해하였다. 인목왕후 역시 폐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1632년 8월 13일(음력 6월 28일) 4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선조의인왕후와 함께 경기도 구리시목릉(穆陵)에 묻혀 있다. 인목왕후의 서궁 유폐 생활은 그녀의 궁녀로 추정되는 작가가 쓴 《계축일기(癸丑日記)》에 전해진다. 금강산 유점사에 인목왕후가 친필로 쓴 《보문경》일부가 남아 있다.

가족 관계[편집]

본가 연안 김씨
  • 증조부 : 김안도(金安道)
  • 증조모 : 강씨(姜氏)
    • 조부 : 증 좌찬성 김오(副司正 贈 左贊成 金祦, 1526~1570)
    • 조모 : 사과 권상(司果 權常)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 아버지 : 연흥부원군 증 영의정 의민공 김제남(延興府院君 贈 領議政 懿愍公 金悌男, 1562~1613)
    • 외조부 : 장사랑 노게(將仕郞 盧垍, 1534~1569)
    • 외조모 : 충의위 한용(忠義衛 韓鏞)의 딸 청주 한씨(淸州 韓氏)
      • 어머니 : 광산부부인 광주 노씨(光山府夫人 光州 盧氏, 1557~1637)
        • 오빠 : 청주목사 증 좌승지 김래(淸州牧使 贈 左丞旨 金琜, 1576~1613)
        • 언니 : 김씨(金氏, 1581~1604)
        • 남동생 : 김규(金珪, 1596∼1613)
        • 남동생 : 증 사헌부지평 김선(贈 司憲府持平 金瑄, 1599∼1614)
왕가 전주 이씨

등장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소설[편집]

관련 문화재[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출처[편집]

  1. 인조실록 26권, 인조 10년 6월 28일 갑오 1번째기사 대왕 대비 김씨의 졸기
전임
의인왕후
조선 역대 왕후
1602년 ~ 1608년
후임
폐비 유씨
(인헌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