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 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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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 오씨(同福 吳氏)
관향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시조오현좌(吳賢佐)
중시조오녕(吳寧)
주요 인물오대승, 오선, 오자귀, 오잠, 오승, 오계종, 오팽년, 오천,오윤백, 오전, 오정, 오억령, 오백령, 오익, 오준, 오단, 오정일, 오정원, 오정위, 오정창, 오시수, 오시복, 오시만, 오광운, 오학진, 오명, 오킹
인구(2015년)72,394명
비고동복오씨 대종회

동복 오씨(同福 吳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오영(吳寧)이며, 동복오씨의 대표적 인물은 광찰의 10세손인 오억령(吳億齡)·오백령(吳百齡) 형제를 들 수 있다.

기원[편집]

오씨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吳)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일족으로 주나라의 고공단보(古公亶父) 주 태왕(周太王)의 장남인 오태백(吳太伯)을 시조로 하여 희성(姬姓)에서 나왔다. 제후국 오(吳)나라태백을 초기 군주로 시작하여 하대 자손인 부차왕의 손자인 루양부터 주나라 천자로부터 오(吳)씨 성을 하사받아 오씨가 되었으며, 비로소 오(吳) 나라의 왕으로 되었다.

역사[편집]

태백왕의 25세손인 초나라 재상 오기(吳起)의 45세손 오첨(吳瞻)이 500년(지증왕 1)에 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했다가 왕명으로 김종지(金宗之)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함양에서 2남 1녀를 두고 22년을 살다가 521년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둘째 아들 오응(吳膺)은 나이가 어려 중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었다.[1]

오첨(吳瞻)의 24세손 오현좌(吳賢佐)의 큰아들 오녕(吳寧)이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져 동복 오씨의 1세조가 되었고,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는 군위 오씨(軍威吳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오현좌 제단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다.

3세 문헌공(文獻公) 오대승(吳大陞)의 아들 오광찰(吳光札)이 대장군, 오광찰의 아들 오선(吳璿)이 찬성사(贊成事)를 지냈으며, 오선의 아들 오잠(吳潛)이 1320년(충숙왕 7)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졌다.[2]

조선조에는 문과 32명,무과 6명, 사마시 73명 등 모두 11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3] 조선초 9세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오승(吳陞:1364년∼1444년)은 안평대군(세종대왕 3남:1418 ~ 1453)의 처외삼촌이고, 10세 집현전학사 오계종안평대군의 처사촌이다. 특히 오승은 이조참의 시절 주현둔전 제도를 개설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군주정치의 독선을 배제하고 민주적인 국민투표제를 창안, 왕의 재가를 받아 실행에 옮긴 장본인이다. 15세 오억령(吳億齡:1552년∼1618년)은 임진왜란 전 일본의 사신 현소(玄蘇)가 왔을 때 선위사로서 접대한 후, 왜군의 침입을 예감하고 선조에게 치계(馳啓)를 하였으나, 조정에서 묵살당하고 도리어 파직당하였으나,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복권되어 임진왜란 당시 개성에서 선조를 호종(扈從)하였다. 그리고 그의 동생 오백령(吳百齡:1560년∼1633년)이 광해군 때 복천군(福川君)에 봉군되었고, 이후 오백령의 집안에서만 8명의 판서를 배출하였다. 오백령의 아들 오단(吳端)의 딸이 인조 3남 인평대군(1622년~ 1658년)과 혼인하였는 바, 이후 조선 중후기 남인의 왕실 외척세력의 중심이 되었으며,이런 와중에 서인세력과의 당파싸움으로 인하여 1680년(숙종) 경신대출척의 정치적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16세 오단의 손자 오시수(吳始壽)가 1679년(숙종 5년) 우의정에 올랐다. 18세 오시봉의 딸이 광평군(光平君)의 아들 원령군과 혼인하였으며,또한 18세 오시적의 딸은 영조 때 종친의 대표격으로 활동하였던 화선군(花善君)의 아들 밀창군과 혼인하였다. 20세 오광운(숙종(1689)~영조(1745))은 영조서연관으로서 청남세력의 영수로서 영조의 대탕평책에 참여하였고,대사헌을 지냈으며, 정조연간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1720 ~ 1799)의 정치적 스승이였으며, 동생 오필운의 딸과 채제공을 혼인케 하였다.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 인평대군(인조 3남)비 복천부부인 동복 오씨(1622년 4월 22일 ~ 1658년 8월 6일) - 증 영의정 오단(吳端)의 딸

분파[편집]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가 고려 때 비안군(比安君)에 봉해지면서 군위 오씨(軍威吳氏)로 분파되었다.

항렬자[편집]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口진(鎭) 영(泳)
제(濟)
口상(相) 연(然)
병(炳)
재(在) 口탁(鐸)
口용(鏞)
口록(祿) 병(秉)
근(根)
口묵(默) 치(致) 口일(鎰) 口원(源) 口동(東) 응(應) 口균(均) 口종(鍾))
口용(鏞)
해(海) 口식(植) 口환(煥) 口희(喜)

인구[편집]

  • 1985년 11,977가구 50,648명
  • 2000년 17,317가구 55,517명
  • 2015년 72,394명

집성촌[편집]

  • 전남 광양시 광양읍 세풍리,
  • 전남 고흥군 고흥읍 호형리,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
  • 전남 화순군 북면 이천리,
  •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 전남 화순군 동복면 천변리,
  •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정리,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등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