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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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순종 이척
純宗 李坧
원유관 강사포 복장을 한 이척
원유관 강사포 복장을 한 이척
이화문(오얏꽃 문장)
이화문(오얏꽃 문장)
지위
대한제국 황제
재위 1907년 7월 19일 ~ 1910년 8월 29일
전임자 대한제국 고종
후임자 (제정 폐지)
섭정 의친왕 이강(1907.07.27.~1907.08.07.)
소네 통감(1909.07.12.~ 1910.05.30.)
박제순(1910.05.30.~1910.06.15.)
데라우치 통감(1910.06.15.~1910.08.20.)
야마가타 공작(1910.08.20.~1910.08.28.)
데라우치 통감(1910.08.28.~1910.08.29.)
총리
창덕궁 이왕
재위 1910년 8월 29일 ~ 1926년 4월 25일
전임자 (신설)
후임자 의민태자
이름
이척
李坧
별호 (字): 군방(君邦)
(號): 정헌(正軒)
연호 융희(隆熙)
능호 유릉(裕陵)
신상정보
출생일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출생지 조선 한성부 창덕궁 관물헌
사망일 1926년 4월 25일(1926-04-25) (52세)
사망지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
매장지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 홍유릉로
왕조 조선 왕조
가문 전주 이씨
부친 대한제국 고종
모친 명성황후 여흥 민씨
배우자 순명효황후 여흥 민씨(정후)
순정효황후 해평 윤씨(계후)
자녀
(양자 이진)
기타 친인척 흥선대원군 이하응(친조부)
의친왕 이강(이복 남동생)
영친왕 이은(이복 남동생)
덕혜옹주(이복 누이동생)
완은군 이재선(이복 백부)
흥친왕 이희(동복 백부)
영선군 이준(사촌 형)
종교 유교(성리학)

순종(純宗,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 1926년 4월 25일)은 대한제국 제2대이자 마지막 황제이다. 또한 한국사 최후의 군주이다. (坧), 본관전주(全州), 군방(君邦), 정헌[1](正軒), 정식 시호는 문온무령돈인성경효황제(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이다. 고종명성황후의 아들이며, 고종의 장성한 자녀 중 유일한 적자이다. 대한제국이 병합된 이후에는 사실상 일본 천황의 신하로서 왕공족이왕가의 수장인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생애[편집]

왕세자, 왕태자, 황태자 시절[편집]

익선관 황룡포 순종 어진
고종 광무제(좌)와
황태자 시절의 순종 이척(우)
대훈위 국화장경식을 단
대한제국 순종 융희제
순종 융희제 이척의 사진
(1910년대로 추정)
순종 융희제의 장례식

순종은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창덕궁 관물헌에서 고종명성황후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명성황후는 순종을 포함하여 4남 1녀를 낳았지만 모두 조졸하고 성인이 된 자녀는 순종이 유일하다.

1875년 3월 8일, 2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882년 민태호의 딸과 혼인하였다. 1895년 홍범 14조 반포와 동시에 왕태자로 격상되었고 같은 해 10월 8일, 을미사변으로 어머니 명성황후를 잃었다.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로 격상되었다.

1898년 김홍륙이 고종과 황태자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들이 즐기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고종은 커피의 맛이 이상함을 알고는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량을 복용해서 이가 다빠져 틀니를 끼고 혈변을 자주 누는 등 건강이 악화되었다.

즉위와 재위[편집]

1907년 1월 21일 고종으로부터 대리청정 위임을 받았고, 같은 해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등을 특사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헤이그 특사 파견 이후, 일본친일파의 압력으로 고종은 퇴위 요구를 받았다.

1907년 7월 19일, 고종이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나자 대리청정이었던 황태자 척이 제위에 계승하였다.(고종 양위 사건)

등극과 동시에 대한제국 육군 대장 예편과 아울러 원수에서 대원수로 승급하였으며 연호를 융희(隆熙)라 하였다. 그러나 그를 정식 군주로 인정하지 않던 일부 세력은 그를 황제 혹은 주상이라 부르지 않고 전각의 이름을 따서 창덕궁 전하라고 불렀다.

