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장씨 (인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귀인 장씨 (貴人 張氏)
숙의, 소의, 귀인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1671년 1월 24일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장유(張留)
배우자 조선 인조

귀인 장씨(貴人 張氏, ?-1671년[1])는 조선 인조의 간택 후궁이다.

생애[편집]

생원 장류(張留)의 딸로, 본관은 해풍(海豊)이다. 1635년(인조 13년) 음력 3월 11일, 숙의(淑儀) 간택령이 내려져 삼간택[2]을 거쳐 이 해 음력 8월 16일 숙의로 뽑혔으며[3], 이현궁에서 한 달간 머물다가 인조의 친영을 받고 입궐했다.[4][5] 신하들의 강압이 아닌 인조의 자의로 숙의 간택이 결정되어 뽑혔고, 가례청이 설치되고 인조의 모친인 인헌왕후 구씨가 왕모(王母) 자격으로 머물었던 이현궁에서 인조의 친영을 받는 등 왕후에 준하는 파격적인 예우로 후궁 생활에 입진했으나 결국 인조의 사랑을 받진 못했다.[6]

입궁한 해인 1635년(인조 13년) 12월 9일에 인조의 초비(初妃)인 인렬왕후가 난산으로 사망했다.[7] 인렬왕후의 담제를 마친 후인 1637년(인조 15년) 3월 27일, 인조가 '계비는 예로부터 해독은 있으나 유익함은 없었다.'는 이유를 들며 계비를 세우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왕비 승봉의 기회가 사라진다.[8] 그러나 같은 해 인렬왕후의 3년상 절차를 모두 마친 뒤인 12월, 인조가 계비를 세우지 않겠다고 했던 뜻을 번복하고, 새로이 처녀를 뽑아 계비로 삼겠다며 계비 간택령과 금혼령을 내렸다.[9][10]

1638년(인조 16년) 12월 2일, 인조의 계비가 된 장렬왕후의 책비례가 있었으며[11], 새로운 내명부 수장이 등극하면 응당 베풀어지는 관례대로 생존 중인 선왕과 현왕의 후궁 중에서 정1품을 제외한 후궁을 진봉해주는 절차에 1품계 승급하여 정2품 소의가 됐으며, 인조의 승은 후궁인 숙원 조씨(훗날의 귀인 조씨)는 정4품 소원이 됐다.[12] 1640년(인조 18년) 8월 27일에 다시 1품계 승급하여 종1품 귀인으로 승봉했다.[13]

1671년(현종 12년)에 사망하여 예장(禮葬)되었다.[14]

귀인 장씨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출처[편집]

  1. 《조선왕조실록》현종 12년(1671) 1월 24일 1번째 기사
  2. 《승정원일기》인조 13년 7월 27일 (을해) 원본49책/탈초본3책 (4/19)
  3. 《조선왕조실록》인조 31권, 13년(1635 을해 / 명 숭정(崇禎) 8년) 8월 16일(계사)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2월 27일(신해) 2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3월 25일(기묘) 2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인조 46권, 23년(1645 을유 / 청 순치(順治) 2년) 10월 2일(경진) 4번째기사
  7. 《조선왕조실록》인조 31권, 13년(1635 을해 / 명 숭정(崇禎) 8년) 12월 9일(을유) 1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인조 34권, 15년(1637 정축 / 명 숭정(崇禎) 10년) 3월 27일(병인) 1번째기사
  9. 《승정원일기》인조 15년 12월 25일 (기미) 원본62책/탈초본3책 (19/24)
  10. 《승정원일기》인조 15년 12월 25일 (기미) 원본62책/탈초본3책 (20/24)
  11. 《조선왕조실록》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2월 2일(경인) 1번째기사
  12. 《조선왕조실록》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2월 21일(기유) 1번째기사
  13. 《조선왕조실록》인조 41권, 18년(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8월 27일(병자) 1번째기사
  14. 《승정원일기》현종 12년 1월 22일 (갑술) 원본223책/탈초본11책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