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선옹주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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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선옹주
옹주(후궁)
별칭
별호 가이옹주
시호 혜선옹주(惠善翁主)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조선
사망일 미상
사망지 조선
왕조 조선 왕조
배우자 태종
자녀 없음

혜선옹주 홍씨(惠善翁主 洪氏, 생몰년 미상)[1][2]조선 태종의 기생 출신 후궁이다.

생애[편집]

본관은 알 수 없고, 성은 홍씨(洪氏)이다. 기생 관명은 가희아(可喜兒)이며, 보천 출신으로 가무에 능한 무기로 기록되어 있다. 가이옹주(加伊翁主) 또는 혜선옹주(惠善翁主)로 기록되어 있는데, 동일 인물로 여겨진다.[출처 필요]

가희아는 상기(上妓: 일패기녀)로써 내연관계를 맺은 사내들로 인해 큰 고초를 겪은 일이 실록에 기록되기까지 하였다.

지난 11월 12일 밤에 김우(金宇)가 자기 소관(所管)인 갑사(甲士) 가운데 기병(騎兵)·보병(步兵) 30여 명을 보내어 황상(黃象)의 집을 포위하고, 갑사 나원경(羅原冏)·고효성(高孝誠) 등이 곧장 황상의 내실(內室)에 들어가 기생첩 가희아(可喜兒)를 찾았으나 잡지 못하니, 그 의장(衣裝)을 취하여 갔습니다. 이튿날 김우가 다시 구종(丘從)과 조례(皂隷)를 보내어 가희아를 빼앗아 오게 하여, 수진방(壽進坊) 동구(洞口)에 이르니, 황상이 듣고 말을 달려 장(杖)을 가지고 추격하여 가희아를 뒤쫓았습니다. 이리하여 김우가 즉시 주번 갑사(晝番甲士) 양춘무(楊春茂)·고효성(高孝誠)·박동수(朴東秀) 등 10여 명과 사반(私伴) 20여 명을 발하여, 장(杖)을 가지고 황상과 더불어 서로 싸웠는데, 양춘무가 황상을 쳐서 은대(銀帶)가 깨어져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태종 14권, 7년(1407 정해 / 명 영락(永樂) 5년) 12월 2일(신사) 1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태종의 총애를 입어 옹주로 책봉되었으며 그 외엔 기록된 바가 없다.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태종 27권, 14년(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1월 13일(무자) 1번째 기사.
  2. 《조선왕조실록》태종 36권, 18년(1418 무술 / 명 영락(永樂) 16년) 7월 7일(을묘) 2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