순종의 황위계승자 책봉 배경 관련 논란[편집]

순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자신의 이복 동생들 중에서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이복 동생 중 나이가 가장 어렸던 영친왕황태자로 책봉하였다.[2]

1907년 8월 7일을 기하여 의친왕대리청정에서 물러나고 10일 후인 1907년 8월 17일, 고종은 후사가 없는 순종의 황위계승자로 영친왕 이은을 결정하였다.[3][4] 이는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위협했던 이준용[5] 이강을 견제하려는 고종의 의도와 이준용파와 이강파가 득세하면 자신의 실권이 잠식될 것을 우려한 이완용의 정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6] 이로써 장기간 해외 망명생활 중에 끊임없이 잠재적 왕위계승자로서 대우와 주목과 견제를 받아왔던 이준용이강은 졸지에 순종의 동생이자 황태자의 숙부라는 지위로 격하되었다.[6]

재위 절정기와 대한제국 황제 통치권 피탈[편집]

즉위한 해인 1907년 할아버지 흥선대원군대원왕(大院王)으로 추봉하였다.

이 무렵 일본러일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른 식민지 열강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제국의 후견국을 자처하면서 한일 병합의 발판을 공고히 하였다. 여기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안중근에 의하여 청나라 하얼빈에서 사살되었다.

한편 같은 해인 1909년 기유각서 사건으로 인하여 황제 순종의 실권은 제2대 대한제국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게 박탈되고 순종은 이듬해인 1910년까지 허수아비 군주의 신세가 되었다. 뒤이어서 박제순 내각총리대신의 실권 탈취 체제를 잠시 이어 제3대 대한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대한제국의 실권을 쥐고 급기야 한국 부통감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실권을 하며 1910년 경술한일합방늑약으로 인하여 사실상 일제가 한반도에 무혈입성하기에 이르렀고, 이와 함께 대한제국의 멸망을 지켜보게 되었다.

퇴위와 생애 후반[편집]

1910년 일본은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순종은 조약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8월 22일 당시 총리대신인 이완용이 이에 대신 서명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합병되면서 멸망하였으며, 아울러 역사상 왕조는 대한제국을 끝으로 소멸하였으며 전제군주정이 붕괴되었다. 이후 순종은 모든 권한을 잃고 '창덕궁 이왕'이라 불리며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1917년 6월, 순종은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도쿄를 방문해 다이쇼 천황(大正天皇)을 알현할 것을 압박받는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의를 다해 마땅한 일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인한 일종의 협박이었다. 『순종실록부록』에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남대문역에 직접 나가서 특별열차를 타고 도쿄로 행하였다.(1917년 6월 8일) 황궁에 나아가 천황과 황후를 봉황문에서 알현하고 현소에 참배하였으며, 이어 동궁의 처소를 방문하였다.(6월 14일)

1926년 4월 25일, 심장마비로 승하하였으며, 아버지 고종홍릉 근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그의 장례식 날짜에 맞추어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1 운동 만큼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민족주의 계파와 사회주의 계파가 합작한 신간회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순종(純宗)이라는 묘호(廟號)는 1926년 5월 1일 이왕직 장관 민영기가 제안한 순종, 경종(敬宗), 성종(誠宗) 중 수망(首望)대로 결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순종 효황제

   純宗 孝皇帝

출생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조선 조선 한성부 창덕궁 관물헌

사망 1926년 4월 25일 (52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

조부모[편집]

묘호/시호 본관 생몰년 부모 비고
양조부   문조 익황제

  文祖 翼皇帝

전주 1809년 - 1830년 순조 숙황제 純祖 肅皇帝

순원숙황후 김씨 純元肅皇后 金氏

조선의 추존 국왕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양조모  신정익황후 조씨

 神貞翼皇后 趙氏

풍양 1808년 - 1890년 풍은부원군 조만영 豊恩府院君 趙萬永

덕안부부인 은진 송씨 德安府夫人 恩津 宋氏

효유왕대비 孝裕王大妃

효유대왕대비 孝裕大王大妃

조부 Heungseon Daewongun Portrait.jpg

 흥선대원군 이하응

 興宣大元君 李昰應

전주 1820년 - 1898년 남연군[7] 南延君

군부인 여흥 민씨 驪興 閔氏

헌의대원왕 獻懿大院王
조모  여흥부대부인 민씨 

 驪興府大夫人 閔氏

여흥 1818년 - 1898년 민치구 閔致久

전주 이씨 全州 李氏

순목대원비 純穆大院妃


부모[편집]

