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열왕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렬왕후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인열왕후
지위
왕비
재위 1623년 ~ 1635년
전임 (법적)폐비유씨
(실제)인헌왕후
후임 장렬왕후
이름
별호 청성현부인
휘호 정유명덕정순(正裕明德貞順)
시호 인열(仁烈)
전호 숙녕전(肅寧殿)
신상정보
출생일 1594년 7월 1일
출생지 원주읍내 우소(寓所)
사망일 1635년 12월 9일
사망지 창경궁 여휘당(麗暉堂) 산실청
능묘 장릉
부친 서평부원군 한준겸
모친 회산부부인 창원 황씨
배우자 인조
자녀 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외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1594년 8월 16일(음력 7월 1일) ~ 1636년 1월 16일(1635년 음력 12월 9일))은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의 정비(正妃)로, 소현세자와 제17대 왕 효종의 모후이다. 정식 시호는 정유명덕정순인열왕후(正裕明德貞順仁烈王后)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생애[편집]

선조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한 유교7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며 홍문관 부제학,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한준겸의 넷째 딸이다. 1594년 8월 16일(음력 7월 1일), 원주읍내 우소에서 탄생하였으며, 1610년에 17세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능양군(綾陽君)과 길례를 올리고 청성현부인(淸城縣夫人)에 봉해졌다.

이후 1623년 4월 11일 능양군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636년 1월 12일 (1635년 음력 12월 5일), 대군을 낳았으나 곧 숨졌고, 나흘 뒤인 1636년 1월 16일(1635년 음력 12월 9일) 왕후 자신도 산후병으로 창경궁 여휘당(麗輝堂)에서 향년 4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인을 베풀고 의를 따르는 것을 인(仁), 공로가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열(烈)이라 하여 인열(仁烈)의 시호를 받았다. 원래 인조는 명헌(明憲)의 시호를 내리길 원하였으나, 대사헌이었던 김상헌이 시호를 정하는 일을 담당 관원이 아닌 군주의 의향대로 할 수 없다 하여 바꾼 것이다[1]. 전호는 숙녕(肅寧), 능호는 장릉(長陵)이다. 후일 정유(正裕)의 휘호를 받았으며, 아들인 효종이 명덕정순(明德貞順)의 휘호를 더 추상하였다.

인조는 왕후의 장릉(長陵) 곁에 자신의 수릉(壽陵)을 만들어두었으며, 인조 승하 후에 효종이 그곳에 아버지를 봉릉하고 장사지냈다. 장릉은 원래 파주 운천리(雲川里)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묘 주위에 뱀과 전갈이 살기 시작하자 영조가 현재의 파주 갈현리로 이장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조선의 왕비   인열왕후 한씨 
 仁烈王后 韓氏
출생 사망
1594년 8월 16일(음력 7월 1일)
조선 조선 강원도 원주읍
1636년 1월 16일(1635년 음력 12월 9일) (41세)
조선 조선 한성부 창경궁 여휘당 산실청


부모[편집]

본관 생몰년 부모 비고
서평부원군 西平府院君
한준겸 韓浚謙
청주 1557년 - 1627년 한효윤 韓孝胤
평산 신씨 平山 申氏
회산부부인 檜山府夫人
황씨 黃氏
창원 1561년 - 1594년 황성 黃珹
우봉 이씨 牛峰 李氏


부군[편집]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 仁祖  출생 사망
1595년 12월 7일(음력 11월 7일)
조선 조선 황해도 해주 정원군 잠저
1649년 6월 17일(음력 5월 8일) (53세)
조선 조선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자녀[편집]

작호 이름 생몰년 배우자 비고
장남 소현세자 昭顯世子 왕 汪 1612년 - 1645년   민회빈 강씨 閔懷嬪 姜氏  
차남 효종대왕 孝宗大王
봉림대군 鳳林大君
호 淏 1619년 - 1659년  인선왕후 장씨 仁宣王后 張氏   제17대 국왕 
3남 인평대군 麟坪大君 요 㴭 1622년 - 1658년 복천부부인 오씨 福川府夫人 吳氏
4남 용성대군 龍城大君 곤 滾 1624년 - 1629년
장녀 공주[2] 1626년 - 1626년
5남 대군[3] 1629년 - 1629년
6남 대군[4] 1635년 - 1635년


손자녀[편집]

소현세자 효종대왕 인평대군
경선군 慶善君
경완군 慶完君
경안군 慶安君
경숙군주 慶淑郡主
경녕군주 慶寧郡主
경순군주 慶順郡主
현종대왕 顯宗大王 숙신공주 淑愼公主
숙안공주 淑安公主
숙명공주 淑明公主
숙휘공주 淑徽公主
숙정공주 淑靜公主
숙경공주 淑敬公主
복녕군 福寧君
복창군 福昌君
복선군 福善君
복평군 福平君
이금온 李金溫
 이씨 李氏 


등장 작품[편집]

관련 항목[편집]

출처[편집]

  1. 《인조실록》인조 13년(1635) 12월 17일 3번째 기사
  2. 승정원일기》 14책 (탈초본 1책) 인조 4년(1626년 명 천계(天啓) 6년) 7월 15일 을유 15/18 기사
    새로 태어난 공주를 잃은 성상의 안부를 묻는 약방의 계
    약방제조 서성, 부제조 조익이 가로되, "삼가 듣자오니 새로 태어나신 공주께서 불의에 요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삼가 생각컨대 성상께서 슬프고 괴로우신 중에 놀라고 슬퍼하실 줄 아오나, 신들이 근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감히 문안을 올립니다." 하니 "알았다." 하고 답하였다.
  3. 인조실록》 21권, 인조 7년(1629년 명 숭정(崇禎) 2년) 8월 29일 신사 2번째기사
    승지 심액이 대군의 상을 예조로 하여금 주관케 할 것을 청하다
    승지 심액(沈詻)이 아뢰기를, "대군(大君)의 상(喪)이 아직 상(殤)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체가 중대한 만큼 장례에 관한 일을 귀후서(歸厚署)에만 전담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조 낭관 1원(員)으로 하여금 주관케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당시 대군은 태어난 지 한 달도 못되어 죽었다.
  4. 인조실록》 31권, 인조 13년(1635년 명 숭정(崇禎) 8년 12월 5일 신사 1번째기사
    대군이 태어나자 죽으니, 예조가 예로 장사지낼 것을 아뢰다
전임
폐비 유씨
(인헌왕후)
조선 역대 왕후
1623년 ~ 1635년
후임
장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