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 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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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권씨(懿嬪 權氏) 또는 정의궁주(貞懿宮主, ? ~ ?)는 조선 태종의 후궁(간택후궁)이자 정혜옹주의 생모이다.

생애[편집]

성균관 악정 권홍(權弘)의 2남 2녀중 장녀로 태종이 후궁 제도를 법제화하여 맞아들인 첫 번째 후궁(1402년)이다.[1] 사대부가 출신의 권씨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태종은 왕비나 세자빈에 준하는 가례를 준비하게 했는데[1] 이를 안 원경왕후가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자 태종은 가례를 취소하였다.[2] 권씨는 태종의 승은을 입고 1402년 2월 정의궁주(貞懿宮主)에 봉해졌고[3], 정혜옹주를 출산하였다. 1422년(세종 4년) 2월에 세종은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권씨를 정1품 의빈(懿嬪)으로 승격시켰다.[4] 같은 해에 태종이 죽자 비관하여 세종에게 고하지 않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었으며 밤낮으로 불경을 외우며 태종의 명복을 빌어 후궁들이 이를 따라했다. 당시 조선은 억불숭유의 정책을 펴고 있었지만 궁중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아 정인지 등이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5] 딸 정혜옹주가 죽자 사위 박종우로 하여금 재취하게 하기도 했다.[6]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맡아서 길렀고, 1453년(단종 1년)에 의빈이 늙고 병들자[7] 금성대군이 자신의 사저에 의빈이 머물 수 있도록 여러 차례에 걸쳐 청했지만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의빈은 혜빈 양씨의 처소로 옮겨 지냈다. 1457년(세조 1년)에 선왕을 위하는 왕의 특별한 배려로 궁호를 영수궁(寧壽宮)으로 고쳤다.

가족관계[편집]

의빈 권씨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최향미, 《조선 공주의 사생활》, 북성재, 2011, p.128, ISBN 978-89-92162-35-7
    태종이 정식으로 맞이한 후궁들 중 가장 먼저 들인 후궁이지만, 명빈 김씨(明嬪金氏)보다 빈 책봉은 늦었다.
  2. 《태종실록》2년(1402) 3월 7일 3번째 기사
  3. 《태종실록》 2년(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4월 18일(경오) 1번째기사
  4. 《세종실록》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2월 20일(정미) 1번째기사
  5. 《세종실록》, 23년(1441)
  6. 《중종실록》, 5년(1510)
  7. 의빈 권씨의 생몰년을 알 수 없으나 단종실록에 금성대군이 의빈을 사저에서 봉양할 것을 청하며 의빈의 나이가 70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