Emperor Gojong of the Korean Empire by Percival Lowell, 1884.png

       고종 태황제

       高宗 太皇帝

    Seal of the Empress Myeongseong.svg [8]

      명성태황후 민씨

      明成太皇后 閔氏

본관 전주 여흥
이름 형 㷩 자영 玆暎[9]
출생 1852년 9월 8일 (음력 7월 25일) 1851년 11월 17일 (음력 9월 25일)
사망 1919년 1월 21일 (66세) 1895년 10월 8일 (음력 8월 20일) (43세)
부모 흥선대원군 이하응 興宣大元君 李昰應

여흥부대부인 민씨 驪興府大夫人 閔氏

여성부원군 민치록 驪城府院君 閔致祿

한창부부인 한산 이씨 韓昌府夫人 韓山 李氏[10]

비고 조선 제26대 국왕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 을미사변으로 암살
  • 광무 원년(1897년) 황후로 추존

황후[편집]

시호 본관 출생 사망 부모 비고
정후  순명효황후 민씨 

 純明孝皇后 閔氏

여흥 1872년 11월 20일

 (음력 10월 20일)

1904년 11월 5일 (31세)

  (음력 9월 28일)

여은부원군 민태호

驪恩府院君 閔台鎬

진양부부인 진천 송씨

鎭陽府夫人 鎭川 宋氏

계후 Empress Sunjeong of the Korean Empire.jpg

 순정효황후 윤씨

 純貞孝皇后 尹氏

해평 1894년 9월 19일

 (음력 8월 20일)

1966년 2월 3일 (71세) 해풍부원군 윤택영

海豊府院君 尹澤榮

경흥부부인 기계 유씨

慶興府夫人 杞溪 兪氏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형제[편집]


논란[편집]

대한제국 순종을 조선의 제27대 국왕으로 표기하려는 견해가 있다. 대한제국은 출범 당시 대한국 국제에 따라 조선 왕조의 법통을 이었음을 분명히 하였으며 사실상 한국 황실의 혈통도 마찬가지로 조선 왕조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조선의 제27대 군주로 취급하는 견해이다.[11][12][13] 그러나, 실제 순종은 조선의 국왕이었던 적이 없으며,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로만 기록되어 있다.

대중문화의 순종[편집]

영화[편집]

텔레비전 드라마[편집]

사진[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고종 황제가 순종에게 내려준 호, '正軒'. 연합뉴스. 2010년 7월 22일. 2019년 7월 30일에 확인함. 
  2. 영친왕을 황태자로 봉한 배경에는, 의친왕을 견제하려던 엄귀비의 입김도 작용했다[출처 필요].
  3.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69) 635
  4.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69) 641
  5.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3쪽
  6.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4쪽
  7. 원래 효종의 3남 인평대군의 6대손이지만, 사도세자의 아들 은신군의 양자가 되었다.
  8. 명성황후 인장
  9.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18~20쪽.
  10. 1874년 아들 민승호와 손자와 함께 폭탄테러로 사망(→민승호 일가 암살사건)
  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순종(純宗)
  12. 《고등학교 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02. 343쪽. 
  13. 한국사 콘텐츠. 《순종(조선) Archived 2019년 1월 23일 - 웨이백 머신
전임
흥선대원군
대한제국대리청정
1907년 1월 21일 ~ 1907년 7월 19일
후임
의친왕
제1대 이왕
1910년 8월 22일 - 1926년
후임
의민황태자
전임
고종
한반도의 통치자
1907년 - 1910년 8월 29일
후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총독)
전임
고종
한반도의 국가 원수
1907년 ~ 1910년
후임
메이지 천황
이승만