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빈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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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성씨
상의, 소용, 의빈
별명 상의 성씨
소용 성씨
의빈 성씨
배우자 정조
자녀 문효세자, 옹주
본명 성덕임(成德任)[1]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증찬성 성윤우
모친 증정경부인 임씨
출생 1753년 음력 7월 8일
사망 1786년 11월 4일 (음력 9월 14일)

의빈 성씨(宜嬪 成氏, 1753년 음력 7월 8일 ~ 1786년 11월 4일 (음력 9월 14일))는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의 세 번째 후궁으로 문효세자의 생모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정조의 다른 후궁들은 간택되어 들어온 후궁들이나, 의빈 성씨는 유일한 궁녀 출신의 후궁이다.

생애[편집]

1753년 음력 7월 8일에 태어났다. 이름은 덕임(德任)으로 홍봉한의 청지기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혜경궁 홍씨의 연줄을 타고 입궁하여 궁녀가 되었다.[2] 1773년, 정조의 두 여동생 청연군주, 청선군주와 함께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하였다. 이 책은 본래 규장각 소장이었다가 서울대를 거쳐 전쟁 중에 고서 수집가 홍두선이 입수했다.

1782년(정조 6년) 10월 13일(음력 9월 7일), 연화당에서 궁인(상의) 신분으로 왕자를 낳았고, 11월 27일에 왕자가 원자로 봉해지면서 한 달 후인 12월 28일에 정3품 소용(昭容)의 첩지를 받아 정식 후궁이 되었으며, 두 달 뒤인 1783년 2월 19일에 정1품 빈으로 승격되어 의빈(宜嬪)의 빈호를 받았다.

원자로 책봉된 왕자는 1784년(정조 8년) 8월 17일(음력 7월 2일)에 정식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어 왕자는 훗날 문효세자가 되었다. 1784년(정조 8년) 5월 9일(윤 3월 20일)에는 딸을 낳았지만 첫 돌을 넘기기도 전에 잃었다.

1786년(정조 10년) 6월 6일(음력 5월 11일)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죽었고, 같은 해 11월 4일(음력 9월 14일) 의빈 성씨도 갑작스레 사망했다.

의빈 성씨 사망 후, 홍낙성이 정조에게 “5월 이후로 온 나라의 소망이 오직 여기에 달려 있었는데 또 이런 변을 당하였으니, 진실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의빈은 1786년 5월에 셋째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정조는 그녀의 상제를 영빈 이씨 장례의 예에 따라 1등 후궁의 예로 치러 주었다. 같은 해에 죽은 아들 문효세자와 함께 효창원(현재 효창공원)에 묻혀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강제 이장되어 지금은 서삼릉의 후궁 묘역에 묻혀 있다.

정조는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무덤에 각각 죽음을 애도하는 어제 신도비(御製神道碑)를 내렸는데 현재 모두 서삼릉에 옮겨져 있다.

가족 관계[편집]

창녕 성씨(昌寧 成氏)

  • 아버지 : 증찬성 성윤우(成胤祐) - 무관. 종2품 가선대부 벼슬까지 오름.
  • 어머니 : 증정경부인 임씨
    • 오라비 : 성담 (成湛, 성윤우의 양자) - 무과 합격
    • 오라비 : 성완 (成浣) - 아들 성순민(成舜民)이 첨정 벼슬에 오름
    • 동생 : 성흡 (成洽, 1762 임오-?) - 정조 8년(1784) 무과 합격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지아비 : 제22대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 장남 :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 요절
    • 장녀 : 옹주 (翁主, 1784~?)- 요절
    • 셋째: 1786년 9월, 의빈 성씨가 임신한 채 복중 사망

의빈 성씨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재난고》“昭容成氏 名德任”, "소용 성씨의 이름은 덕임(德任)이다."
  2. 《이재난고》“昭容成氏 名德任 其爺故洪鳳漢廳直 而因得入惠慶宮 惠慶宮稱其福相 而上亦愛之 許令從所顧屬內庭 旣有娠 惠慶宮恒以語上 曰德任腹漸高大矣 上則微哂而已 尹嬪 過三十餘朔 産事無實 而元子生 則産廳都提調徐命善等 猶請姑待尹氏産期 而不請元子定號 奉朝賀金尙喆 亟上疏 引春秋立庶以長之義 請元子定號 上意亦然 亟從之 徐則竟八度呈辭而遞 蓋昭容本係洪家傔人之女 故老論或以線索甚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